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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으로 올래?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주말에 특별한 일 없으면 이번 주엔 당신이 우리 집으로 올래?” 하는 것이었다.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우리 집?”, “당신 집?”, “어디 평택?” 재차 물었다. 아니 언제부터 남편의 집이 따로 있었던 것인가. 남편이 평택으로 출퇴근을 하다가 육체적, 경제적인 문제로 몇 년 전 직장 근처에 집을 얻어 주말부부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평택, 그곳이 남편의 집이었나 보다.

몇 년째 주말부부를 하면서도 남편의 불편함을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부모님도 계시고 두 아이들 치다꺼리하랴, 내 일 하기에도 정신이 없었다. 금요일 저녁이면 남편이 당연히 내려오는 것에 익숙해져 내가 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못 하고 살았다. 남편이 말하는 우리 집, 평택으로 오라는 말에 내가 너무 무심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떨어져 사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주말에만 내려오는 남편이 점점 손님 같은 날이 많아졌다. 그러다 방학을 하면 오래도록 머무는 조금은 부담스러운 손님.

이 부담스러운 손님께서 지난 겨울방학 때는 베트남으로 십 일 동안 봉사활동을 갔다. 젊어서 하지 않던 걱정이 왜 그리 많은지, 문단속 잘 하고 있어라, 전화는 꼭 받아라, 밥 잘 챙겨 먹으라는 잔소리를 살아온 세월만큼 쏟아놓는다.

남편의 걱정이 한편 이해가 되었다. 아버님, 어머님, 우리 내외, 아들, 딸. 완벽한 가족 구성원이었던 우리 가족은 지난봄 느닷없이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고 가을에는 두 아이마저 직장 때문에 서울로 갔다. 그러니 나만 두고 열흘간 집을 떠나는 것이 편하진 않았으리라.

남편의 걱정과 달리 나는 남편의 당부를 건성으로 대답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배웅을 했다. 며칠은 밥 걱정 안 해도 되고, 늦은 밤에 귀가를 해도 눈치 볼 일 없어 좋고, 돌아보면 내가 하는 일을 못 하게 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눈치가 보였다. 친구들과 어디로 여행을 갈까 꿈도 꾸어보았다. 그런데 웬 여인의 변덕인가, 여심인가. 남편이 인천공항에 도착할 시간도 못 되어 열흘 동안 집에 들고 날 사람이 없다 생각하니 갑자기 두려웠다. 텅 빈 것 같은 허전함이 싫었다.

젊어 한때는 한시도 떨어지는 게 싫어 한 몸처럼 붙어 다니고 싶었다. 그게 사랑인 줄 알았다. 그런데 부부로 삼십 년을 살면서 수백 번도 더 싸우고, 수십 번도 더 이 사람과 그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만 그랬을까.

집이란, 누구의 집도 아닌 우리 집은, 앉아도 누워도 편안해야 하고, 배가 불러야 하고, 속옷만 입고 있어도 흉하지 않아야 한다. 배꼽을 잡고 입천장이 다 보이도록 시원하게 웃을 수 있는 우리만의 공간이면 족하다.

나는 집이었다.

그러나 집인 나도 가끔은 헐렁해진 문틈 사이로 바람이 들어와 추울 때가 있다. 기다리는 일에 익숙해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만 관심을 받고 싶다. 식구들은 바람이 들어오는 집에 불평만 할 뿐 왜 삐거덕거리는지 살피지 않는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디가 아픈지, 밥은 먹었느냐고, 하는 일은 잘되고 있는지, 요즈음은 누구와 다니는지 내 주변 사람들의 안부도 물어주기를 바란다. 집에도 감정이 있다는 것을 집이 되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것 같다.

남편이 베트남에 가 있던 그 열흘의 시간이 길고 춥고 지루했음이 지금도 생생하다. 남편이 나에게 따스한 집이었나 보다. 지금까지는 내가 남편의 집이 되어 주는 줄만 알았다. 이제야 뒤늦게 그 사람이 평택에서 혼자 지냈던 시간을 생각해본다. 사람이 들어오지 않는 집은 그저 가구들이 있는 공간에 불과하다. 집은 비싼 물건이나 화려한 가구가 아닌, 서로의 체취를 느끼며 존재로서의 따뜻함이 있어야 한다.

나이가 들면 걱정이 많아진다더니 내가 벌써 그런가 보다. 해질 무렵이면 동네 어귀로 들어오는 자동차를 기다리던 노인들의 심정을 알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집은 가족이다. 남편이 우리 집으로 오라는 말에 내가 너무 예민했나 보다. 남편의 집이면 어떻고 우리 집이라면 어떠랴. 내 집은 남편이고 나는 남편의 집인걸. 다들 알고 있는 이 뻔한 이치를 나는 잊고 살았다.

- 『남편의 집』 중에서
(김용례 지음 / 정은출판 / 222쪽 /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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