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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에서 돌아와 사랑을 말하다

소설가 신경숙이 필사하며 공부한 사람, 시인 김지하가 ‘1960년대 한국 문학의 반짝이는 별’이라고 언명한 사람, 『무진기행』의 작가 김승옥 선생을 만났다. 선생의 작품 속 탁월한 감수성과 감각적인 문장을 소설의 언저리를 기웃거린 사람들이라면 책장이 닳도록 읽었을 것이다. 그만큼 선생의 작품은 문장이 빼어나고 그 구조와 소설적 공간이 견고해 독보적인 사랑을 받아왔다. 1980년 절필을 선언한 이후 글을 보이지 않던 선생이 다시 글을 내놓았다. 『내가 만난 하나님』이란 낯선 제목으로.

선생은 지난해 뇌졸중으로 몸져누운 지 꼬박 한 해를 지나고 나서야 거동할 수 있게 되었다. 조심스럽게 건강을 궁금해했더니 “지금도 많이 아프다.”며 웃는다. 그러고 보니 선생은 알려진 것과 다르게 웃는 모습이 곧잘 눈에 띈다. 『내가 만난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가 더욱 궁금한 것도 이 대목이다. “다른 제목으로 출간되기를 원했는데 이 책에 어떤 사명감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는 것이 출판사의 설명이다. 선생은 이 책을 통해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마음을 후비는 비유도 놀라운 표현도 없다. 간단 명료하다. “좋은 일이니 권하지 않을 수 없고 그래서 미친 놈 소리를 듣더라도 하나님이 계시다고 증언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그에게 좋은 일이 생겼다고 고백하고 있지 않은가. 십 년 세월을 넘게 지켜온 세종대 강단을 지난해 봄에 떠나게 되었고, 구성진 노래며 화가 못지않은 그림 실력도 자취를 감추었는데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무에 좋은 일인가.

짧은 대화, 띄엄띄엄 이어지는 필담으로 이뤄진 인터뷰 내내 선생은 처음 그대로이다. 힘들어하거나 포기하는 법이 없다. 자신에게 넘쳐나는 이야기를 주체하지 못한 그 시절처럼 자기 안에 고인 경험들을 하나라도 더 정확히 나누기 위해 어렵사리 단어를 생각해 내고 종이에 그림까지 그렸다. 선생의 뜻은 분명히 전이되고 있었다. 1981년부터 2004년까지 세월에서 “하나님이 가장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설 쓰는 것보다 더 좋았다.”는 것이다.
4·19가 일어난 1860년 서울대 문리대 1학년에 재학 중이던 선생 주위엔 친구가 끊이지 않았다. 그들과 시대를 논하고 삶을 이야기하며 한 줄 한 줄 채워나갔지만, 그에게 남는 건 깊은 허무였다고 고백한다. 그들과 함께 지나온 시간은 분명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신이다. 그러나 선생이 보편적으로 내보인 작품 속 인물들의 허무 세계와 냉소적인 성향을 간과할 수 없다.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동인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의 총아로 떠오른 그에게 남은 것은 죽음의 문제였다. 일찍이 교회에 다녔으나 깊이 체험되지 않은 신앙이 변화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선생은 고백한다. “그분을 만난 이후 나는 이제 무엇을 쓰나.”라고 한 일간지에 고백했던 것처럼, 1981년 부활절 예배 때 만난 주님과의 해후는 소설가에게 전혀 다른 이름을 주게 된다.

“소설가는 ‘이것이 문제다’고 생각하는 것에 봉사해야지, 어느 무엇에도 구속당해선 안 된다.”던 선생은 구속이 아니라 자유를 맛보게 된 것이다. “목숨 바쳐 가야 할 길을 알고 나니 마음이 그렇게 편안해질 수가 없었다.”는 고백은 선생을 만나는 내내 절감하는 부분이다.

선생은 오랜 시간 뜸을 들이며 숫자를 쓰고 하나님을 표기하며 소설과 믿음이라는 단어를 또박또박 기록했다. 그 단어를 기록하는 데 걸리는 힘과 떨림만큼이나,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만났고 그 존재에 다다른 모양이다.

주님을 만나 배운 것 하나, 선생은 ‘사랑’을 말한다. 앞으로 작품 속 인물들은 어떤 성정을 지닐 것인가 하고 조아리는 기자에게 준 답변이다. 복음이 담긴 소설, 문학적 소설 모두는 사랑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 선생의 말이다. 기독적인 성향이 방해받는다며 아쉬워할 것이 아니라 커나가야 한다며, 사랑을 추구하면 넓어진다며, 마치 친구를 사귀는 것과 같아서 귀찮고 복잡하더라도 친구에게 이리로 오라 하고 친구 곁으로 가면서 길을 선도하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원만하고 편안한 관계가 아니라 귀찮고 힘들더라도 그것이 사랑이라고.

이 이야기를 거저 들어도 되는가, 생명을 걸고 자신의 길을 버리며 주님을 만난 이 엄청난 비밀을 거저 들어도 되는가, 못내 조심스럽다. 육순이 넘은 노 문학가의 쟁쟁한 필체는 그의 흰머리가 낯설 만큼 푸른 기가 가득하다. 펄떡인다. 예수의 생명으로 펄떡인다.

선생의 곁에 있는 믿지 않는 이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책은 선물로 배달된다. 스님이 보고 작가가 보며 배우가 본다. “날마다 삶이 간증인데 한없이 쓸 수 있을 것이다. 믿는 사람마다 간증을 가지고 있다. 서로의 간증이 더욱 믿음을 돋워 주기를 바랄 뿐”이란다. 선생의 수첩에 적힌 사람들의 이름, 그 하나하나에 기도를 얹는다.

“논리와 윤리를 갖춘 언어를 네 영혼에 입력시켜라. 네 행복감은 그 우주의 크기만큼 커지는 것이다. 할 수 있다면 우주의 근원인 하나님을 볼 수 있을 만큼 네 언어가 정제된 것이게 하라.” 제자들에게 대선배의 간곡한 당부는 “내 인생에 확실한 스케줄이 생긴 것이 아주 기쁘다.”는 고백으로 세상에 다시 울려퍼지고 있다.

서울의 작가 김승옥이 발견한 서울에서의 선이란 자기 의견을 솔직히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만난 하나님』의 작가 김승옥이 발견한 이 땅에서의 선이란 그분의 의견을 솔직히 말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 「빛과 소금」 8월호 중에서
번호 | 제목 | 날짜
243 들꽃 진료소의 하루 2005년 06월 26일
242 아버지, 그립습니다! 2005년 05월 25일
241 우선 사랑하고 그 다음 가르쳐라 2005년 04월 25일
240 단 하루, 동심 즐기기 2005년 03월 23일
239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 2005년 02월 24일
238 함께 사는 세상의 시작, 나눔 2005년 02월 02일
237 용서는 기적을 낳는다 2004년 12월 29일
236 무진에서 돌아와 사랑을 말하다 2004년 11월 29일
235 놀라운 삶의 역설 2004년 11월 02일
234 다시 하늘로 땅으로 2004년 10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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