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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아빠
내가 진료하는 비뇨기과 병원에는 종종 파키스탄이나 동남아에서 온 노동자들이 치료받기 위해 방문한다. 가족을 위해 2년 전 한국에 온 한 파키스탄 근로자가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 우리 병원에 들렀다. 한국에서 한 번도 외도한 적이 없고, 오직 아내와 자녀와 부모님을 생각하며 일했지만 오랫동안 성관계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발기가 잘 안 되어 고민하는 눈치였다. 아내를 실망시키기 싫어서 왔다고 했다. 상담을 하면서 나는 참으로 아름답고 위대한 아버지와 한 남편을 만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과 마음으로 가장 가까운 아내를 위해 자신을 주고 섬기려는 모습에서 그들이 왜 행복지수가 높은지 알 것 같았다.

그들은 자녀들과 가족을 위해 돈을 벌고자 한국에 왔다. 아버지를 남겨 두고 가족이 떠난 것이 아니라, 가족을 남겨두고 아버지가 떠났다고 해야 맞다. 그들이 흘린 땀은 가족을 하나 되게 만들고, 가족을 지키는 전사로서 아버지상을 남겨 주기 때문에 우리가 말하는 기러기 아빠와는 다르다. 행복의 파랑새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 있다.

최근까지 우리 병원을 봐주던 동료 의사는 10년 전에 두 아들을 아내와 함께 유학을 보낸 기러기 아빠다. 당시 중1, 중2 두 아들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아내는 아내대로 시댁과의 갈등이 있어 도피성 조기유학을 떠나게 된 것이다. 그도 그렇게 하는 것이 아이들과 아내와 자신을 위해서 최선책이라 생각하고 동의를 해 주었다. 남편은 아이들을 위해서 열심히 한눈팔지 않고 일했다. 환자가 점점 줄어서 힘들었지만 좋아하던 골프도 끊고 술도 줄여서 아이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보내 주었다. 처음에는 1년에 두 번 정도 아이들을 격려하고 아내도 보고 싶어 미국을 방문했다. 나중에는 왕복 비행기 요금과 병원을 비우는 데 따른 수입의 감소를 염려하는 아내의 요청에 따라 1년에 한 번만 방문하기로 했고, 최근 3년 동안은 가족을 만나러 간 적이 없었다. 참기 힘들었던 성욕은 자위로 해결하다가 지금은 욕구도 서서히 사라져 명퇴하고 쉬는 상태다.

최근에는 환자가 줄어 그는 병원을 처분하고 대진의로 1년을 보냈다. 한 달에 20일 정도 전국을 돌아다니며 이 병원 저 병원에서 일했다. 그때그때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병원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돈을 아꼈다.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미국에 있는 아내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아이들도 이제 대학을 졸업했으니 이혼하여 각자의 삶을 살자는 내용이었다. 결혼한 지가 20년이 넘었지만 자녀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같이 산 기간보다 떨어져 있는 날들이 더 많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아내는 2년 전부터 다른 남자를 만났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이성 친구를 만나 동거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 의사는 끊었던 술과 담배를 다시 시작했는데 대부분 폭음으로 끝났다. 술에 취해서 간혹 울 때에는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성관계는 몸과 마음과 영혼이 하나 되는 거룩한 선물이다. 자신의 몸으로 배우자를 섬기며 마음을 주는 행위다. 부부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함께 있어야 건강해질 수 있다. 떨어져 있으면 친밀함이 없어지고, 같이 있는 것이 불편해져서 나중에는 떨어져 사는 것을 편하게 느끼게 된다. 아이들을 핑계 삼아 별거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은퇴해 인도네시아에서 의료봉사를 하는 선배가 최근 나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그분의 아내는 폐암 말기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인생은 너무 짧더군요. 의대를 졸업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40년이 지나갔습니다. 이 선생님, 인생은 사랑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부디 시간을 아껴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이제 아내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영원히 살 줄 알고 사랑을 표현하는 데 게을렀던 지난날들을 생각하면 내가 미워집니다.”

선배는 아내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끔찍이 사랑했고, 아내 또한 남편에게 순종하며, 늘 그렇게 사랑했던 부부다. 선배의 자녀들은 부모들의 좋은 영향으로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건강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등을 보며 자란다. 선배처럼 부부간에 사랑을 표현하고 친밀하게 사는 부모를 둔 자녀들은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어떤 일 앞에서도 의연하게 자신의 삶을 살게 될 확률이 높다.

지금 우리나라 가정들은 이혼과 별거와 정서적 이혼 등으로 무너지고 있다. 그곳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분노와 수치심을 가지고 거리로 나와 방황한다. 그들의 눈은 초점이 흐려져 있고 건드리기만 하면 터질 것 같은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다. 부부가 친밀하게, 재미있게 살지 못하면 필연적으로 이렇게 된다. 부부를 하나 되게 하는 것은 서로가 몸과 마음으로 상대의 필요를 들어주는 것이다. 이것이 사랑이다.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중에서
(이주성 지음 / 성안당 / 237쪽 / 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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