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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아내보다 더 아름다운
평생을 금융 분야에만 종사해온 내가 살아오면서 유일하게 취득한 자격증은 전공 분야와는 전혀 다른 미술치료사 자격증이다. 경제학에서 흔히 시장이 나라의 경제 상태를 보여주는 거울이라면 그림은 그린 사람의 마음과 무의식의 세계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심리적 갈등과 무의식에 감추어진 상처와 억압된 욕구를 해소하는 데 미술치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사람의 내면세계를 이해하고 진단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며 특히 부부간의 심리적 갈등 문제는 어린 시절의 상처와 욕구불만 등이 누적된 문제여서 상당 기간의 상담치료가 필요하다. 부부관계의 치료는 마음의 대화에서 출발한다. 부부간의 진솔한 대화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샘물과 같은 역할을 한다. 미술치료는 미술을 매체로 부부간의 자연스런 대화와 이해를 깊게 해준다.

우리 부부는 일상에서 비교적 자주 대화를 나누어 서로가 상대방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미술치료 실습을 하면서 그동안 서로의 속마음이나 느낌을 감지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숨겨진 아름다움도 보지 못하고 살아왔음을 알게 되었다. 아내와 함께 자유롭게 그림과 점토 작품을 만들어 서로의 느낌이나 생각을 나누다 보니 상대방을 이해하고 또 서로의 장점을 발견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아내는 사람들이 달맞이하는 그림을 그렸다. 은하수를 생각하며 하늘에 많은 별들을 그리고 배에 탄 사람들의 축제 분위기를 그렸다고 했다. 아내의 시적이고 동요적인 그림이 신선하게 느껴졌고 아내의 동심 세계가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림을 보며 홀연히 아내 안에는 별빛 같은 무수한 아름다움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내는 ‘내가 알고 있는 아내’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아내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기다리는 삶은 축복이 아닌가 싶다.

나는 미술치료 실습시간에 점토를 가지고 아내의 얼굴상을 만들었다. 평생 처음 만든 점토 작품인데도 만들어 놓고 보니 ‘조용한 아내의 얼굴상’이 나쁘지 않았다. 내가 만든 아내 얼굴상을 보여주었더니 아내가 웃으면서 말한다. “소중히 잘 보관해요.” 작품이 좋아서라기보다 자신을 더욱 소중히 여겨 달라는 아내 마음의 표현이다.

어느 날은 아내가 집에 들어오며 한 손에 점토로 만든 얼굴상을 가지고 들어왔다. 사연을 물었더니, “오늘 모임에서 미술치료 선생님의 제의로 참석자들이 각자 ‘나에게 기쁨을 주었던 사람의 얼굴’을 점토작품으로 만들게 되었지요. 작업을 해 놓고 보니 당신 얼굴상이 되었네요.” 한다. 아내가 부족한 남편의 얼굴상을 만들었다니 뜻밖의 선물이었다. 아내의 선물이 고마우면서도 아내에게 더 자주 기쁨의 선물을 주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런 미술치료 경험도 있다. 아내와 내가 마음을 모아 갱지 위에 함께 그림을 그리는 소위 협동화 작업이었다. 아내 먼저 갱지에 생각나는 대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도록 했다. 아내는 손 가는 대로 두 개의 오뚝이와 팽이처럼 생긴 장난감을 그렸다. 이런 아내의 그림에 연이어 내가 하늘과 별을 그려 넣었더니 아내는 다시 그림 윗부분에 별들을 몇 개 더 그려 넣었다. 나는 다시 아내 그림 위에 황혼빛 하늘색을 그림 배경으로 칠했다. 이렇게 부부가 한 종이에 그림을 번갈아 그리다 보니 그 모습은 마치 한 지붕 아래 부부가 ‘서로의 있음을 그대로 인정’하고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 같았다.

우리는 마무리한 그림을 보고 느낌을 서로 이야기하며 그림 제목을 정해 보았다. “별을 닮은 우리들 마음”이 됐다.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일체감과 성취감을 느끼게 된 계기였다. 나는 작업 내내 아내가 그린 그림에 내가 어떤 그림을 추가해야 더 아름다운 그림이 될 수 있을까, 또 내 그림이 어떤 배경이 되어주어야 아내의 그림이 살아날까를 생각했던 것 같다.

살아가면서 가장 아름다운 일은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주는 일이다.
별을 더욱 빛나게 하는
까만 하늘처럼
꽃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무딘 땅처럼
함께하기에 더욱 아름다운
연어떼처럼
- 안도현의 『연어』 중에서

누군가 말했다. “당신의 배경이 되어주는 것이야말로 내가 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일이다.” 아름다운 소망이지만 이를 삶으로 살아내기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이런 지향으로 부부가 날마다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길을 가다가 넘어져도 내 안의 아름다운 지향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지 않을까.

- 『나를 기다리는 설렘』 중에서
(이강남 지음 / 연암서가 / 272쪽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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