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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으로 가지 말고 곡선으로 돌아가라
티베트 속담에 “서둘러 걸으면 라싸에 도착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티베트는 지역이 매우 넓고 지형이 험준합니다. 사람들은 얼마나 멀리 떨어진 데 살든지 중부지역에 있는 수도 라싸로 성지순례 가는 것이 평생 소원입니다. 달라이 라마가 사는 포탈라 궁과 유명한 조캉 사원이 거기 있기 때문입니다. 동부와 북부의 히말라야 골짜기에 사는 사람들은 한 달 넘게 걸어야 이곳에 도착합니다. 빨리 도착하려면 빨리 걸어야 할 것이지만, 너무 빨리 걸으면 산소도 희박하고 길도 험해서 금방 지치거나 병에 걸립니다. 그러면 집으로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유 있는 걸음으로 주위 풍경도 구경하고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차도 마시고 야영도 하면서 계속 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생각보다 빨리 라싸에 도착해 있습니다.

이것이 삶의 기술입니다. 여기에 곡선의 묘미가 있습니다. 이러한 삶의 지혜를 통해 자기 자신을 극복할 수 있고, 또한 남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아량이 생기게 됩니다. 인생의 저력이 쌓이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당장에 이루려고 서두르지 마십시오. 삶이 제대로 성숙하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안으로 여물 시간 말입니다.

제가 잘 아는 집안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내일모레면 환갑이 되는, 아내와 다 키운 아들딸을 거느린 어엿한 가장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모두가 선망하는 소위 일류대학을 나온 사람입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우던 1960년대 한 대기업에 입사를 합니다. 그리고 그 회사에서 30년 동안 착실하게 근무합니다. 그런데 IMF 때 회사의 임원으로서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직장에서 해고를 당했습니다. 재판도 했지만 결국 무일푼으로 쫓겨났다고 합니다. 부인 명의로 된 얼마 안 되는 재산만 남은 것입니다. 그것이 30년 직장 생활의 전부였습니다.

그 나이에 새로 취업을 하기란 무척 어려웠을 테니, 어떡해야 좋을지 앞날이 막막했을 것입니다. 처음 한두 달은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 주로 산에 다녔습니다. 산을 오르내리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공부하는 일이고, 하나는 운전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나이에 공부하는 것은 힘들고 운전기사를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습니다.

어느 날 부인에게 택시 기사를 해 보겠다고 하니 부인이 깜짝 놀라더랍니다. 그러나 그분은 운전면허를 1급으로 갱신하고 택시 기사 교육도 받아 자격증을 땄습니다. 처음 차를 몰고 나가던 날 불안해하는 아내에게 남편은, 25년 무사고 운전사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했다고 합니다. 평생 육체노동이라고는 모르고 회사일만 하던 사람이 12시간이나 되는 고된 노동을 하게 되었으니, 그 아내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런데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남편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밝고 활기찼습니다. 남편 말이, 막상 부딪쳐 보니 이 일도 재미있더랍니다. 그렇게 6개월이 흘렀습니다.

“지난 여섯 달간 저희 집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결혼 생활 28년 동안 요즘처럼 집안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돈 버는 일벌레이고 가족에게는 무관심한 사람이라는 가족들의 생각이 이제는 바뀌었습니다.”

이런 아버지를 자식들이 존경스러워하고 안쓰럽게 여기면서 자기 대신 이것저것 챙기는 것을 볼 때마다 부인은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합니다. 수입으로 치면 회사 다닐 때의 몇분의 1도 안 되지만 힘든 기색 없이 꿋꿋하게 살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에 온 가족이 고마워합니다. 그전에 직장 다닐 때는 얼굴도 안 비추던 식구들이 이제는 아침에 아버지가 출근할 때 모두 현관에 나와서 오늘도 아무 탈없이 운전 조심하시라고 인사를 한다고 합니다.

“하루에 40~50명의 손님들을 대하다 보면 세상 돌아가는 별별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들 삶의 모습을 접할 때마다 새삼스레 아내와 아이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몸은 고되지만 회사 다닐 때처럼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가끔씩 보람있는 일도 생겨서 재미있습니다. 때로는 친절한 기사양반이라고 하면서 명함도 달라고 합니다. 노인들을 보면 부모님 같아서 잘해 드리고 싶고, 젊은이들을 보면 자식 같아서 살뜰하게 대해 주고 싶습니다. 가정의 행복이란 화목과 사랑의 나눔에 있음을 요즘에 이르러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사람을 안으로 여물게 합니다. 더러는 길을 잃고 헤맬 수도 있어야 합니다. 체면만을 생각한다면 더 이상의 인생은 없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현재 상황 아래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곡선의 묘미는 거기에 있습니다.

- 『일기일회』 중에서
(법정 지음 / 문학의숲 / 390쪽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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