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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대화의 영웅 사카모도 료마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을 보고 난 뒤 가슴 깊은 곳에 묻혀 있었던 분노와 안타까움이 다시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1895년 10월 8일 일본의 낭인 무사 수십 명이 한밤중에 대한제국의 궁궐에 난입하여 국모인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그 시체를 불에 태워버렸다. ‘여우사냥’이라는 작전명으로 진행된 이 만행은 불과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 망극지경에 대해 한없는 비애를 느끼면서 한편으로 어떻게 하다가 조선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그리고 또한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조선과 같이 근대 문명의 변방에 있던 일본이 어떻게 해서 서구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조선을 삼킬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 때 언젠가 읽어보겠다고 책장에 꽂아두었던 『료마가 간다』가 눈에 들어왔다.

1867년 일본은 260여년을 이어오던 도쿠가와 가문의 에도 막부가 막을 내리고 왕정복고(大政奉還)가 이루어졌다. 이로 인해 새롭게 정권을 잡은 메이지 정부는 조세제도 개정 등 일련의 개혁을 추진하고, 부국강병의 기치 하에 구미(歐美) 근대국가를 모델로 새 시대를 열었다. 이 유신으로 일본은 근대적 통일국가를 이루게 된다. 이처럼 260년을 이어온 막부 권력을 무너뜨리고 일본 근대화와 메이지 유신을 가능하게 했던 한 위대한 일본인이 있었다. 그는 바로 사카모도 료마이다.

사카모도 료마는 1835년 도사번(藩)의 하급무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료마는 열아홉 살의 나이인 1853년 에도로 올라와 검술 도장에 입문하여 검객으로서의 길을 걷는다. 그해 미국의 페리 제독이 군함 네 척을 이끌고 와 일본에 개항을 요구하자 막부는 그 압력에 굴복하여 개국을 하기로 결정한다. 이를 계기로 일본에서는 외국 오랑캐를 배척하자는 양이 운동이 거세지고, 개국으로 돌아선 막부를 옹호하는 쪽과 천황을 정권의 중심에 놓고 막부를 타도하자는 존왕양이파로 갈려 일본 전역은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었다. 당시 일본은 비록 막부의 통치 하에 놓여 있기는 했지만 60여개에 달하는 번(藩)이 마치 하나의 독립된 국가처럼 독자적인 경제력과 군사력을 보유하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다.

검술에 정진하여 젊은 나이에 일본의 전설적인 검객 미야모도 무사시에 필적할만한 최고 검객의 경지에 도달한 료마는 페리의 강압적인 개국 요구에 자극을 받아 도사 번의 하급무사들이 주축이 된 도사 근왕당에 참여하고 그 후 막부를 지지하는 도사 번의 정책에 반대하여 번에서 탈퇴한다. 이처럼 번을 탈퇴한 무사를 낭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얽매이기를 싫어하는 자유분방한 성격의 료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는 동안 개국을 통한 근대화야말로 서구 열강으로부터 일본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인식하고 점차 일본의 근대화를 위해 앞장서게 된다. 료마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막부의 군함 사령관인 가쓰 가이슈의 제자가 되어 항해술을 배우고 이를 계기로 자신의 사설 함대를 창설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갖게 된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천한 하급무사 출신의 이 낭인은 정확한 정세 판단과 예리한 통찰력으로 마침내 사설함대의 꿈을 이루어 낸다. 그리고 무력으로 막부를 무너뜨리려는 죠슈 번과 사쓰마 번, 그리고 동시에 막부를 설득하여 마침내 쇼군으로 하여금 정권을 천황에게 돌려주도록 함으로써 일본의 60여 번이 막부지지파와 근왕파로 갈려 최후까지 사투를 벌이게 될 유혈 사태를 막는다.

료마의 위대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당시 무사를 비롯하여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번의 이익과 안위만을 생각하고 있을 때 료마는 통일된 하나의 일본을 생각하고 진정한 일본인으로서 사고하고 행동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는 당시 일본에 와 있던 영국인과 네델란드인 그리고 외국 서적들을 통해 서구의 민주주의와 상하양원제 등 법적 제도 등을 접하고 왕정복고 이후 이를 일본에 도입함으로써 일본이 근대국가로 거듭나야 한다고 역설하며 그 초석을 마련했다. 이러한 자신의 위업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영혼인 료마는 권력에는 일체 욕심이 없었다. 그는 정치가 안정되면 자신은 해상무역을 통해 일본을 부강한 나라로 만드는 데 힘을 보태겠다는 또 다른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867년 11월 료마는 메이지 유신을 코앞에 두고 자객의 칼에 맞아 서른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일본 근대화에 온몸을 던진 사카모도 료마.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일본의 100년을 바꿔놓은 영웅의 삶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료마가 간다』 시리즈 10권을 읽는 동안 내내 이 불가사의한 인물에 매료되었다. 당시 일본의 신분구조는 최고 통치자인 쇼군을 정점으로, 영주인 번주와 번에 속한 속한 무사, 농민, 기술자, 상인 순의 엄격한 신분사회였다. 무사는 다시 상급무사와 하급무사로 나뉘는데, 하급무사는 번주를 직접 만날 수도 없으며 하급무사의 아이가 비오는 날 길을 가다가 상급무사를 만나면 땅바닥에 엎드려 절을 해야 할 정도로 하급무사는 낮은 신분이었다. 이처럼 비천한 하급무사 출신의 한 인물이 사설함대를 설립하고, 일본을 수십 년 후퇴시킬 수도 있었던 대규모 내전을 막고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이루어냈으며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신 사고로 일본의 근대화를 앞당긴 것이다. 만일 사카모도 료마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을미사변 당시 일본은 어떤 위치에 있었을까. 그리고 만일 조선에도 일찍이 료마와 같은 인물이 있었다면 조선과 일본의 역사는 어떠했을까. 역사에 가정은 있을 수 없다고 하지만 국모가 시해되는 처참한 장면이 떠오를 때마다 이런 생각들을 해본다.

- 『료마가 간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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