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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니까
그해 가을은 이상하리만큼 기쁜 일이 많이 몰려왔다. 대학졸업반 내내 밤을 새우며 준비한 건축구조 졸업 작품이 교내 과학상에서 대상을 받았고, 어느 단체에서 만난 사람과 꿈같은 이성교제를 시작했으며, 대학원 특차합격으로 진로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그러나 1997년 11월 27일, 대학원 실험실에서 돌아온 나는 늦은 밤에 응급실로 달려가야 했다. 그때 마주한 어머니는 뇌출혈로 쓰러져 전신마비가 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대할 때의 참담함이란….

하나님께서 행여 크리스마스 선물로 어머니를 일으켜 주시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바람도 땅에 떨어졌다. 세 군데나 옮겨 다닌 7개월의 병원살이 끝에, 결국 ‘가망 없음’이라는 통보를 받고 어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와야만 했다. 괴로웠지만 조용히 연애를 끝냈다. 건축가의 꿈도 슬며시 접었다. 대신 식물인간 상태의 중환자인 어머니의 유일한 의사요, 간호사요, 영양사가 되었다.

어린 시절 나는 거의 외할머니 댁에서 보냈다. 가난한 살림에 상경한 부모님은 의류 사업을 하셨는데, 나는 키울 형편이 될 때까지 부모님들과 따로 떨어져 살았다. 고아 아닌 고아로 사는 동안, 어린 나는 늘 어머니 품이 그리웠다. 뒤늦게 이렇게라도 보상을 받는 것일까. 어머니를 집으로 모신 날부터 지금까지 그 긴 세월 동안, 우리 모자는 수많은 고통을 함께 견디며 한 몸처럼 지내왔으니 말이다.

쓰러지신 그날까지도 어머니는 모두가 잠든 새벽 동대문 시장을 훤히 밝히며 생활고를 붙들고 계셨다. 그렇듯 몸은 험한 시장바닥을 누볐지만, 집에서 설거지를 하다가도 저녁 창가로 흐르는 노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 물끄러미 바라보던, 감성적인 마음을 지닌 분이었다.

나는 달라진 현실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고, 어머니 간호에 전문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건축을 전공했지만, 의과대학을 나온 아들 이상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 드렸다. 감사하게도 의사 선생님도 알 수 없는 중환자 간호의 지혜를 날마다 연구하며 체득할 수 있었다. 누워 계신 어머니 몸에 늘 향기가 나도록 매일 청결하게 씻기고, 영양이 부족하지 않도록 열량을 계산해 죽을 쑤어 튜브로 넣어 드렸다. 어느덧 표정만 봐도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는 ‘감’을 얻으면서, 고단한 현실은 그럭저럭 견딜 수 있는 일상이 되어갔다.

그렇게 14년이 흘렀다. 환자인 어머님이 늘 편하게 주무시도록 애쓰는 동안 외출도 하지 못하고, 잠도 편히 잘 수 없고, 공부도 접어야 했던 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누군가와 말하고 싶은 갈망을 글쓰기로 달랬고, 그 글은 7년 전 『어머니는 소풍 중』이란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어머니 덕에 백수 아들은 ‘에세이 저자’가 된 것이다.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이 시대에 어머니를 간호할 수 있는 시간을 배려해 준 회사에 취직도 되었다. 그리고 내 책을 읽어 준 여성과 결혼하여 현재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지금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길고 어두운 터널 속에서의 여전히 힘든 삶이지만, 우리 모자는 변함없이 함께 하고 있다. 의식이 없는 어머니이지만 줄곧 나를 위해 기도해 주고 계신다고 믿는다. 내가 어머니 덕에 받은 축복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마 평범한 삶이었다면 만날 수 없었을 고운 아내를 만났고, 글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출판 편집자로 살고 있으며, 이 땅의 소외되고 고통 받는 약자들을 돕기 위한 꿈을 가지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건물을 짓는 건축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의 집을 짓는 ‘영혼의 건축가’로 꿈을 성장시켰다.

내가 바랐던 것은 그저 어머니를 잘 간호할 수 있는 아들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이 가치 있는 꿈을 가지고 살도록 이끄셨다. 어머니는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삶의 길을 열어 주신 분이다. 그 큰 사랑의 깊이가 어디까지인지 가르쳐 주셨고, 가족과 사회를 섬기는 법을 삶으로 보여 주셨다. 비록 식물인간 상태의 중환자이지만, 나는 그 곁에 있어 평안하고 행복하다. 사랑하니까!


- 『아, 사랑!』 중에서
(가이드포스트 편집부 엮음 / 가이드포스트 / 208쪽 /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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