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종종 전화를 걸어 좋은 일 없냐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하루하루 별 탈 없이 무사히 지나가는 게 좋은 일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어떻게 보면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 단조롭고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평온한 일상이 참으로 소중하고 감사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그렇다고 화나고 짜증나는 일 그리고 걱정이나 두려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인생은 고해(苦海)라고 했는데 어찌 하루하루가 늘 평안하고 기쁘기만 할까. 나 역시 오래전 죽음의 문턱까지도 가보았고 끝없는 절망의 나락에서 이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가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인 적도 많았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하루하루가 감사하게 여겨지고 내게 주어진 것들이 하나하나 소중하게 느껴지면서 마음이 평온해졌다. 세상사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했는데 사람들은 가진 것보다 갖지 못한 것에 집착해 감사를 잃고 자신에게 다가온 삶을 살아낼 용기를 잃고는 스스로 고뇌의 늪으로 빠져든다.

우리는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들을 종종 망각한다. 건강한 육체와 정신, 사랑스러운 가족,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일터와 서로 돕는 동료들, 따뜻한 이웃, 그리고 다정한 친구들, 이 모든 것들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인데도 우리는 종종 일시적인 욕심이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스스로 평안을 잃고 만다.

친구는 수시로 골치 아픈 일들이 터지고 또 요즘처럼 변화무쌍한 시대에 어떻게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없을 수 있냐고 힐난한다. 물론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많은 문제에 직면하고 그로 인해 근심과 불안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온 세상을 휩쓸어버릴 듯 세차게 몰아치는 비바람을 우리의 힘으로 그치게 할 수는 없다. 그저 묵묵히 견디는 수밖에, 그렇게 견디어내면 결국은 밝고 평온한 날이 오고야 만다는 믿음을 갖고. 당장 어떻게 될 것만 같았던 두려운 일이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거나 결국은 지나가 이제는 그때의 두려움이 기억에조차 희미한 경우도 많다. 나 역시 그러한 과정을 여러 번 거치면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깊이 체험했기에 이제는 어려운 문제가 닥치더라도 훨씬 더 담담한 마음으로 견뎌낼 수 있을 것 같다.

황명환 목사가 저술한 『허무』에 소개된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평안을 위한 기도(The serenity prayer)’는 우리가 감사를 잊거나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 평온을 회복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주님,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는 받아들일 수 있는 평안을 주시고,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시며, 이 두 가지 차이를 깨달아 알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 주옵소서.
하루를 단위로 살아가게 하시고, 순간순간의 행복을 놓치지 않게 하옵소서. 역경을 평화를 위한 지름길로 받아들이게 하시고, 이 죄 많은 세상을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당신이 그러셨던 것처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내가 주님의 뜻에 복종한다면 주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게 하셔서, 이 땅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고, 저 세상에서 주님과 함께 최고의 기쁨을 영원히 누리도록 하심을 믿게 하옵소서. 아멘.

사람들은 모두 행복을 원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어 원하는 것을 얻으면, 권력을 잡아 영향력을 행사하고 세상을 바꾸면, 그리고 인기와 명예를 누리게 되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고 진정으로 소중한 것들을 포기해가며 돈이나 명예, 권력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신기루일 뿐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고 외치고, 세상을 바꾸겠다고 외치기보다는 우선 나 자신을 하루하루의 일상에서 감사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으로 바꾸는 것이 진정 이 세상을 행복한 곳으로 만들 수 있는 길이다.

아침을 준비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아내, 휘파람을 불며 현관문을 들어오는 아들, 상냥한 목소리로 고객에게 친절하게 응대하는 직원들, 그리고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어둠 속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미화원들을 볼 때 감사와 행복의 파도가 잔잔하게 가슴으로 밀려온다.

- 최종옥, 북코스모스 대표

『허무』
(황명환 지음 / 성안당 / 320쪽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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