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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어머니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어머니 나이 마흔하나에 태어난 막내인 나는, 어머니의 젊은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일곱이나 되는 자식 뒷바라지에 당신은 언제나 뒷전으로 물러앉던 어머니였기에 어머니는 다른 시절도 없이 그냥 어머니로만 있는 줄로 알았다.

종갓집 맏며느리인 어머니는 후덕하고 마음이 큰 분이셨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언행이 바르고 남의 일을 내 일처럼 아셨다. 한 세기 전의 여성이 다 그랬듯이 학교교육은 많이 못 받았지만 시부모님 봉양은 물론 남편한테 극진해서 동네 사람들이 모두 열녀상을 주어야 한다고 할 정도였다.

열녀라는 소리를 들을 만한 일화가 하나 있다. 이승만 정권 시절, 아마 거창 양민학살사건 때의 일이지 싶다. 그 파동이 우리 동네에까지 미치자 지방 유지이던 아버지도 붙잡혀 갔다. 아버지가 구치소에서 몇 달을 보내는 동안 어머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버지를 면회 가셨다. 구치소 앞에서 밤을 새우며 죄 없는 남편을 풀어달라고 탄원도 했고, 남편이 고생하는데 아내인 자신이 어떻게 안방에서 편안히 잘 수 있느냐며 구치소 앞에다 거적을 깔고 자는 걸 보면서 경찰들도 감동했다고 한다. 조용하게만 보이는 어머니한테 그토록 강한 면이 있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엔 온 동네뿐 아니라 나라 전체가 가난할 정도로 척박한 시대였다. 부정부패로 몸살을 앓던 때라 빈부의 차가 점점 더 심해져,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더 가난할 수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하루 세 끼를 제대로 챙겨 먹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거지와 나환자들이 날마다 대문 앞에 줄을 서던 때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거지들에게 밥을 줄 때에도 밥그릇을 땅바닥에 내려놓지 않고 항상 상에다 차려서 손님 대접하듯 했다. 그런 어머니였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기쁨으로 삼던 어머니.

4대가 함께 살아 우리 집 식구 열댓 말고도 남의 군식구까지 날마다 스무 명이 넘게 북적거려도 싫은 내색 한번 안 하시던 어머니. 사람 사는 집에는 사람이 와야 그 집이 잘된다거나, 콩 한 개라도 쪼개서 나누어 먹어야 복 받는다거나 하는 말로 그 어려움을 넘기시곤 하셨던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를 아버지는 끔찍이도 사랑하고 위하셨다.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각별하셨다. 식사 때도 꼭 겸상을 하셨고, 말씀도 낮추지 않으셨으며 함께 외출도 잘 하셨다. 어머니는 동네 아낙들의 시샘과 부러움을 함께 받기도 한 복 많은 분이셨다. 아버지께서 약주라도 한잔하시는 날은 어머니 자랑이 늘어지는 날이 되었다.

“네 어머니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네 어머니가 가면 나도 곧 따라갈 거다.”

지나고 보니 아버지의 그 말씀이 자식인 우리들을 가장 기쁘게 해주던 말인 것 같다. 당 송시에 능통할 정도로 박식했던 아버지가 가장 사랑하신 분은, 당신께는 훨씬 못 미치는 배움의 어머니셨고, 따뜻하고 정숙하고 사려 깊은 어머니가 가장 이해하고 신뢰하는 분은, 까다롭고 결벽하고 엄격한 아버지셨다. 그분들은 서로를 생각하고 서로를 위하셨다.

살아 계실 때 서로를 그토록 위하시더니 돌아가실 때에도 같은 해에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2월에, 아버지가 10월에 돌아가셨으니 어쩌면 두 분은 하늘이 점지한 천생연분의 배필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우리 일곱 남매를 인간이 되게 해주신 최초의 스승이었지 싶다. 우리들이 잘못했을 때에도 야단치시는 것보다 “사람이 되어야지” 하시며 조용히 타이르셨다. 내가 자랄 때 제일 많이 듣던 말이 ‘사람이 되어야지’였다. 그땐 그 말이 지겹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 말이 금언처럼 생각된다.

막내인 나를 시켜 못사는 이웃에게 먹을 것, 입을 것을 갖다주게 하셨던 어머니. 아들딸 구별 많던 그 시절에도 딸일수록 생일을 잘 차려 먹고 자라야 잘산다며 푸짐하게 생일상을 차려주시던 어머니.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막내딸이 방학 때 내려가면 허약한 몸에는 골 메우는 것이 제일 좋다며 찹쌀 새알죽을 끓여주시던 어머니… ….

그 어머니의 딸이라는데 나는 아직도 어머니의 반만큼도 살지 못한다. 그런저런 어머니 생각이 날 때면 지금도 나는 많이 운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과 후회의 마음이 뒤범벅이 되어 가슴을 치지만 어머니는 지금 내 곁에 없다. 이 세상에서 다시는 만날 수도 없다. 내 마음속에, 내 시(詩) 속에 살아 계실 뿐이다.

- 『내일을 사는 마음에게』 중에서
(천양희 지음 / 열림원 / 327쪽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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