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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가장 특별했던 순간
식탁에 마주 앉으면 살아 있음에 대한 안타까운 감사와 사랑으로 내일 걱정을 잊었다. 그 시간, 구미에 맞는 한 그릇의 두부찌개는 누가 천 년까지 먹고살 보화를 가지고 와서 바꾸자고 해도 거들떠도 보지 않을 만큼 값진 것이었다. 남들이 십 년 후를 근심하고 백 년을 위한 계획을 세우는 동안 우리는 순간을 아까워했다.

일생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남편과 식탁에 마주 앉아 두부찌개를 먹던 식사 시간이었다고 회상하는 소설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 남편이 저세상으로 떠난 후에 그가 남긴 모자 여덟 개를 보며 회한과 추억을 서술하고 있는 박완서 선생의 자전적 소설입니다.

오동나무 이층장 위 칸에는 남자 모자가 여덟 개나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장 위에는 한 남자의 사진이 놓여 있습니다. 사진 속의 그는 미소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쓸쓸하고 복잡한 미소입니다.

남편의 폐암이 뇌로 전이되면서 죽음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거짓 희망으로 그를 들볶았습니다. 병원 약과 방사선 치료만으로도 지칠 대로 지친 그에게 좋다는 한약, 생약을 다 실험하려 들었습니다. 온갖 채소와 약초, 녹즙을 그의 입에 넣으면서 꼭 고쳐 놓고 말 테니 두고 보라고 장담했습니다. 매일 밤 그의 손을 꼭 붙들고 잠들었습니다. 행여 잠든 사이에 영혼이 육신을 훌쩍 떠나가지 않도록…….

이렇게 결코 그를 혼자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처럼 굴면서 아내는 뒤로 조금씩 장사 치를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딸을 시켜 환갑 때 찍은 사진 중에서 부부 사진을 사진관에 보내 아버지만 홀로 떼어 내어 영정으로 쓰기에 적당한 크기로 확대해 오게 했습니다. 미리 영정 사진을 받아 보고 아내는 그만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것처럼 뜨끔했습니다. 그의 미소는 거짓 희망에 속아 주고 있을 뿐 정말 속고 있는 건 결코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쓸쓸함 때문에 우는 것 같기도 하고, “괜찮아, 괜찮아.” 위로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죽을 날을 받아 놓고 살아가는 세월……. 마지막 일 년은 참으로 아까운 시절이었습니다. 외출한 남편을 기다리며 아내는 저녁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부엌 조리대 위 작은 창을 통해 버스 정류장을 내려다볼 수 있었는데, 그가 저녁노을 속으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손엔 2홉들이 소주병을 달랑 들고…….

아내의 눈에 그의 존재가 시간과 마찰하면서 빛나 보였습니다. 마치 신혼 때처럼 가슴을 울렁이며 그를 마중했습니다. 식탁에 마주 앉으면 살아 있음에 대한 감사와 사랑으로 두부찌개 한 그릇도 소중했고 십 년 후, 백 년 후의 계획보다 그 순간이 아깝고 소중했습니다.

그동안 그에겐 모자 일곱 개가 생겼습니다. 항암 치료로 머리가 빠지면서 자식들이 사들였기 때문입니다. 매일 아침 모자 일곱 개를 번갈아 쓰며 멋 부리는 버릇도 여전했습니다.

“어때? 나 예술가 같지?” 하고 그가 물으면 “예술가 좋아하시네. 꼭 난봉꾼 같네.” 하고 응수하곤 했습니다. 미국 사는 막내가 무엇을 사 갈까 물었을 때 아내는 모자를 사 오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여덟 번째 모자였습니다. 남편은 마지막 순간까지 집에서도 늘 그 모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의 유품 중에 다른 것은 다 나눠 줬지만 모자는 아내가 가졌습니다. 아내는 요새도 그가 남긴 모자 여덟 개를 꺼내 봅니다. 그 안에서 머리카락 한 오라기라도 찾으려고 더듬어 보지만 번번이 헛손질로 끝납니다. 아침마다 우수수 지던 그 숱한 머리카락은 지금 얼마만큼 멀리 흩어져 티끌로 떠도는 걸까……. 아내는 생각합니다.

영화 <시티 오브 엔젤>에서 나왔던 대사로 기억합니다. “공기 냄새를 맡고 물맛을 보며 그녀의 머릿결을 만져 볼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어.” 남자 주인공이 그토록 원했던 것도 아주 사소한 것이었지요.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일상, 이 평범한 하루가 가장 행복한 천국의 하루인지도 모릅니다.

부부가 두부찌개를 앞에 두고 마주 앉는 시간, 소주 한 병 사 들고 걸어오는 남편을 마중하는 시간, 햇살을 받으며 자전거 타기, 손으로 직접 쓴 편지 보내기, 편안하게 낮잠 자기, 아버지를 두 팔에 안아 보기, 어머니를 업고 일곱 걸음 걸어가기…….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은 이렇게 아주 사소하고 쉽습니다.

가장 빛나는 시간은 그렇게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다는 걸, 가장 설레는 시간은 그렇게 그 사람과 시선을 맞추는 때라는 걸 우리는 왜 자꾸 잊어버리고 사는 걸까요?

- 『내 인생의 화양연화』 중에서
(송정림 지음 / 자음과모음 / 300쪽 / 1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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