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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할 수 있는 사랑
난 2남 1녀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그것도 첫째 오빠랑은 여덟 살, 둘째 오빠랑은 다섯 살 터울이 지는, 딸을 꼭 낳고 싶어 하시던 부모님의 계획 아래 태어난 예쁜 막내딸이다. 부모님 중에서도 특히 아빠께서 딸을 더욱 원하셨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태어난 막내딸이다 보니 아빠의 사랑은 자연스럽게 내게 쏠렸다. 오빠들에게는 호랑이처럼 무서우셨지만 내게는 큰소리 한 번 내지 않으셨고, 무언가를 사 달라고 조르기도 전에 갖고 싶은 것이 없냐고 물어보시곤 하셨다.

그렇게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막내딸이 어느 날 남자 친구라며 지금의 그 사람을 소개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할 때까지 단 한 번도 남자 친구를 소개하지 않았던 딸이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남자 친구라며 데리고 왔으니 아마 그때부터 부모님의 고민은 시작되었을 거다. 결혼할 상대로 데리고 온 건지, 그냥 친한 친구라서 데리고 온 건지 헷갈리셨을 테고, 열한 살 연상의 가난한 시인이라는 사실 앞에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할지 생각도 많이 하셨을 것이다.

마침 그때가 KBS 아나운서 합격증을 받은 바로 직후였다. 당시 부모님은 각종 모임에서 딸의 취직을 축하하는 한턱을 내시느라, 또 며느리로 삼고 싶다는 지인들의 말을 웃음으로 넘기시느라 바쁘셨다. 취직을 하지 않았어도 예쁘기만 할 딸인데 모두가 부러워하는 아나운서가 되었으니 부모님의 마음이 어떠했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뤄진 첫 만남이었으니 난 그 사람이 당황할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계속 눈치를 살폈고, 부모님이 화라도 내시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큰 문제없이 첫 만남이 끝났고 그날 이후 난 부모님이 어떤 말씀을 하실지 성적표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조용히 지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부모님은 그 사람에 대해서 좋다, 싫다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다. 두 분 사이에서 어떤 말이 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눈에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람을 부모님께 소개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정신없이 회사 생활을 했다. 그렇게 5개월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민정아, 지금도 그 친구 만나고 있니?”
“네, 아빠….”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야?”
“네….”
“민정아, 아빤 널 부잣집에 시집보낼 생각은 추호도 없다. 네가 사랑해서 선택한 거라면 모르겠지만 널 몇 푼 안 되는 돈에 파는 것 같아서 그건 아빠가 절대로 싫어. 그리고 그 친구, 물론 네가 무척 사랑한다는 건 알지만 아직 사회생활을 안 해봐서 어린 마음에 그런 결정을 내린 건지도 몰라. 그러니까 사회생활 1년만 더 해보고 결정하자. 그래도 되겠니?”

무일푼으로 서울에 올라와 힘겨운 세월 속에서도 대학원까지 마치신 아빠는 말씀은 없으셨지만 사랑스러운 막내딸만큼은 그런 고생 없이 편하게 살기를 원하셨을 것이다. 그때 아빠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침착하셨고 혹시나 딸이 아빠의 말을 오해하지나 않을까 걱정하시는 듯 조심스러우셨다. 아빠 말씀대로 하겠다고 대답하고 나서 내 눈에선 나도 모르게 굵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대학교 2학년 때 난 그와의 만남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결혼까지도 결심했었다. 난 언제든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스무 살이었지만 그는 이미 결혼을 생각해야 할 서른한 살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확고한 생각으로 만났던 사람이었지만 연애하는 5년 내내 어떻게 해야 결혼 허락을 받을 수 있을지 온갖 상상력을 동원했다. 그러다 결국 정답을 찾지 못했고 일단 부딪쳐보자는 심정으로 그 사람을 부모님께 소개했던 것이다. 맞을 각오도 되어 있었고 쫓겨날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아무리 내겐 너그러운 아빠지만 결혼만큼은 오빠들에게 그랬듯 호랑이처럼 무서울 것이라 확신했으니까.

아빠의 말씀을 들은 날, 난 아빠의 기대를 저버린 것 같아 죄송스러웠다. 상상치도 못할 만큼의 사랑으로 감싸 주시는 아빠 앞에서 난 한참을 울었고 아빠께서는 내 마음을 위로하시려는 듯 아무 말 없이 커다란 손으로 어깨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 후 1년이 지나갔다. 아빠는 지금의 마음이 그때와 전혀 변함이 없는지 물으셨고, 그렇다는 나의 대답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흔쾌히 우리의 결혼을 허락하셨다.

결혼한 지 8년이 지난 지금도 아빠께서는 날 보실 때마다 힘든 일은 없는지 물으신다. 그러곤 대견하다는 듯 우리 부부를 바라보신다. 오히려 하나밖에 없는 사위라며 더 잘해 주신다. 어릴 땐 위인전에 나오는 사람을 존경했고, 연애를 하면서는 지금의 남편을 존경했고, 지금은 내 부모님을 가장 존경한다. 나도 과연 아빠처럼 넓은 마음으로 자식을 감쌀 수 있을까, 이렇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자신은 없지만 마음속에 잘 담아 둔다. 나도 이제 막 한 아이의 부모로 첫발을 내디뎠기 때문이다.

- 『그 사람 더 사랑해서 미안해』 중에서
(고민정 지음 / 마음의숲 / 320쪽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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