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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라, 타인을 끌어안고 함께 하라
숱하게 스쳐 지나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피사의 사탑처럼 불안하게 기울어져 갈 때, 힘들고 지쳐서 주저앉고 싶을 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그런 기억이 있다면 그것으로 이 세상은 살아갈 만한 것이 아닐까. 다행스럽게도 내게 그런 사람과 그런 기억이 있다.

나에게는 두 살 터울의 여동생이 있다. 그녀와 나는 사뭇 다르다. 열정적이고 감성적인 나에 비해 그녀는 늘 차분하고 의연하다. 바람 잘 날 없는 집안에 터지는 크고 작은 일들 앞에서 서두르는 일 없이 조용하게 차근차근 풀어 나간다.

더구나 동생은 아주 예뻤다. 외국 여자애처럼 오똑한 코, 큰 눈, 시원하게 생긴 입. 그런 그녀에게 사촌오빠들은 ‘소피아 오드리’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소피아 로렌과 오드리 햅번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준 별명이다. 명절이 되면 사촌오빠들은 언제나 여동생 주위로 모여들었다. 그녀는 그걸 부담스러워했고, 늘 수줍게 누군가의 뒤로 몸을 숨기곤 했다.

정작 그녀가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던 건 잘생긴 눈코나 예쁜 얼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 앞에 서면 거짓말이나 나쁜 말을 할 수 없는 진지한 표정에 누구라도 진실한 느낌이 들었다. 어른이 된 지금이야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옛날 아이의 얼굴에서 그런 선량하고 그윽한 표정이 비쳐난다는 것이 신비로웠다.

내가 삼수를 하고 대학에 떨어진 겨울, 동생도 같은 수험생이었다. 함께 시험을 친 나는 떨어지고, 그녀는 성균관대학교 장학생으로 합격했다. 절망하고 있는 내 앞에서 그녀는 자기 혼자 붙어서 미안하다고 울었다. 절망이 너무 커 서럽기만 했던 나는 그런 동생이 고마워 울음을 터뜨렸다. 동생이 다닌 대학은 집에서 한 정거장 거리, 나는 그녀의 학교 도서관에 다니곤 했다. 그때 나는 불면증에 시달리느라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들어 점심 무렵 비로소 움직였다. 그런 나를 위해 동생은 일찍 집을 나서서 도서관에 자리를 잡아 주었다. 어지러운 나날을 보내는 내게 동생의 한결같은 마음 씀씀이는 무엇보다 큰 위로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내가 힘든 결혼 생활로 마음고생을 할 때 자기 일처럼 아파하고, 늘 격려해 주고, 용기를 준 그녀 때문에 나는 어려운 나날을 견딜 수 있었다. 같은 아파트에 살던 그녀는 나와 내 딸이 깊은 잠을 더 잘 수 있도록 분리수거를 해 주고, 김치가 떨어질 때쯤이면 미리 알아서 챙겨 주었다. 정리의 여왕인 그녀의 집은 언제나 깨끗하고 정돈이 잘 되어 있다. 천국이 있다면 아마도 그녀의 집처럼 생기지 않았을까. 깨끗한 공간에서 따뜻하고 착한 동생과 함께 있으면 아무리 혼란스러운 일로 시달려도 하나씩 실마리가 보이고, 그녀의 살림살이처럼 정리 정돈이 되었다.

함께 시장을 갈 때마다 그녀에게 몹시 감동한다. 좌판을 펴놓고 물건을 파는 아주머니들과 오랜 정을 쌓은 사람처럼 그녀들의 주름 많고 거친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는 모습. 언제 보아도 가슴 뭉클하다. 그러고 보면 그녀가 내게 베푼 많은 배려와 위로는 같은 혈육인 이유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그녀의 천성 때문일 것이다. 좋은 일을 해도 남들 앞에 내세우지 않고, 그럴 생각조차 않는 사람. 늘 주위 사람과 세상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그녀. 그녀를 들여다보는 일만으로도 나는 힘을 얻어 시를 쓸 수 있었고, 메마른 세상을 조금이나마 푸근하게 살았던 것 같다.

물론 우리라고 언제나 생각이 같은 것은 아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동생처럼 나도 한때 열심히 믿음을 가졌지만 결국 냉담자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차이가 있고, 어쩌다 그것이 부딪치면 서로가 굽히지 못한다. 얼마 전 그녀와 작은 다툼이 있었다. 통화를 하다가 요즘 젊은이들의 자유분방해 보이는 삶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야기 도중에 “결혼하고 나서 어떻게 될지 모르니 미리 살아 보고 결혼하는 것도 좋겠다.”라는 내 말에 동생이 강하게 반박을 하고 나왔다. 혼전, 혼외 성관계에 대해 말도 안 된다고 여기는 그녀의 생각이 얼핏 답답해 보여 한마디하자니, 우리의 목소리가 커져 갔고 상한 기분으로 통화가 끝이 났다.

언쟁이 있은 후 동생이 메일로 내게 보낸 편지, 그리고 나의 답장. 또 이어서 온 동생의 편지. 그 메일을 받고 얼마나 마음이 편안했던지.

“사랑하는 언니, 메일 고마워. 피를 나눈 형제 사이에 그 관계를 멀게 할 게 그 무엇이겠어. 언니가 하나님의 크신 사랑 안에서 쉼을 누리고 행복하길 바랄 뿐이야.”

동생과의 언쟁 이후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사이일수록 분명한 시각의 차이를 감추거나 외면하지 말고, 그 점을 인정하고 의견을 좁혀 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다 보면 한 번 더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나아가 세상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네 인생이 더 넓고 깊어지는 것이리라.

흘러가고 떠나기만 하고 다시 오지 않는 인생살이. 늘 아쉬워하는 우리네 인생살이에서 항상 든든하게 내 편이 되어 주고, 멘토로서 나를 격려하며 깨워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비할 데 없는 큰 축복이다. 더욱이 핏줄이라는 단단한 것으로 엮여 등처럼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를 환히 비추고 있으니 그 얼마나 다행인지.

- 『내 서른 살은 어디로 갔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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