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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딜락을 위기에서 구한 관찰력
(김병도 지음/21세기북스/2003년 9월/295쪽/12,000원)

캐딜락은 미국을 대표하는 고급자동차 브랜드이다. 100년이 조금 넘는 자동차 역사 동안 수천 종의 자동차 브랜드가 시장에 출시되었지만 오늘날까지 소비자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자동차 브랜드는 몇 안 된다. 캐딜락은 1903년부터 판매되기 시작한 GM의 대표 브랜드이다. 캐딜락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배후에는 니콜라스 드레이스타트라는 위대한 경영자가 있었다.

캐딜락의 탄생은 포드 자동차 설립에 참여했던 금융 자본가들이 헨리 포드와 불화를 겪으면서 시작된다. 이들 금융 자본가들은 평범한 자동차를 생산하려 한 헨리 포드의 전략을 항상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이미 고성능 자동차 엔진을 개발해 놓고 자금을 댈 사람을 찾던 헨리 리랜드라는 엔지니어가 이들 금융 자본가들을 만나면서 캐딜락은 탄생하게 되었다.

캐딜락은 전기 시동장치를 처음 개발했으며 8기통 엔진 자동차를 처음 출시한 자동차회사다. 캐딜락은 사업 초기부터 시장에서 최고급 자동차라는 명성을 얻기 위해 연구 개발에 많은 투자를 하였다. 캐딜락의 이런 혁신 정신은 1909년 GM에 회사가 인수된 후에도 계속된다. 그러나 연구개발에 엄청난 비용이 투자되었기 때문에 1921년 캐딜락의 자동차 가격은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비싼 5,690달러였다. 당시 포드의 모델 T 가격이 355달러였던 것을 고려하면 캐딜락은 보통 사람들은 엄두도 낼 수 없는 고급승용차였다. 그래도 1920년대까지는 고급차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있었기 때문에 캐딜락은 그런대로 수지를 맞출 수 있었다. 그러나 1930년대 미국대공황으로 캐딜락을 비롯한 고급승용차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1928년 4만 1,172대였던 캐딜락의 연간 판매량이 1933년에는 6,736대로 곤두박질친 것이다.

GM은 대공황의 어려움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할 수밖에 없었다. 높은 생산원가로 창사 이후 한 번도 이익을 낸 적이 없었던 캐딜락은 당연히 구조조정 대상 1순위였다. 캐딜락의 최종 운명을 결정하는 GM 중역회의가 열리던 날, 캐딜락의 유지수리 서비스를 책임지고 있던 중간관리자 드레이스타트는 중역회의가 열리고 있는 방의 문을 박차고 들어가 캐딜락을 18개월 내에 살릴 수 있는 안을 제시하고 GM 경영자들을 설득했다.

드레이스타트의 혁신적인 전략은 현장을 보는 그의 예리한 관찰력에 기인한 것이다. 당시 캐딜락의 유지수리 서비스를 책임지고 있던 드레이스타트는 미국 전역에 있는 캐딜락 딜러의 유지수리 서비스 부서를 둘러보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관찰하게 된다. 캐딜락의 표적시장은 고소득층이었고 그 구체적 전략 중 하나가 흑인에게는 캐딜락을 팔지 않는 인종차별 정책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차별에도 불구하고 캐딜락 유지수리 서비스를 찾는 고객들 중에는 흑인들이 많았다. 이들은 권투선수, 가수, 의사 등 소수 엘리트 흑인으로 소득만으로 보면 충분히 캐딜락을 구매할 수 있는 소비자였다. 이들은 자신의 소득에 어울리는 신분 상징을 원하고 있었으나 당시 암묵적인 인종차별로 부자 주택가에서 살 수도 없었고 일류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캐딜락 자동차의 경우는 수백 달러의 수수료를 지불하고 백인을 내세워 구매할 수 있었던 것이다.

드레이스타트의 안은 흑인에게도 캐딜락을 판다는 매우 단순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사회분위기에서 흑인에게 캐딜락을 팔 생각을 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고자 한 것은 혁신적인 발상의 전환이었다. 캐딜락을 흑인에게도 판매하자는 안은 회사의 입장에서는 백인 브로커가 그 동안 챙겼던 대당 수백 달러에 이르는 커미션을 캐딜락의 이익으로 환원할 수 있고, 흑인들의 입장에서는 백인 브로커를 쓰는 불편을 감수하지 않아도 캐딜락을 구매할 수 있으니 캐딜락 판매가 신장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결국 GM의 경영진은 드레이스타트의 전략에 동의했다. 그리고 1934년 캐딜락 판매는 무려 70%나 성장하여 손익분기점을 처음으로 넘어서는 쾌거를 이루었다. 캐딜락 역사상 처음으로 이익을 낸 드레이스타트는 1934년 6월 캐딜락의 대표직을 맡게 된다.

드레이스타트는 그 후에도 캐딜락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한다. 그는 특히 고급승용차의 개념을 바꿔놓은 사람으로 유명하다. 당시 대부분의 자동차 전문가들은 고급승용차란 제작비용이 비싼 부품을 많이 장착한 차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생산방식도 전통적인 제작방식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그 결과 제작비용도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드레이스타트는 뛰어난 디자인, 철저한 품질관리 그리고 최상의 유지수리 서비스가 고급승용차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속성이라고 주장했다. 오늘날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고급차의 이미지를 생각해보면 1930년대에 이런 주장을 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과적으로 드레이스타트의 새로운 고급차 개념 덕택에 고급승용차를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캐딜락 제조비용을 혁신적으로 낮출 수 있게 된 것이다. 항상 손해를 보던 캐딜락이 1935년에는 GM에서 생산하는 자동차 중에서 대당 이익이 가장 높은 승용차로 바뀌게 되었다.

-『코카콜라는 어떻게 산타에게 빨간 옷을 입혔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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