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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판 김영란법
최근 김영란법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합헌으로 판결했다.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인 김영란법은 공직자와 언론사·사립학교·사립유치원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진 등이 대가성에 상관없이 1회 100만 원(연간 300만 원)이 넘는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형사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물론 원활한 직무 수행 또는 사교, 의례, 부조의 목적으로 제공되는 음식물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비 10만 원까지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 2016년 9월 28일부터 시행될 법안을 둘러싸고 농어촌 지역 국회의원들은 여야 할 것 없이 농수축산 종사자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상한액을 인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그렇게 될 경우 자칫 김영란법의 취지 자체를 흔들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김영란법의 핵심은 두 가지이다. 주는 자와 받는 자를 모두 처벌한다는 것과 지금까지 형법상의 뇌물죄에 해당하지 않았던 소위 스폰형 뇌물도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김영란법이 너무 과도해 부작용을 낳을 수 있고 자칫하면 연좌제나 공직자 가족에 대한 역차별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이런 우려를 기득권층의 이해를 변호하기 위한 논리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김영란법이 성공하기 위해서도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왜냐하면 김영란법은 역사적으로 끝없이 시행되고 반복되어온 시도이자 논쟁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스폰형 뇌물은 뇌물의 고도 수법이다. 어느 사회에나 스폰형 뇌물은 있다. 조선에서는 뇌물 자체를 인정(人情)이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조선 사회에서도 인정과 뇌물의 한계를 정하고 뇌물과 스폰형 뇌물을 구분하는 일이 고민이었다. 세종은 평생을 국가체제의 정비에 힘을 쏟았다. 덕분에 많은 제도가 안정되었다. 특히 재정 제도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조선 500년 역사에서 국가재정이 제일 풍족했던 시기가 세종 때부터 세조 때까지이다. 하지만 세종은 이 풍족함이 뇌물과 상납의 관행이라는 독버섯을 키우고 있음을 깨달았다. 국고에 재정이 쌓이고 가득해지면 인간은 이것을 이용할 방법을 빠르게 발견한다. 그것이 국가권력의 양면성이다. 조준과 정도전이 만든 조선 최초의 법전인 《경제육전》에도 강경한 뇌물금지법이 삽입되었다. 그러나 왕자의 난으로 정도전이 죽으면서 뇌물금지법은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1424년 7월 세종이 갑자기 폭탄선언을 했다. 《경제육전》에는 청탁을 받고 관아나 창고의 물건을 사적으로 전해준 사람만 처벌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물건을 받은 사람과 준 사람 양자를 모두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김영란법의 원조라 할 수 있다. 세종은 대신들을 불러 새로운 뇌물금지법의 방향을 제시했다. 그러자 영의정 유정현이 즉시 관련 법을 만들겠다고 대답했다. 유정현은 세종의 의견에 즉시 적극 동조하면서 법안작성권을 자신의 손에 넣은 것이다. 유정현은 뚝심 있고 행정 장악력과 추진력이 뛰어났지만 유독 돈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하면 딴사람으로 변했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 있게 법 초안을 맡겨 달라고 한 유정현은 세종이 나가자마자 뇌물죄 적용의 예외 조항부터 언급했다. “나 같은 늙은이가 향포(香脯)나 음식을 받는 것이 무슨 해가 되겠소?” 그러자 당대의 최고 학자와 예학자로 명성이 높은 변계량과 허조가 즉시 동의했다. “먹는 물건을 주고받는 것은 해로울 것이 없을 것 같은데 모두 금할 필요가 있겠소?” 그러고는 세종에게 이러한 의견을 전했다. 세종은 일단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고 “알았다”고 답했다.

그래도 뇌물금지법은 표면적으로는 세종의 의견대로 기안되어 반포되었다. 여기서도 대신들의 노련함이 돋보인다. 그들은 법조문을 수정하거나 예외 조항을 넣지는 않았다. 단지 세종으로부터 법을 운영하고 적용하는 방식에 대한 확답을 얻은 것이다. 암묵적으로 “늙은 대신들이 건강과 몸보신을 위해 받는 작은 물건은 거론하지 않는다”라는 식이었다. 세종의 목표는 스폰형 뇌물을 근절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신들의 예외를 인정하면서 스폰형 뇌물을 오히려 용인하는 결과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세종은 포기하지 않았다. 어차피 긴 싸움이었다. 2년 후인 1426년 세종은 대신들에게 다시 진지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고려가 뇌물로 인해 나라가 망한 것은 경들도 본 바이다. 지금 우리도 이 문제가 심각하다. 정실과 뇌물이 이렇게 횡행하고 그치지 않는다면 결국 나라의 쇠망이 멀지 않을 것이다.”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는 세종의 협박은 2년 전에 제정한 뇌물법의 시행과 대신들을 예외로 하는 태도를 버려달라는 요청이었다. 세종은 주고받기 문화와 스폰형 교유관계가 확대되는 것을 염려했다. 주고받기 문화에서는 사대부 가문에 필요한 모든 물품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여행, 출장, 집수리, 장례, 결혼, 유흥 등 삶의 모든 분야에서 관원의 도움을 받는 문화가 성립되어 있었다.

1447년 제주 목사 이흥문의 뇌물 사건으로 다시 한 번 주는 자와 받는 자를 모두 처벌하는 법이 화제가 되었다. 이흥문은 한양의 고관들에게 대거 선물을 뿌렸는데 대부분 제주의 특산물인 과일과 육포 또는 생선포 같은 것이었다. 세종은 이흥문의 뇌물 사건을 직접 국문했다. 세종이 주목한 문제는 뇌물의 양이 아니라 제주민의 고통이었다. 운송이 다른 지역보다 몇 배로 힘든 제주도에서 백성을 동원해 한양의 고관들에게 상납을 했으니 용서할 수 없는 이유였다. 영의정 황희, 우의정 하연까지도 이흥문의 상납품을 받았다고 실토하고 처벌을 달게 받겠다고 사죄했다. 이 외에도 수많은 관원들이 자수했다. 세종은 이 기회를 완벽하게 붙잡았다. 세종은 직접 법안을 만들어 사헌부에서 상소 형식으로 올리도록 했다. 이른바 세종판 김영란법이었다. 스폰형 뇌물도 처벌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받는 자와 주는 자를 모두 처벌한다는 내용이었다.


김영란법으로 인해 지금 당장은 농축수산업자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겠지만 더 이상 부정부패가 판을 치지 않는 깨끗한 대한민국을 위해 우리 모두 다 같이 힘을 모으길 소망한다.

- 최종옥, 북코스모스 대표

『뇌물의 역사』 중에서
(임용한, 김인호, 노혜경 지음 / 이야기가있는집 / 400쪽 / 1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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