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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그냥 오지 않고 허전함으로부터 온다
(김지하 지음/창비/302쪽/8,500원)

한 사람의 삶이나 글의 깊이는 모순과 역설에 대한 그의 사유의 깊이에 비례하는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 말할 때, 그 구분을 뚜렷이 하는 것 중 하나가 모순과 역설에 대한 이해의 정도이다. 삶과 죽음, 밝음과 어둠,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환희와 고통... 인생의 희노애락과 생로병사 속에서 우주의 이치를 찾아가는 것이 대부분 모든 인생들의 길이기에, 저만치 앞서 나선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되고 그 여정이 담긴 글들을 숙고해 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줄곧 생명만을 말해 왔던 시인 김지하가 예순 넷의 나이에 이제까지와는 짐짓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왔다. "생"뿐 아니라 "노병사"를 노래하는 시집『유목과 은둔』을 들고 왔다. 일찍이 자신의 젊음을 맘껏 펼쳤던 유목생활을 뒤로하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과 같이 "은둔의 생활에 접어들었다는 이야기인가. 찬찬히 시들을 읽어 내려가다 보니, 그의 요즘 근황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예전엔/ 잘 몰랐지// 몸이 무너지면서/ 몸을 알았지// 아니/ 사실은/ 마음이 무너지면서/ 그 날카로운 아픔으로/ 몸을 알았지// 그러매 사실은/ 몸이 곧 마음" - 「몸」부분

"오늘/ 간다는 사람은 가고/ 온다는 이는 오지 않았다// 늙어가는 길/ 외로움과 회한이/ 가장 큰 병이라는데// 사람이 그리우나/ 만나기는 싫다// 오피스텔 꼭대기 한 방에 갇혀/ 풀잎으로부터는 아득히 멀고/ 꽃은 더욱 그러한데// 입만 열면 생명을 말하니/ 꼭/ 이스라엘의 하느님 신앙 닮았다// 내일도 산다면 이젠 떠나리라" - 「오늘」부분

"나는/ 병원이 좋다/ 조금은.// .... 오로지/ 생명만을 생각하는,// 나는 병원이 좋다/ 찌그러진 인생들이 오가는,// 그래서/ 마음 편한./ 남보다는 더 죽음에 가까운,// 머지않아 끝날 그러한,/ 그래서/ 마음이 편한// 아/ 나는 역시/ "쟁이"던가// 아/ 나는 역시/ "산송장"이던가// 아아/ 나는 역시/ "움직이는 종합병원"이던가// 좋다/ 끝이 분명 가까우니,/ 오로지/ 생명만을 생각하느니." - 「병원」부분

"아무것도 없고// 외로움밖에 없고// 후회할 일밖에 없으니// 참/ 개똥같은 인생이다" - 「김지하의 옛주소」 부분

"몸 성할 때 가자// 가/ 조용히/ 엎드리자// 엎드려 귀를 크게 열고/ 바람소리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자" - 「흙집」 부분

동대문 이대병원 외래에서 정신신경과 치료를 받고, 좌골신경통을 앓아 아내와 함께 거의 매일 뜸뜨러 다니기도 하는 그는 "진리고 혁명이고 유토피아고// 모두 다/ 허허허/ 강 건너 등불"이라는 읊조림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인 유한성 앞에 대면한 실존적 고뇌와 회한을 토해내고 있다.

그러나 다시 고개를 소곳이 들고 이렇게 읊조리기도 한다. "나/ 이제 아무것도 아니고/ 즐거워 사는 것도 아니매// 꼭/ 이렇게 말하리// "삶은 그냥 오지 않고 허전함으로부터만 온다"고." 또한 이 외에도 몇몇 구절을 보건대, 그는 자신의 고통을 잘 승화시켜 왔음이 분명하다. 더욱이 "그러매 이제 그만/ 털털털 다 털고 나서/ 떠나도 되겠구나!/ 단 하나// 막내놈/ 그림공부 밑천은 어떻게든/ 벌어놓고/ 그 뒤에// 그 뒤에 전에 또 하나/ 어머님 모시고 난 그 뒤에 뒤에"라는 절절한 싯귀에는 자신의 죽음 뒤에 남겨질 생명에 대한 책임감까지 응축되어 있다. 그러고 보면 생명에 대한 사랑이 한층 더 숭고한 형태로 피어나고 있는 것 아닌가.

늘 새롭게 깨어 있는 존재로서 자기성찰의 극치를 살아온 김지하, 그는 「재진화」라는 제목의 시에서 "50여 년을 내내 시를 써온 이 뒷날에야 느지막이 시의 뜻을 세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생명운동가, 평화운동가로서 바람에 맞서 역류의 길을 걸어온 그가 생의 수레바퀴에 순응하면서 "활동하는 무(無), 흰 그늘"로서의 생과 사를 새롭게 꿈꾸고 있음을 엿보게 해주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깨달음은 젊은 날 유목생활의 타는 목마름과 갈구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일 게다. "생명사상가"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생명에 대한 끈질긴 추구와 사랑이 있었기에 사랑의 체험이라고도 할 수 있는 생명의 체험이 가능했으리라.

그는 이번 시집이 자신의 시집 중에 "가장 허름하고 가장 허튼 글모음일 듯하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간 그의 시 속에 함께 해온 "흰 그늘"의 미학이 이번 시집 속에서 비로소 짙게 공감되는 것은 그의 머리 속에 있던 사유가 가슴으로 깊이 내려와 삶과 함께 녹아져 나왔기 때문인 것 같다. 자유와 평화를 찾아 투쟁하며 유목생활을 할 때보다 지금 나이 들어 은둔생활을 하는 그에게서 더한 자유와 평화, 펄떡이는 생명이 느껴진다.

"비움에서 채움을 입고" "약함에서 강해진다"는 역설적 논리는, 삶이란 역시 능동이 아니라 수동임을 일깨워 주는 참된 진리인 것 같다.

- 최종옥, 북코스모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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