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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일을 사랑하기
얼마 전 한 유명 제약회사의 20대 후반 영업사원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유족들은 제약업계의 리베이트 영업관행이 원인이라며 보건 당국에 조사를 요청했다. 그 동안 관계 당국과 업계의 리베이트 척결 의지에도 불구하고 제약회사와 의사들과의 고질적인 뒷거래는 끊이지 않고 있다. 제약회사들이 연구개발에는 매출액의 5%도 쓰지 않으면서 의사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판매관리에는 매출액의 30%가 넘는 돈을 써왔다는 사실은 이러한 뒷거래가 얼마나 고질적으로 그리고 다양하게 이루어져 왔는지를 반영하고 있다.

김하인의 신작 소설 『남자』는 한 제약회사 영업부장의 삶을 통해 이러한 제약업체의 리베이트 관행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의사들에게 온갖 로비와 접대를 하며 굴욕적인 삶을 살아온 주인공 김부장은 리베이트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며 문제가 되자 회사의 희생양이 되어 모든 책임을 떠안고 해고당한다. 설상가상으로 김부장은 그동안 잦은 술 접대로 인해 간암말기 진단을 받는다. 그는 그 사실을 가족들이 슬퍼하고 가정경제가 파탄나게 될까 두려워 가족들에게 해외에서 일자리를 찾았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강원도의 깊은 산골로 들어가 혼자 쓸쓸히 죽음을 맞는다.

제약회사 영업사원이든 의사든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우리 모두는 어떤 형태의 직업을 갖고 자신의 일을 한다. 우리가 일을 하는 진정한 목적과 의미는 무엇일까. 물론 우리가 일을 하는 1차적 목적은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우리의 일을 통해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 사회의 전체 가치를 높인다. 우리가 하는 일이 아무리 하찮게 보일지라도 타인의 삶에 도움을 주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이다. 우리는 지금 일의 1차적 목적에 지나치게 치중한 나머지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으로서 일의 진정한 의미를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최신작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우리에게 일의 참다운 의미를 일깨워준다.

일이 의미 있게 느껴지는 건 언제일까? 우리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의 기쁨을 자아내거나 고통을 줄여줄 때가 아닐까? 우리는 스스로 이기적으로 타고났다고 생각하도록 종종 배워왔지만, 일에서 의미를 찾는 방향으로 행동하려는 갈망은 지위나 돈에 대한 욕심만큼이나 완강하게 우리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합리적인 정신 상태에서도 안전한 출세길을 버리고 말라위 시골 마을에 먹을 물을 공급하는 일을 도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가 그저 물질만 생각하는 동물이 아니라 의미에 초점을 맞추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미 있는 일이라는 개념을 너무 좁혀서, 의사나 콜카타의 수녀나 과거의 거장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추앙받지 않으면서도 다수에게 보탬이 되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홉시부터 정오까지 길고 긴 아침나절의 공복감을 달래는 데 도움이 되는 줄무늬 초콜릿 서클을 만드는 것도, 비록 보잘것없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 나름의 자리를 확보할 자격은 진짜 있을 것이다.

또 한해를 시작하는 지금 나는 나의 일을 사랑하고 나의 일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가. 나의 소명인 나의 일에 진실로 충실하고 있는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 우리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가. 내가 나의 일에 대해 느끼는 기쁨은 무엇이고 슬픔은 무엇인가.

혹시라도 직장에서 그저 시간만 때우는 식으로 행동하고 있지는 않는가. 목표나 실적 달성에 급급해 그릇된 길로 가고 있지는 않는가. 사욕에 눈이 멀어 부정과 비리를 행하고 있지는 않는가. 이러한 행위는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대한 배신행위이며 스스로 자존을 해치는 길이다. 매일같이 수많은 부정과 비리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의 대다수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나아가 자신의 일을 통해 타인들에게 기쁨을 더해주고 있다. 리베이트의 단맛에 자신의 소명을 망각한 의사들도 있지만 히포크라테스의 후예로서 ‘참 의사’의 길을 걸어가는 아름다운 사람들도 있다.

『그 청년 바보 의사』는 비록 짧은 생이었지만 자신의 소명인 ‘참 의사’로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 내과의사 안수현의 삶을 담고 있다. 안수현은 고대부속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를 마치고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중 유행성출혈열로 아까운 생을 마쳤다. 그를 옆에서 지켜보았던 사람들은 그를 이렇게 기억한다.

“2000년 여름, 전국은 의사들의 파업으로 들끓었습니다. 자신의 생애를 인류봉사에 바치겠다고 히포크라테스선서까지 한 의사들은 적어도 다른 직업군의 파업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 거라는 예상을 하던 국민들은 실망했습니다. 그런데 레지던트 2년 차였던 안수현은 병원에 남았습니다. 의사란 환자 곁에서만 의미가 있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던 그는 사람들의 눈과 평가를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서열이 엄격한 의사 사회에서 동료들의 결정을 저버리고 홀로 행동하는 것은 자폭과도 같은 일이었으나, 평소 그를 아는 동료들은 그가 병원에 남는다는 사실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안수현이 혼자 남는데.” “짜식, 그럴 줄 알았어. 고생깨나 하겠네.” 오히려 그를 염려할 뿐 어느 누구도 그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수현이 가고 난 지금도 동료들은 모이면 자연스럽게 그의 얘기를 합니다. 특히 살아가다 길을 잃었을 때 ‘인간 네비게이션’이라고 불리던 수현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그의 후배 의사들은 그를 통해 환자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그 기준은 ‘마지막까지 환자의 생명을 붙들고 싶은 보호자의 마음으로’ 돌보는 것입니다.”

- 『일의 기쁨과 슬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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