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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도 - 유정자 48세
요즘 사회 문제로 많이 대두되고 있는 인터넷 채팅. 거부감이 생기고 부정적인 면이 참으로 많다. 하지만 건전하고 올바르게 이용한다면 그곳에서도 배울 게 있다고 생각한다. 사이버이지만 그곳 또한 사람 사는 곳이기에. 이 글은 내가 채팅을 하면서 경험했던 일이다. 그 당시 나는 건강이 좋질 않아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았다. 썩 내키진 않았지만 호기심도 있었고 해서 아들의 권유로 사이버 세상에 들어가 보았다.

한 달쯤 지났을까. 차츰 회의가 왔다. 순 말장난들뿐이고 육두문자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해서 식상함을 느낄 때쯤 어떤 분을 만났다. 직장에 나가는 아내가 채팅을 권해 처음으로 대화방엘 와 봤다고 의례적인 인사말이 오갔고 그렇게 그분과 사이버에서 만남이 시작되어 일주일에 두세 번 요일을 정해 놓고 대화를 했다.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며 자식들 키우는 얘기, 간간이 우스갯소리도 곁들이면서 시간을 보냈다.

두 달쯤 지난 어느 날, 고백할 게 있는데 들어 주겠냐는 거였다. 나는 픽 웃었다. ‘여럿 중 그래도 가장 괜찮은 사람이다 싶었는데 너도 별수 없는 남자구나.’ 싶었다. “들어 봅시다.” 했더니 실망하지 말라면서 말문을 열었다. “몇 년 전 미국에서 살 때, 직장에서 화상을 입어 얼굴만 빼고는 모두 화상 흔적이 있어요. 그리고 간경화 말기 판정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잠시 광고업을 해 보았으나 모든 게 여의치 않아 그만두고 지금은 늘 집에서만 지낸답니다. 아내가 채팅을 권한 것도 그 때문이에요.”

오! 맙소사. 난 잠시 아무 말도 못 한 채 조금 전 나의 오버센스에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가만히 있는 내게 그는 “계속 나의 말벗이 되어 주실 수 있을까요? 거절하지 마세요. 부탁입니다.” 하는 것이었다. 내가 어찌 거절을 할 수 있으리오. 남편과 두 아이들에게 그 사실을 말했더니, 남편은 그것도 좋은 일 하는 게 아니겠냐며 기꺼이 받아들여 주었고, 컴퓨터가 고장 나면 얼른 손을 봐서 나를 컴퓨터 앞에 앉게 하고 늦은 밤에는 야참 먹고 하라며 손수 비빔국수와 어묵탕도 만들어 주었다.

그분 아내와도 가끔씩 통화를 하며 서로 안부를 묻기도 했다. 뇌압이 올라가면 의식 불명이 되고 조금만 움직여도 호흡 곤란이 오고 입원과 퇴원이 일상이 되어 버린 듯했다. 나는 그분께 노랫말 하나를 읊어 드렸다. “천상에 계신 이여, 나의 기도 들어주소서...... 도와주소서, 아직은 어둠 속에 울고 있나이다.” ‘사랑의 기도’였다. 그 노래가 감성을 자극했던지 테잎을 사서 열심히 노래를 배웠다며 전화선을 통해 내게 직접 불러 주기까지 했다.

그렇게 가을 그리고 겨울을 보냈다. 골목 어귀 저만치 봄이 들어섰을 무렵 나는 그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살펴보지 않아도 금방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까아만 얼굴에 보랏빛이 도는 입술이며 병색이 짙었다. 툭 건드리기만 해도 쓰러질 것 같은 그 모습으로 나를 만나러 익산에서 이곳 부산까지 오시다니. 처음엔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 바로 쳐다보질 못했다. 그러나 이내 서먹함도 사라지고 옛 친구처럼 편하게 차를 마시며 대화를 했다. 그는 숙소까지 정해 놓고 낮에는 나랑 만나 시간을 보내고 그렇게 닷새를 머물다 가셨다. 조금만 더 살고 싶다고 눈물까지 보이면서.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여름이 왔다. 모두들 산으로 바다로 휴가들을 떠날 때쯤, 그분은 아내와 세 자녀를 데리고 부산으로 왔다. 나도 남편과 함께 자릴 했다. 식사를 하고 차를 마셨다. 참으로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그 아내는 살아 있는 천사 같았고 자녀들 역시 반듯해 보였다. 건강만 하다면 남부러울 게 없을 텐데 안타까웠다. 그 가족은 그렇게 하루를 묵고 떠났다.

그리고 몇 번의 통화. 복수가 차올라 점점 힘들어 하시는 것 같았다. 마지막 통화에서는 너무 아파 꼼짝을 못하겠다며 앰뷸런스를 불러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그것이 나와의 마지막이었다. 중환자실에서의 며칠. 서서히 임종의 고통을 느끼며,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는 말과 함께 내가 읊어 주었던 ‘사랑의 기도’를 듣고 싶다 하고는 기도 속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렇게 그분은 가셨다. 나와는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로. 며칠을 슬픔 속에서 헤어나질 못하는 내게 남편은 익산으로 기꺼이 동행을 해 주었다.

흰 국화 한 다발을 안고 산소를 찾았다. 기도를 드린 후, 오열하는 그이 아내 곁에서 숨죽여 울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며 하늘을 쳐다보니 흘러가는 구름은 또 왜 그리 슬퍼 보였던지. 그렇게 그분과의 인연은 십 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지금도 이따금 그의 아내와 안부 전화를 주고받는다. 세 자녀와 함께 열심히 살아가는 그의 아내에게 힘찬 격려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끝까지 나를 믿어 주고 많은 배려를 해 준 남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흔치 않은 이 경험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 『꽁당보리밥』 중에서
(경남여고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64명 지음 / 보리 / 348쪽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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