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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속도
중고차 앱 ‘헤이딜러’는 전국 온·오프라인 매매상 네트워크를 통해 딜러와 고객 간의 실거래까지 책임지는 중고차 모바일 경매 서비스다. 헤이딜러는 서비스의 편리성과 고객 친화적인 경매방식으로 이용자들의 관심을 끌어 출시 6개월 만에 월 거래량이 10억 원을 돌파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28일 온라인 중고차 경매 사업자도 오프라인 중고차 경매 사업자와 동일하게 1000평의 주차장과 100평 이상의 경매실 등을 갖추도록 규정한 ‘자동차 관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헤이딜러는 잠정 폐업에 들어갔다. 이러한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자동차 관리법 개정안이 정부의 창조경제 기조에 반할 뿐 아니라 온라인 플랫폼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 규제라는 비판적 여론이 형성되었고, 이후 국토교통부와 입법 관계자가 신속하게 업계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온라인 자동차 경매 사업자에게는 이러한 규제를 철폐하기로 합의했다. 하마터면 사업을 중단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언론의 주목을 받아 정부의 신속한 대처로 구제를 받은 셈이다.

나 역시 최근에 법 때문에 황당한 일을 당한 적이 있다. 우리 회사는 2013년부터 회원들을 상대로 매월 5만여 권의 도서를 권당 배송비 3,500원만 받고 무료로 선물하는 얼리버드 캠페인을 시행해오고 있다. 작년부터는 우리은행 주거래 고객들을 대상으로 확대해 국민 독서 증진에 기여해오고 있다. 내친김에 책을 구하기 어려운 지역 주민들을 위해 얼리버드 캠페인을 확대하기로 하고, 강원도청과 몇몇 지자체에 제안했다. 그러자 좋은 제안이라며 단체장에게 결재를 올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결재 과정 중 뜻하지 않게 얼리버드 캠페인이 선거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했다. 나는 ‘아니, 뜬금없이 웬 선거법 위반? 일반 은행 고객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얼리버드 캠페인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면 선거법 위반이라고?’ 나는 설마 하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서면 질의를 했다. 그러자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주민들을 대상으로 조례에 명시되지 않은 혜택을 제공하면 선거법 위반’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자체 주민들에 제공할 책을 부지런히 확보하고 있던 나는 난데없이 선거법에 뒤통수를 맞은 셈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그렇다면 주민들에게 도서를 대여해주면 어떻겠냐고 재차 질의했지만 그 역시 혜택을 제공하는 셈이니 안 된다는 것이었다.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법이 그러니 할 수 없이 계획을 철회하고 말았다. 현행법이 정 그렇다면 국민들의 독서 증진 차원에서라도 도서의 경우는 제외한다는 예외조항을 둘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는 바람만 입속에서 맴돌 뿐이었다.

최근 급속도로 발달하고 있는 기술을 토대로 우버택시, 콜버스 등 다양한 사업 모델들이 등장하고 있고 우리의 일상 역시 그로 인해 커다란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련법이 급변하는 환경을 따라가지 못해 많은 혼란과 불편이 야기되고, 때로는 힘들게 일궈온 사업을 도중에 접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세계적인 석학 앨빈 토플러는 일찍이 그의 저서 『부의 미래』(2006년 출간)를 통해 이러한 사태를 예고한 바 있다.

미국 주요 기관들의 변화의 속도를 자동차에 비유하여 측정해 보자. 시속 100마일은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기관을 대변한다. 기업이 여기에 해당하며 이들은 사회 여러 부문의 변혁을 주도한다. 시속 90마일은 시민단체(NGO)이다. NGO가 주도하는 운동은 작고 빠르고 탄력적인 단위로 구성되며 네트워크로 조직되기 때문에 거대 기업과 정부기관을 능가한다. 시속 25마일은 소리만 요란한 정부조직과 규제 기관들이다. 그들은 스스로 천천히 변화할 뿐 아니라 기업의 속도마저 떨어뜨린다. 시속 10마일은 학교다. 미국의 학교들은 공장처럼 가동되고, 관료적으로 관리되며, 강력한 교원 노조와 교사들의 투표권에 의지하는 정치인들로부터 보호를 받는다. 시속 1마일은 느림보 중에서도 가장 느리게 변하는 ‘법’이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한 소송이 제기되었을 때 재판에는 몇 년의 세월이 걸리고, 그때쯤이면 기술적인 진보로 인해 소송의 쟁점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앞으로 인공지능, 생명공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의 발전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그에 따라 세상도 빠르게 변화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혼란과 불안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기술 발전에 걸맞게 관련법들이 신속하게 수정 또는 제정되어야 한다. 이는 결국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미래의 흐름을 읽고 연구하여 기존 법을 수정하거나 새로운 법을 끊임없이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회의원은 영어로 lawmaker, 즉 법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이처럼 중차대한 책무를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얼마 전 KBS가 방송한 ‘스웨덴 정치를 만나다’에서 소개한 스웨덴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스웨덴 국민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스웨덴에서 국회의원은 기피 직업 1순위를 기록할 정도로 극한 직업이라고 한다. 한 명당 평균 100개의 법안을 발의하고, 개인 보좌관 및 자가용이 제공되지 않는 것은 물론 일체의 특권이 없고 업무가 힘들다 보니 재선 삼선에 도전하는 국회의원이 드물다고 한다. 이렇게 특권보다는 책임을 선택한 스웨덴 국회의원들을 국민은 신뢰한다.

왜 우리나라의 국회의원들은 스웨덴 국회의원들처럼 할 수 없을까. 우리나라는 국회의원에게 온갖 특권과 혜택을 주다 보니 당선에 사활을 걸고, 공천을 받기 위해 철새처럼 당을 오간다. 그 사람들이 과연 그들의 외침대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는 것일까? 그들이 상대방과 혈전을 벌이며 상대방이 아니라 반드시 자신이 당선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진정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주어지는 온갖 특혜와 힘 그리고 명예 때문이 아닌가? 스웨덴처럼 특권과 혜택보다는 책임과 의무가 더 크더라도 과연 지금처럼 당선되기 위해 진흙탕 싸움을 벌일까?

물론 우리나라에도 스웨덴의 국회의원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의정활동을 하는 국회의원들이 있을 것이다. 다가오는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흙 속에 묻혀 있는 보석을 찾는 마음으로 눈을 부릅뜨고 살피고 살펴 진정으로 대한민국을 위해 일할 후보자에게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자.

- 최종옥, 북코스모스 대표

『부의 미래』 중에서
(앨빈 토플러, 하이디 토플러 지음 / 청림출판 / 656쪽 / 2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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