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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왕, 석유왕, 철강왕
1862년, 68세의 코넬리어스 밴더빌트는 42년 동안 몸담아온 해운업과 작별하고 철도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68세에 업종을 바꾸는 것은 큰 모험이지만 밴더빌트는 모험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었고 지난 50년 동안 그렇게 사업을 해왔다.

밴더빌트는 열여섯 살 때 어머니로부터 빌린 100달러로 낡은 배를 사들여 뉴욕 만을 오가는 운수업을 시작했다. 뉴욕에서 수로 운송이 황금기를 누리던 1824년 가을, 밴더빌트의 회사를 비롯한 여러 해운회사들에게 영업정지 조치가 내려졌다. 법원에서 뉴욕의 증기선 독점 운영권이 상업용 증기선 개발을 후원했던 리빙스턴가에 있다고 판결한 것이었다. 로버트 리빙스턴은 뉴욕 최초의 대법관으로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취임식을 주재하기도 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밴더빌트는 물러서지 않고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는 미국 대법원에서 재판이 진행된 최초의 상업 관련 소송이었다. 당시 밴더빌트는 부와 지위, 학식 면에서 도저히 리빙스턴가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밴더빌트는 포기하지 않고 무려 5년 동안 매달렸다. 결국 대법원은 뉴욕 주가 뉴욕과 뉴저지 사이의 운송업을 독점하도록 규정할 권리가 없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미국에 통일된 시장을 형성시켰고, 계급사회를 무너뜨리는 단초가 되어 미국의 역사를 바꿔놓았다고 할 수 있다.

의욕이 충만한 사람들에게 사상의 해방은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지름길이었다. 그리고 그 능력을 경제적 부로 전환하기 위한 수단, 그것이 바로 기업이었다. 중앙집권과 지방분권이 결합된 미국의 정치체제는 기업들이 발전할 수 있는 훌륭한 토양이 되었다. 특히 지방분권을 통해 각 주가 서로 경쟁하도록 하는 체제는 상업의 발전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각 주는 잇따라 회사법을 개정하고 앞다투어 기업에 대한 통제를 완화했다. 또한 미국은 시장을 얻기 위한 대가로 피를 지불했다.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링컨 대통령은 국가 분열의 위기 앞에서 노예제의 존폐는 중요하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국가의 통일과 그에 수반되는 시장의 통일이었다. 1862년 7월 1일, 링컨 대통령은 ‘태평양 철도법’에 서명했고, 이에 따라 정부의 위탁을 받은 두 회사가 최초의 북미횡단철도를 부설했다. 철도회사들은 막대한 부를 얻었을 뿐 아니라, 미국에 완전히 통일된 시장경제를 탄생시켰고 더 큰 부를 창출하도록 만들었다.

통일된 거대한 시장은 분열된 국가를 다시금 하나로 통합시켜주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시장이 미국인들에게 부자가 되는 꿈을 심어주어 국가에 새로운 원동력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68세의 밴더빌트도 이 점을 간파했다. 그는 여러 개의 단거리 철도를 사들여 그것을 하나로 연결했다. 그러자 전국에 철도를 직접 건설하지 않고도 철도운송 사업에 가장 필요한 철도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철도망이 구축되자 밴더빌트는 운송비를 낮추어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고객을 유치했다. 그 후 그는 부와 명성을 동시에 거머쥐며 명실상부한 철도왕이 되었다.

어디든 철도가 들어서면 곧 발전하기 시작했다. 운수업, 제조업, 백화점 등 각 업종에서 기업의 규모가 점점 커져 국가와 개인의 생활을 빠르게 변화시켰다. 1863년, 스물넷의 존 록펠러는 저축한 돈 4,000달러를 밑천으로 정유공장을 차렸다. 록펠러는 이민 가정의 장남으로 어려서부터 어머니와 함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불우한 운명을 원망하지 않고 묵묵히 성실하게 일했다. 록펠러는 “나는 타고난 운명에 따라 살지 않는다. 내 계획에 따라 운명이 뻗어나간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록펠러는 특유의 절약정신으로 비용을 통제하며 회사의 경쟁력을 키워나갔다. 휘발유 1갤런의 가격이 88센트에서 5센트까지 떨어졌을 때에도 록펠러의 회사는 흑자를 유지했다. 1870년, 서른한 살의 록펠러는 정유공장 두 곳과 석유수출상사를 합병해 스탠더드오일을 설립했다. 그리고 1872년 2월 17일부터 3월 28일까지, 불과 39일 만에 22개의 경쟁업체를 인수했다. 그 무렵 록펠러는 철광석 산업에도 진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한편 스코틀랜드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앤드루 카네기는 열두 살이 되던 해에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았다. 그는 가정 형편 때문에 학교도 다니지 못했다. 그의 가장 큰 소망은 서른다섯 살에 일을 그만두고 케임브리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었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돈을 벌었다. 서른세 살 되던 해에 카네기는 드디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철도회사에서 관리직으로 근무하며 5만 달러의 연봉을 받고 40만 달러 상당의 철도 주식도 보유하게 되었다.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영국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 대신 그동안 모은 돈으로 최신 제철 설비를 구입하고 최고의 기술자를 영입했다. 철강이 철도 시대에 가장 중요한 제품이 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카네기는 철광석의 채굴에서부터 최종 제품의 출하까지 단일 생산라인 체제를 구축했다. 20년도 채 되지 않아 카네기는 철강 가격을 1톤당 100달러에서 12달러로 낮췄다.

그런데 그 무렵 록펠러가 철광석 광산을 대량으로 매입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뿐만 아니라 록펠러가 제철소까지 세울 것이라는 소문도 들려왔다. 카네기는 곧바로 록펠러를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 이렇게 제안했다. “철강업에 진출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보유한 모든 철광석을 사겠소.” 록펠러는 카네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대신 자신이 보유한 철도와 선박으로 철광석을 운송할 것을 교환 조건으로 내걸었다. “나보다 더 강한 상대와는 싸움이 아닌 협상을 해야 한다.” 이것은 카네기가 평생 동안 지켜온 신조였다. 그는 자신의 묘비에도 다음의 글을 남겨달라고 유언했다. “자신보다 유능한 사람들을 잘 활용한 사람이 여기에 잠들다.”

협력은 이성을 통해 얻어낸 성과였다. 미국의 경제학자 존 갤브레이스는 “협력과 자신의 이익을 결합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성공적인 예가 바로 기업이다”라고 말했다. 당시 무수히 많은 영세기업들이 사라지고 빈민굴에서 탄생한 백만장자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 『기업의 시대』 중에서
(CCTV 다큐 제작팀 지음 / 다산북스 / 476쪽 /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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