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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화해하기③
(조이스 허기트 지음/사랑플러스/352쪽/11,000원)

장면이 바뀌었다. 숲은 사라지고 환하게 빛나는 방만 있었다. 나는 여전히 무기력하고 연약한 아기로 누워 있었다. 시끄러운 소리와 활기와 공포에 둘러싸였으나 어떤 관심도 받지 못했다. 버림받은 것 같이 혼자만 있었다. 두려웠다. 그러나 아니다! 곧바로 치유하시는 사랑의 임재가 느껴졌다. 앤은 나한테 일어난 일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태임을 민감하게 알아차리고는 조용히 물러가, 내가 그것을 마음껏 누리도록 내버려두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껏 마시며 앤의 아파트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다만 기억하는 것은 며칠 후, 전에는 한번도 의식적으로 읽은 적이 없지만 나에게 일어난 기적을 생생하게 설명해 주는 것 같은 성경 말씀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네가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 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로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아무도 너를 돌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여 너를 불쌍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천하게 여겨져 네가 들에 버려졌느니라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 내가 너를 들의 풀같이 많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우며 유방이 뚜렷하고 네 머리털이 자랐으나 네가 여전히 벌거벗은 알몸이더라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을 할 만한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를 내게 속하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에스겔서 16:4-8).

이 구절은 원래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간략하게 묘사한 말씀인데, 여러 가지 면에서 나를 위한 그분의 영원한 사랑을 묘사하는 것 같았다. 마치 엄마가 나를 낳고서 시력을 잃었기 때문에 내가 아니라 엄마한테 모든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신생아에게 필요한 안아줌이나 돌봄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 오히려 내가 십대가 되어 하나님께 마음을 열었을 때 나를 찾아오신 것처럼, 그때도 나를 찾아와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나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말해 주는 동시에 거절감의 고통 아래에 있는 뿌리를 건드린 것이었다.

앤과 나는 내 어린시절의 경험들로부터 유사점을 찾아냈다. 나는 두려움과 버림받음과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밀려났다는 감정을 느꼈으나 아무런 항의도 하지 못했다. 사랑받지 못했다고 느꼈고, 무시당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난 방해꾼이야. 그들이 하는 일을 막아서는 안 돼. 조용히 가만히 있어야 해. 귀찮은 존재가 되어서는 안 돼.”라는 메시지를 받았던 것이다.

내 생각에 이와 같은 메시지가 내 인생 초기에 형성된 비합리적인 논리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그리고 그 논리를 믿었기에 제한적인 틀 안에서 사고하는 법을 배웠다. 심지어 내가 어른다운 행동을 해야 하는 모임에서조차 새로운 사람이 우리 모임에 합류할 때마다 가장 우선순위로 ‘남편-아내’ 관계에 별 일이 없을지 불안해했다. 어쩌다 나로 인해 사람들이 난처한 입장에 처했다는 것을 감지하면 극복하려 하기보다는 차라리 놀라서 뒤로 물러나고 피하려 했다. 내가 또다시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말이다.

어린 시절 나는 늘 수동적이고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던 반면, 성인이 된 지금은 이런 새로운 상황에 번번이 분노로써 대처하고 있었다. 남편이 일을 할 때 내가 옆에 있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그를 비난하여 혼란에 빠뜨리곤 했던 것은 마음속에 쌓인 내 분노였다. 그는 내가 옆에서 같이 일하기를 원했다. 그가 가장 원치 않은 상황은 나를 배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그 사실을 재차 확인시켜 주었음에도 그의 말을 감히 믿으려 하지 않았다.

내가 이 치유의 과정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감정을 치유해 주셨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 이후 온전함을 향한 단계들을 밟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저 유아독존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단계는 반드시 정해진 순서대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 중요하다.

첫 번째는 용서하는 것이다. 누군가 자기 인생의 경주는 불완전한 카드만 쥐어졌기 때문에 매우 불공정한 게임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비통과 분노로 불타 버릴 것이다. 이제 나는 나의 분노와 원한을 풀어 줄 때가 왔다. 용서하는 것이다. 그분들이 나의 입장에서 상황을 바라볼 수 없었다는 서글픈 심정이 밀려왔지만, 동시에 그분들이 내가 생각하듯이 나에게 상처를 줄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분들은 나를 사랑했다.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아버지, 그들을 용서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어린아이 같은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상처 주었던 것을 회개할 때가 온 것이다. 회개한다는 것은 그저 후회하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과거의 잘못을 바로 잡는 것도 아니다. 사실 과거는 결코 돌이킬 수 없다. 회개는 행동이 변할 때까지 벌거벗은 상태로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아무런 고통 없이 과거의 상처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내 감정을 이미 치유하셨다. 그리고 내게 고통을 안겨 준 사건들로부터 어디서 잘못된 것인지 분명히 깨닫도록 분별력도 주셨다. 이제는 내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일만 남았다. 그것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법을 다시 배우는 것을 뜻했고, 그러려면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다. 나 자신과 상황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어린아이와 같은 일을 버리고 어른답게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 『경청』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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