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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경영으로 승부수를 던져라
이건희가 반도체 사업에 관심을 갖고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1974년이었다. 파산 직전에 있던 한국반도체라는 회사를 인수한 게 시작이었다. 당시 신분도 이사에 불과했다. 이건희는 시대가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넘어가고 있음을 감지하고, 그 핵심에 반도체가 있다고 여겼으며, 그는 여기서 미래를 봤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삼성의 한국반도체 인수를 예상 밖이라고 평가했다. 오일 파동으로 전 세계 경제가 휘청거렸고, 힘들게 진출했던 전기와 전관 사업 부분에서도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도체 사업에 대해 당시 비서실에서는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반대했고 아버지 이병철마저 확신을 갖지 못했다. 오직 이건희 혼자 반도체에 매달리며 자신의 개인 돈으로 한국반도체를 인수하겠다고 나선 상황이었다.

어릴 때부터 전자 제품을 일일이 뜯어보고 조립해 보면서 기술에 대한 안목을 넓혀갔던 이건희는 반도체의 미래에 대한 자신의 직감과 통찰력을 믿었다. 그러나 방향이 맞아도 사업의 성공은 또 다른 문제다.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이내 수많은 난관에 부딪혔다. 한국반도체는 삼성전자에 필요한 부품을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에서 핵심부품들을 수입해야 했다. 일본 기업만 살찌웠을 뿐 경영은 점차 악화됐다. 삼성반도체는 이렇다 할 제품은 고사하고 자본금을 모두 잠식한 채 부도 위기까지 내몰렸다. 결국 이병철이 나서서 사업을 챙기게 되었다. 반도체를 챙기는 과정에서 이병철은 반도체의 중요성을 재인식하여 그룹의 사활을 걸고 반도체에 역량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일본 반도체 업체들의 대대적인 저가 공세로 반도체 가격이 폭락했다. 벌 만큼 벌었으니, 한국과 미국의 반도체 업체를 손봐주겠다는 심산이었다. 일본 업체들이 의도한 대로 1986년까지 삼성반도체는 2,000억 원의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이병철은 기흥의 반도체 공장에 라인을 하나 더 증설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임원들은 펄쩍 뛰었다. 라인 증설은 우여곡절 끝에 6개월이나 미뤄지다가 겨우 착공을 시작했다. 하지만 사태는 곧 급반전되었다. 1987년부터 반도체 경기가 급격히 살아나더니 모든 라인을 풀가동해도 주문량을 채우지 못할 정도가 됐다. 라인 증설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아연실색했고, 삼성의 반도체는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불황 속 라인 증설, 이것은 삼성의 승부수였고, 여기에 가장 깊숙이 관여한 인물이 바로 이건희였다. 이병철이 고민하고 있을 때 이건희가 과감한 선행 투자가 필요하며 곧 경기는 회복된다고 아버지를 줄곧 설득한 것이다. 결국 이병철은 이건희의 견해를 따랐고 시장을 선점했다. 시장이 바닥에 있을 때 일시적인 손해를 감수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결단이야말로 성공의 비법이었다.

이건희는 사업의 고비마다 기발한 발상과 업의 흐름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승부수를 던질 줄 알았다. 삼성이 일본의 LCD 아성을 무너뜨린 것도 이건희의 발상에서 시작되었다. 1990년 말 일본에 머물던 이건희는 비서실 김순택 팀장을 다급히 호출해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 “삼성전관(현 삼성 SDI)에서 추진 중인 LCD 사업을 삼성전자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세요. 귀국 즉시 이 건으로 계열사 사장단 회의를 소집하겠습니다.”

LCD가 반도체 공정과 흡사하기 때문에 대다수 사람들이 삼성전관이 맡게 될 것으로 여겼지만, 이건희의 생각은 달랐다. 이건희는 어느 회사가 맡느냐가 분명히 앞으로 LCD 사업 추진에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선택은 삼성전관이 아닌 삼성전자였다. 삼성 LCD의 역사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후발주자로 출발해 1위로 오르기 위해서는 남들이 선택하지 않은 길을 과감하게 택하는 ‘역전의 DNA’가 필요했다. 삼성은 일본 기업들이 선택한 28.70cm(11.3인치)가 아닌 30.73cm(12.1인치)로 승부했다. 그리고 4년 뒤 1994년 10월, 일본 전자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세계 최대 디스플레이 전시회인 LCD 인터내셔널에서 삼성전자가 35.56cm(14인치) LCD 샘플을 전시하자 일본 언론은 앞다투어 ‘LCD에 삼성이 몰려온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1998년 마침내 삼성전자는 세계 LCD 시장에서 1위를 차지했고 이후 줄곧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또한 삼성은 TV 시장에서도 발상의 전환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이건희는 지난 2004년 “아날로그에서는 뒤졌지만, 디지털에선 1등을 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사운을 걸고 디지털 TV를 개발하라”고 특명을 내렸다. 당시 소니를 비롯한 일본 기업들이 세계 TV 시장을 점령하고 있던 상황에서 삼성이 뒤늦게 디지털 TV로 1위를 한다는 생각은 무모해 보였다. 그러나 이것이 언뜻 엉뚱해 보이는 이건희 식 발상이었다. 신형 디지털 TV제품으로 ‘사각형’과 ‘원통형’ 디자인 중 하나를 놓고 고민하던 삼성은 과감하게 원통형을 선택했다. 제품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삼성은 그다음 모델로 ‘오각형 TV’를 준비했다. TV가 사각형이라는 일반인의 고정 관념을 깬 것이다. 이어서 와인 잔 모양의 ‘보르도 TV’를 선보였다. 이 제품은 삼성TV를 세계 정상에 올려놓는 위력을 발휘했다. 이에 힘입어 삼성은 지난 2006년 TV사업 진출 37년 만에 소니를 추월해 세계 TV 시장 1위를 차지했다. 이후에도 삼성은 발광다이오드(LED) TV, 3차원(3D) TV, 스마트 TV,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 등 세계 TV 시장의 역사를 새롭게 쓰면서 6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 『창업의 신 정주영 수성의 신 이건희』 중에서
(이상훈 지음 / 머니플러스 / 288쪽 /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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