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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의 사슬을 끊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기를
(귄터 오거 지음/창해/340쪽/12,000원)

얼마전까지만 해도 대선자금을 둘러싼 비리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그리고 지난 달에는 정보화촉진기금 운용 과정에서 벤처 기업에 편의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주식을 싼 값에 매입하여 사익을 취한 정보통신부 국장이 구속됐다. 최근에는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의 정치권에 금품을 제공하고 로비를 벌인 사실이 드러나 검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밖에도 심심치않게 불거지는 기업과 정치인 및 공무원들간의 검은 커넥션은 우리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든다. 또한 기업들의 분식회계, 불량상품의 제조와 유통 그리고 각종 허위 광고를 서슴지 않는 비윤리적 경영 역시 우리를 끝없는 절망으로 내몬다. 물론 미국의 엔론이나 월드컴의 사례에서 보듯이 이러한 비리와 부정은 비록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고 왜곡된 방식으로 부와 이익을 추구하는 비도덕적인 가치관이 전 세계 모든 경제 시스템 내에 독버섯처럼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독일의 경제전문지 「캐피탈 Capital」의 편집장인 귄터 오거는 오늘날 경제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비리와 부패의 현상들을 파헤쳐 고발해오고 있다. 오거는 오늘날 윤리의식을 상실한 기업들이 탈세, 정치자금 비리, 각종 허위 공시을 자행하고 있어 이제는 올바른 경제행위가 오히려 예외적으로 인식될 정도라고 개탄하며 자신의 이러한 분노를 표출하려는 듯 최근 자신이 저술한 책 제목을 아예 『사기꾼의 경제』라고 지었다.

한동안 근면과 신뢰의 상징으로 여겨져왔던 독일이 언제부터인가 부정부패와 비리가 만연한 부패 공화국이 되어버렸고, 미국의 회계원칙을 도입한 기업들은 탐욕스러운 이익 추구와 분식회계 및 편법을 통한 주가 띄우기로 비리의 원천이 되었으며, 터무니없는 과장광고와 말뿐인 할인 판매 등으로 소비자들을 우롱하고 있다. 또한 부도덕한 경영자들은 회사의 실적과는 상관없이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기에 급급하고 있다.

하루도 새로운 사기극이나 부정부패 사건이 터지지 않고 넘어가는 날이 없다. 그 원인은 어쩌면 정부 스스로가 사기꾼 경제의 일부가 되어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도이치 텔레콤은 매월 수천명의 고객들에게 실제보다 높게 매겨진 청구서를 발급해 부당하게 요금을 받아낸 뒤 이 사실이 드러나자 단지 착오로 인해 발생한 오류였다고 강변한다. 또한 식당과 호텔, 그리고 소매업자들은 유로화 도입을 핑계로 가격을 인상했다. 외과의사가 중고 심장판막으로 이식 수술을 하고도 마치 신제품을 사용한 것처럼 속이고 거액의 수술비를 환자에게 청구한다.

미국의 6대 기업에 속했던 엔론의 대차대조표에는 실제 자산가치나 이익금이 기재되어 있는 게 아니라 터무니없이 조작된 숫자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터진 월드컴의 경우에는 40억 달러에 달하는 금액이 조작되었다. 그리고 GE, IBM, 마이크로소프트, 제록스 등 세계적인 기업들 역시 발생하지도 않은 이익을 발생한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장부를 조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부정의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할 회계법인들 또한 자신들의 본분을 망각하고 회계 부정에 적극 가담했다. - 『사기꾼의 경제』 중에서


오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의 시대는 신뢰가 사라진 시대로, 양심과 이성에 호소하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사기꾼이 판치는 경제가 지속되는 한 일반 시민들은 기업들의 이러한 비윤리적 상술에 대응하기 위해 충동 구매의 유혹을 억제하고 하나하나 꼼꼼하게 따져보고 냉철한 판단으로 스스로를 지켜나가야 하며 아름다운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는 법을 배워야 함을 충고하고 있다.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독일과 미국 등이 이러할진대 2003년 공무원과 정치인의 "부패지수"가 세계 133개 국 중 50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난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하루가 멀다 하고 정격유착 또는 비양심적인 기업들의 비리와 부정부패 사건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의 비윤리적 상술에 대응하기 위해 의심과 불신의 토대 위에서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해야 한다는 오거의 주장은 결코 진정한 해법이 될 수 없다. 우리의 옛 속담에 한 사람의 도둑을 열 사람이 막을 수 없다고 했다. 아무리 소비자들이 눈을 부릅 뜨고 살핀다고 하더라도 결코 기업들의 사기 행위나 속임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불신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무한대로 늘어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오거의 주장대로 환상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신뢰의 회복이다. 가계, 기업, 정부 등 경제의 각 주체들이 서로를 신뢰하고 신뢰받을 수 있도록 행동함으로써 경제 활동을 정상적인 방향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얼마 전 TV 뉴스에서 한 식당의 종업원이 수년 동안 주인 몰래 판매 대금의 일부를 횡령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다시 1개월도 채 안 되어 제과점 종업원이 마찬가지로 판매 대금의 일부를 훔쳤다는 내용이 보도되었다. 물론 이러한 보도가 모든 주인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는 효과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뉴스를 본 많은 주인들이 혹시 우리 종업원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갖게 되고 결국 감시와 의심의 눈으로 종업원들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감시와 의심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종업원들은 결코 회사를 위해 열과 성의를 다할 수 없고 결국 이러한 불신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불행을 초래할 것이다.

소위 사기꾼 경제에 대한 유일한 해법은 사회 구성원들이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공무원과 정치인, 그리고 기업 경영자를 비롯한 각 경제 주체들이 서로 속고 속이는 불신과 부패의 사슬에서 벗어나 스스로 문제 의식을 느끼고 도덕적 재무장을 통해 거듭나지 않는 한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는 결국 썩은 악취와 함께 무너져내리고 말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정부는 다양한 개혁 프로그램을 통해 부패의 사슬을 끊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삼성그룹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기업들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사회와 함께 성장해나가는 것이 보다 장기적인 전략 방향임을 인식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래산업의 정문술 전 사장처럼 자신이 이룬 부를 사회의 덕분으로 생각하고 사회에 환원하는 참다운 기업인들도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다.

우리들 각 개개인이 죄책감에서 벗어나 참 자아를 찾기 위해 노력하듯이 법인인 기업 역시 이러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에 몸을 담고 있는 모든 공무원 및 정치인들 역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투명함과 공명정대함을 위해 노력할 때 대한민국은 끝없이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 최종옥, 북코스모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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