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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지난해 전국 대학교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2016년 한 해를 규정할 사자성어로 ‘군주민수(君舟民水)’가 1위에 선정됐다. 군주민수란 ‘순자(荀子)’의 ‘왕제(王制)’편에 나오는 말로, 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2위는 ‘역천자망(逆天者亡)’, 3위는 ‘노적성해(露積成海)’였다. 역천자망은 ‘천리를 거스르는 자는 패망하기 마련이다’라는 뜻이며, 노적성해 또한 ‘작은 이슬이 모여 큰 바다를 이룬다’는 뜻으로 모두 민심(民心)이 천심(天心)임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78%에 이르는 국민들이 대통령의 하야를 원하고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탄핵 소추를 의결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대리인을 통해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된 답변서를 제출하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민심이 천심임을 안다면 대통령은 일찌감치 스스로 결단을 해야만 했다. 대통령의 결단이 늦어지는 만큼 국민들은 대통령의 즉각 하야와 탄핵 반대 두 편으로 갈라졌고 국론은 분열되고 있다. 1974년 8월 8일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상원에서의 탄핵 표결을 앞두고 자신의 변론을 위해 무리하게 버티며 국가적 에너지를 소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 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스스로 하야하는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렸다.

만일 박근혜 대통령이 몇 차례의 대국민 담화 때, 아니 적어도 국회가 탄핵을 의결했을 때라도 민심을 겸허히 받아들여 진실을 이야기하고 스스로 모든 것을 내려놓는 용기 있는 결단을 했더라면 아마도 많은 국민들이 대통령의 결단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분노를 가라앉히지 않았을까? 물론 대통령으로서는 억울한 부분도 있고 여러 가지 두려움도 있어 그러한 결단을 내리기가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두려움도 사라지고 새로운 길도 열리는 법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내려놓을 수 있을까? 그 비결은 바로 메멘토 모리, 즉 죽음을 기억하는 것 아닐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라틴어로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의미이다. 옛날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를 외치게 했다고 한다. 이는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라는 의미에서 생겨난 풍습이라고 한다. 정치평론가 유창선 역시 그의 저서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에서 죽음을 기억하면 삶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카뮈의 『이방인』에 나오는 뫼르소는 살인을 한 죄로 재판을 받으면서도 죽음을 무릅쓰며 거짓말을 거부한다. 재판은 뫼르소를 짜인 공식 속에 집어넣고 관습에 따라 단죄하려 한다. 검사의 눈에 보이는 뫼르소는 어머니 장례식에서 눈물도 흘리지 않았고, 장례식을 치른 다음 평소와 마찬가지로 수영을 하고, 여자를 만나 정사를 벌인 인물이었다. 따라서 마땅히 단죄되어야 할 죄인이었다. 하지만 뫼르소는 자신을 고의적 살인범으로 몰아가는 재판정에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들을 조금도 과장하지 않은 채 진실만을 말한다. 사형을 피하기 위해 유리한 진술을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귀찮아하며 그만 입을 닫아버린다. 그래서 뫼르소는 변호사도 판사도 이해해 주지 못하는 ‘이방인’이 되어버린다. 재판의 결과는 사형이었다. 하지만 뫼르소는 행복을 느끼며 사형의 시간을 맞는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다 죽기 때문에 모두가 사형수인 셈이다. 사형수 뫼르소는 죽음 앞에 서서 비로소 삶의 행복과 가치를 발견한다. 그리고 진실을 지키며 죽음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런 뫼르소를 가리켜 카뮈는 “그 어떤 영웅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서도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한 인간”이었으며, “우리들의 분수에 맞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그리스도”라고 술회한다. 이렇듯 죽음의 의미는 내가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 들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는 죽음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삶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죽음은 삶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준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게 되어 있다는 삶의 비극성이, 이제 죽음이 있기에 오늘의 삶이 귀중하다는 새로운 인식으로 변화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 역시 생전에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에서 자신이 받았던 죽음 선고가 삶의 소중함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하며 죽음을 생각하라고 당부한다.

“‘곧 죽는다’는 생각은 인생의 결단을 내릴 때마다 가장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모든 외부의 기대, 자부심, 수치스러움과 실패의 두려움은 ‘죽음’ 앞에서 모두 떨어져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여러분은 죽을 몸입니다. 그러므로 가슴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요즘은 수명이 길어져 백세 인생이라고도 말하지만 사실 60을 넘기면 언제 죽음이 찾아와도 그다지 이상할 게 없다. 죽음을 앞두고 아직도 손에 쥔 것들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욕심을 부리는 것은 자신의 삶을 비참하게 만드는 일이다. 오히려 죽음을 생각하고 그동안 자신이 지켜왔던 헛된 것들을 내려놓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의 삶은 더욱 빛나고 많은 사람들에 의해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고 자신을 내려놓을 때 오히려 영원을 살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삶과 죽음이 함께 만들어내는 신비이자 인간이 존엄한 이유일 것이다.

- 최종옥, 북코스모스 대표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중에서
(유창선 지음 / 새빛 / 256쪽 /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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