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신벌레에게 물었다.

짚신벌레야, 너는 걸을 때 어느 발을 제일 먼저 땅에 딛니?

대걸레보다 더 많은 발을 가지고 부지런히 걸어가던 짚신벌레가 그 말을 듣고 한참 생각했다. 그리고 더 이상 걷지 못하게 되었다.

수많은 발 중 어느 발이 가장 먼저 바닥에 닿는가를 생각하다가 사고가 멈춰버린 짚신벌레처럼 지금 우리가 사는 현대가 그런 것 같다. 생각 없이 어디론가 마구 걸어가는 수많은 발과 의식이 굳어버린 발. 걷지 못하는 발들과 너무 많은 발이 공존한다.

작가, 정치인, 연예인, 종교인, 택시 운전사, 교수, 학생, 그리고 벗들이시여! 걸을 때 어떤 생각의 발부터 내미는가. 만날 때 어떤 마음의 발을 내미는가. 행복의 발, 여유의 발, 배려의 발, 용서의 발, 나눔의 발, 사랑의 발…… 수많은 발 중에서 어떤 발을 먼저 내밀며 하루를 시작하는가.

두려움의 발, 분노의 발, 복수의 발, 미움의 발, 질투의 발, 싸움의 발, 광기의 발을 먼저 내밀어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싸우고 죽이며 살아온 곳이 있다. 이슬람계 보스니아인들이 30만 명이나 학살된 유고 내전의 중심지 모스타르Mostar.

사진에 보이는 다리(7월호 월간지 p.80에서 확인 가능)를 사이에 두고 북쪽으로는 카톨릭교를 믿는 크로아티아이고 남쪽으로는 이슬람교를 믿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이다. 사진을 찍은 곳은 저 다리를 건너 크로아티아로 들어와 언덕 위 이슬람 무슬림의 마을이 보이는 곳이다.

1500년에 지어진 모스타르라는 지명은 ‘다리 파수꾼들’을 뜻한다. 저 석조 다리에 싸움의 발을 내민 사람들이 치열한 종교전쟁을 했고 무수한 목숨이 스러졌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1993년에 부서졌던 다리를 얼마 전 다시 복원했다. 다리를 건너다 보니 다리 맨 끝에는 ‘Don’t forget 93’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비석이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두 종족이 밀고 밀리며 싸우던 모스타르.

평화로워 보이지만 이곳으로 올라오는데 벽마다 온통 총알 자국들이 그대로 있다. 비극과 참극이 있었던 곳은 이상하리만치 평화롭다. 현존하는 사람들이 그 일을 잊으려고 치장해서 그런가. 총알이 오가던 전쟁을 잊은 듯 이곳을 평화롭게 지나가는 관광객들과 함께 모스타르 다리를 몇 번이나 오갔다. 다리를 건너가면 가톨릭 마을, 다시 반대로 건너가면 이슬람 마을. 다리를 건너면서 ‘발’을 생각했다. 이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은 어떤 발을 내밀며 걸을까.

어떻게 보면 사람에게는 두 개의 다리와 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짚신벌레보다 더 많은 발을 가지고 있다. 첫걸음을 어떤 생각, 어떤 마음의 발로 딛느냐에 따라 걸음의 방향이 달라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곳에서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위하여 3유로짜리 가톨릭 묵주와 2유로짜리 나무 피리와 무슬림 모자를 샀다. 모스타르 다리를 다시 건너며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갈 때 제일 먼저 땅에 대는 첫걸음을 사랑이라 부르자. 그다음 걸음을 여유라고 부르자. 사랑과 여유, 그 두 발로 걷기.

- 『그리운 것은 모두 달에 있다』 중에서
(권대웅 지음 / 예담 / 320쪽 / 1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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