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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힘
한참을 기다렸다는 듯 겨울은 오고 강물도 이내 꽁꽁 얼어버렸다. 게다가 지난밤에는 눈마저 흩뿌린 모양이다. 나는 화실 창문 너머로 펼쳐진 강변의 새로운 변화를 가까이서 감상해볼 요량으로 강으로 향했다.

마치 굵은 소금을 뿌린 듯 눈마저 허옇게 덮인 겨울 강을 대하노라면 자꾸만 어린 시절 얼음을 깨고 빨래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떤 핑계든지 한 끼씩은 건너야 했고 돌아서면 배가 고프던 그 시절, 아무 데도 기댈 곳 없던 겨울은 왜 그리도 추웠던지.

시어른에 어린 자식 여섯 남매까지 열 식구가 내놓는 빨래가 얼마나 많았던지 어머니는 줄잡아 사흘에 한 번꼴로 얼음을 깨고 빨래를 하셨던 것 같다. 나무 방망이로 툭툭 두들겨 두꺼운 얼음을 깨고 작은 멍석만 한 구멍이 생기면 빨래를 얼음물에 담그기 시작했다. 손은 금세 얼어 벌겋게 굳어가도 애벌은 다 헹궈야 잠시 쪼그려 앉았다. 그러고는 허벅지 밑에 손을 넣어 잠시 굳은 손가락을 펴곤 하셨다. 비누를 칠하여 빨고 다시 헹구기를 반복하다 보면 몇 시간이 흘렀던 것 같다.

내가 초등학교에 갓 들어갔을 무렵이었을까. 한번은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굳이 빨래 길을 따라나선 적이 있었다. 예사롭게 얼음물에 손을 넣고 빨래를 헹구는 모습을 보고 나도 손을 한번 넣었다가 손가락이 잘려나가는 듯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집으로 내달리고 말았다. 그렇게까지 차갑고 시린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그때는 다만 어머니는 어른이니까 손이 덜 시린 줄 알았다. 어머니가 나처럼 저리고 아팠다면 그 오랜 시간 도저히 언 물에 빨래를 하지 못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자라고 어른이 되어도 언 강물은 그때의 그 차가움과 손목을 끊어낼 듯한 고통과 다르지 않았다. 내가 어머니에겐 얼음물도 차갑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바꾸기까지는 참으로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누가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고 했던가. 내 어릴 적 기억 속의 어머니는 자그마한 키에 몸무게가 50kg을 넘지 않았고, 자주 병원에 실려 다니던 연약한 모습뿐이다. 그러나 열여덟 살에 가난한 농부의 아내로 시집와서 일흔을 갓 넘기고 돌아가시기까지 이룬 성과를 놓고 가늠해보면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흔히들 하는 말로 작대기 하나 꽂을 땅이 없던 살림을 남부럽지 않게 일구시고 여섯 자식 낳아 보란 듯이 뒷바라지한 그 힘의 근원이 무엇인지 말이다. 불과 50여 년, 그 어떤 자금의 뒷받침도 없이 오로지 몸뚱이 하나로 한 가정을 일으켜 세우고 자식들을 올곧게 키워서 사회에 내보내고 나눔을 실천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아마도 그것은 어머니이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여겨진다.

마음을 주고 몸을 주고, 마침내 한 생애를 송두리째 다 주어버려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는 어머니는 대체 얼마나 많은 힘을 지녔을까. 어머니의 힘은 얼마일까. 몇십 톤, 아니 몇천 톤이 넘을지 모른다. 그것은 결코 사람이 재기 힘든 힘일 것이다. 어쩌면 언젠가 자식이 자라 부모가 된 뒤에야 조금은 알 수 있는 무게일 것이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그 빈자리에 홀로 서본 뒤에야 나머지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이 모두 사막으로 변한다 해도 마르지 않는 샘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어머니라는 샘일 것이다. 아무리 주어도 언제나 줄 것이 남아 있고 아무리 퍼내어도 언제나 새로운 물이 고여 있는 샘일 것이다. 그리고 종래는 그 샘마저 통째로 주고 떠나는, 떠나서도 닿지 않는 마음의 물길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사람, 그 이름이 어머니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사라져서 간절히 다가오는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어머니일 것이다.

아무도 걸어간 적 없는 눈 위로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첫 발자국을 남기며 돌아서는 마음 한켠으로 문득 어머니의 말씀이 들려왔다.

“몸뚱이 하나밖에 내놓을 게 없는 사람이 이 험한 세상에 살아남을라카마 몸뚱이가 부서지도록 일을 해서 그 대가를 치르는 수밖에 없다 아이가…….”

고통이야말로 기쁨을 향한 아름다운 준비라고 누누이 강조하시던 어머니의 힘은 대체 얼마나 센 것일까.

- 『꽃은 꽃을 버려서 열매를 얻는다』 중에서
(민병도 지음 / 목언예원 / 216쪽 /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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