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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크소리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으며 4개월간 머물렀던 네팔에서, 나는 히말라야나 티베트의 경이로운 자연보다 더 특별했던 사람들을 만나고 왔습니다. 그들과 함께 웃고, 울고, 싸우고, 사랑하다 왔습니다. 특히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 가난과 인내와 신들에 의해 길들여진, 지나치게 착하고 사랑스러운 그 작은 인간들과 특별한 친구가 되고 싶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만든 방과후 학교 ‘어린이 클럽’에서의 선생님 일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내가 가르치는 것은 영어, 컴퓨터, 그리고 사진찍기이다. 그러고 보니 이 세 가지는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과목들이기도 하다. 네팔에서 영어는 진학, 취업, 성공의 절대 요건이다. 또한 컴퓨터 수업은 인터넷으로 나에게 이메일을 보낼 수 있게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사진 찍기는 그림을 그려볼 기회조차 많지 않은 아이들에게 낯설고 재밌는 ‘예술 수업’이 될 것 같아 시작했다. 가난이 억누르고 있는 아이들의 상상력과 감성에 길을 내주고 싶었다.

4시 30분, 수업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나는 여느 때처럼 4시 50분까지는 어제 배운 부분을 복습하며 시간을 끌어보려고 애쓴다. 아직 ‘로지’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열세 살 여자아이, 로지 욘잔. 노란 국화꽃을 닮은 아이다.

얼마 전 이곳에서 함께 자원봉사하던 J에게 이곳 아이들 중 한 명의 후원인이 되고 싶다는 욕심을 비친 일이 있다. J는 반갑게 맞장구를 쳐주는 걸로 모자라, 이내 한술을 더 떴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후원자들을 30명 정도 모아 30명의 아이들과 1:1 결연을 맺어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두 달에 3만원 정도가 어떨까? 3만원이면 2,100루피. 한 달 등록금이 평균 900루피 정도니까 고등학교까진 어렵지 않게 다닐 수 있겠지?” “더 바랄 게 없지. 그런데 마음에 둔 아이라도 있어?” “음……로지!”

아, 이건 뭐랄까. 비유가 좀 그렇지만, 카드놀이에서 아까운 패를 상대에게 빼앗긴 기분이었다. 로지는 내게 그런 아이였다. 아이들과 함께 길을 걷다가 문득 로지가 보이지 않아 뒤를 돌아보면, 으레 저 뒤편에서 길가 불상 앞에 합장을 하고 있는 로지였다. 사람들을 대하는 몸가짐과 표정, 마음도 그랬다. J가 이곳에 처음 왔던 날, 멋쩍은 표정으로 서있던 J에게 먼저 눈을 맞춰주고 미소를 띄워준 아이가 로지였다.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한 티없이 맑은 호의, 타인에 대한 따뜻한 친근감이었다.

이곳을 떠나던 날, J는 로지의 집을 찾아가면서 혹시 자신의 선의가 로지에게 일말의 상처라도 주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로지는 집에 없었다. 할머니 댁에서 남동생을 돌보며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부모님이 삼남매를 모두 양육하는 게 힘에 부치나 보았다. 우리는 할머니 댁을 물어 찾아갔다. 택시로 25분. 로지는 조금 놀란 기색이었다. J는 텃밭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을 함께 산책하며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멀리 보이는 모습이 다정한 자매들 같았다. 산책에서 돌아왔을 때 둘은 활짝 웃고 있었다. J의 걱정은 역시 기우일 뿐이었다. 로지는 자신의 가난에 대한 선의에 자존심을 다칠 아이가 아니었다. 한국 언니한테서 장학금을 받게 됐다는 소식에 기뻐하시는 할머니를 보고, 한없이 같이 기뻐했을 것이다.

J가 떠나고 며칠 뒤, 길에서 우연히 로지를 만났다. 아이의 옆에는 할머니와 남동생도 있었다. 할머니를 모시고 부모님 사는 집에 들렀다가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걸어서?” “멀지 않은 걸요.” 멀지 않다니! 택시를 타고 25분이나 달린 거리였는데. 게다가 허리가 꼬부라진 할머니와 개구쟁이 남동생을 좌우에 데리고…… 방긋 웃고 돌아서서 멀어지는 로지의 뒷모습이 한참 동안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로지의 지각은 특강이 시작되고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됐다. 어둠과 개들로 뒤범벅된 거리를 걸어 귀가해야 했기 때문에 결국 만장일치로 낙찰된 등교시간이 조금 이른 시간인 4시 30분이었다. 로지가 선뜻 양보한 덕택이었다. “로지야, 괜찮겠어? 무리일 것 같으면 얘기해.” “아뇨, 올 수 있어요. 전 괜찮아요.” 그러나 괜찮지 않았다. 로지는 매일 4시 50분쯤에야 가쁜 숨을 몰아쉬며 교실에 도착했다. 지각이 닷새째 이어지던 날, 조심스레 이유를 물어봤다. “4시 10분에 학교가 끝나는데요. 집에 들르지 않고 바로 뛰어와도 늦네요. 죄송해요.” “학교가 어딘데?” “할머니 집 근처에 있어요.” 택시로 25분이 걸리는 거리를 40분만에 쉬지 않고 뛰어온 것이었다. 그것도 밑이 다 닳은 슬리퍼를 신고……이건 정말 너무한 일이었다. 너무 무심하고 안일한 선생과 너무 사려 깊은 아이…….

로지에게는 고칠 수 없는 버릇이 하나 있다. 내가 몇 번이나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로지는 교실 문 앞에 도착해 늘 가쁜 숨을 다잡으며 조심스레 노크를 한다. 얼굴엔 수업을 방해했다는 미안함을 잔뜩 묻히고서. 4시 48분. 이제 조금만 있으면 로지의 가파른 숨소리와 노크 소리가 들릴 것이다. 똑똑. 내가 사랑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크 소리.

- 『잘 있나요? 내 첫사랑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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