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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의 리더십
몇 해 전 《뉴욕타임스》는 지난 1,000년간 최고의 리더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을 선정했다. 엘리자베스 1세는 16세기 영국 절대주의의 전성기를 이끌어내고 영국을 정치와 상업, 예술 분야에서 유럽 최고의 국가로 끌어올렸다. 25세에 즉위한 여왕은 구교와 신교의 갈등을 해소하여 종교적 통일을 이룩했으며,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함으로써 이후 영국이 대제국으로 발전하는 기초를 다졌다.

엘리자베스 1세의 성장과정은 지극히 불행했다. 헨리 8세와 그의 두 번째 왕비인 앤 불린 사이에서 태어난 엘리자베스 1세는 어머니가 간통과 반역죄로 참수된 뒤 왕위계승권이 박탈된다. 이복 언니 메리 1세가 즉위한 후에는 반란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고 런던탑에 유폐되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도 결코 동요하지 않는 냉철함을 보였다.

1558년 11월 메리 여왕이 죽자 엘리자베스 1세는 마침내 국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왕위에 올랐다. 엘리자베스 1세는 즉위하자마자 산적해 있던 국내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나갔다. 대외문제도 지혜롭게 해결함으로써 나라를 큰 전쟁 없이 평화롭게 다스렸다. 엘리자베스 1세가 즉위할 때만 해도 잉글랜드는 약소국가로 전통적 강대국인 스페인과 동맹을 맺어 강대국 프랑스와 대적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이러한 영국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여왕은 무엇보다도 ‘민심이 천심’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여왕은 세금을 국가가 정하지 않고 국민이 주는 대로 받겠다고 약속하고 이를 실천했다. 그 결과 당시 영국의 세금은 유럽에서 가장 적었다. 하지만 이런 세금제도가 오히려 놀라운 역사적 사건을 만들어냈다.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을 위협했다. 당시 영국 왕실은 재정이 빈약해 전함을 구축할 자금이 부족했다. 여왕은 국민들에게 전쟁 비용을 모금해달라고 호소했다.
“시련이 올 때 어떤 자는 두려워서 떨지만 어떤 자는 날개를 펴고 비상합니다.”

결과는 놀라웠다. 당초 예상했던 금액보다 훨씬 더 많은 성금이 모였고, 영국인들의 높은 애국심 덕분에 아르마다 해전에서 영국은 마침내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했다. 적을 맞은 여왕은 그 어떤 남성보다 강인했다.

▲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리더십 특징

첫째, 관용의 리더였다.
여왕이 국내 정치에서 거둔 가장 탁월한 업적은 신·구교의 갈등을 해결한 것이다. 여왕은 영국 국왕이 영국국교회수장이라고 선언하는 수장령을 부활해 영국국교회를 다시 확립함으로써 구교와 신교의 갈등을 지혜롭게 해소했다. 여왕은 당대 다른 지배자들과 달리 중용과 타협의 정신으로 모든 국사를 처리했다. 엘리자베스 1세 시기에 영국이 전반적 번영과 경제성장, 문화창달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여왕이 국민들에게 양심의 자유를 보장해준 덕분이었다.

둘째, 인재를 잘 활용했다. 여왕은 윌리엄 세실, 니콜라스 베이컨을 비롯해 경험이 풍부하고 믿을 만한 조언자들을 주위에 두고 그들을 적소에 잘 활용했다. 즉위 첫날 여왕이 수석국무장관으로 임명한 세실은 40년 동안 여왕을 보필했다. 또한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자 해적선장 드레이크를 과감하게 기용하기도 했다.

셋째, 소통의 리더였다. 겸손과 관용이 있어야 국민과 소통할 수 있다. 여왕은 자신을 가두고 억압했던 과거의 정적들을 용서했을 뿐만 아니라 요직에 등용하여 국가경영에 동참하게 하는 놀라운 관용과 화해를 보여주었다. 또한 국민은 누구나 쉽게 여왕에게 접근하도록 허용하는 섬김의 자세를 보였다. 당시 왕정체제에서 국민이 왕에게 접근하여 대화한다는 것은 실로 파격적인 일이었다.

넷째, 강함과 부드러움을 자유자재로 활용한 리더였다. 당시 영국은 효율적인 경찰력도 없었으며 잘 발달된 관료제도도 없는 가난하고 약한 나라였다. 따라서 나라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매번 까다로운 의회를 상대로 협상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정치적으로 타협할 때도 여왕은 여성의 부드러운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했다. 여왕은 기회만 있으면 정치 언어를 사랑의 언어로 바꾸고 자신을 영국과 결혼한 성스러운 처녀여왕으로 부각시켰다. 엘리자베스 1세는 45년 치세를 마칠 때까지 끝내 결혼하지 않고 처녀여왕으로서 이미지를 확고히 굳혔다.

다섯째, 일관되게 원칙을 지켜나갔다. 엘리자베스 1세는 여성적 재치와 쾌활함까지 곁들여 산적한 난제를 원칙에 따라 일관성 있게 처리해나갔다. 일례로 악성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70만 파운드에 달하는 악화(惡化)를 꾸준히 정리해나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실리를 추구하는 왕이었다. 의미 없는 유칙이나 전통은 과감하게 버렸다. 이런 안정된 바탕 위에서 이른바 영국 르네상스의 문화적 기틀도 잡혔다. 셰익스피어로 대표되는 영국 문화가 꽃피운 것도 바로 이때다.

여섯째, 끝까지 살아남는다. 엘리자베스 1세는 런던탑에 유폐되는 등 몇 차례나 중대한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나 그녀는 극한상황에서도 ‘생존이 곧 승리’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고 이를 극복해냈다. 여왕이 다스린 45년 동안 파산 직전이던 영국을 세계 최강의 제국으로 바꿀 수 있었던 저력은 바로 런던탑에 갇혀 언제 처형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있다.

- 『이순신처럼 생각하고 리드하라』 중에서
(유성은 지음 / 평단 / 336쪽 /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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