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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왔네
그날, 서울역을 출발한 지하철 안에서 당신이 뭔가를 깨닫는 데는 몇 분이나 걸렸을까. 지하철은 떠나는데 아내가 타지 않았다는 것을 당신이 알아채는 데 흐른 시간들. 당신은 당연히 아내가 당신을 뒤따라 지하철을 탔을 것이라고 여겼다. 지하철이 남영역에 멈췄다가 다시 출발하는 순간 어떤 충격이 당신의 머리를 강타했다. 그 충격을 확인해보기도 전에 돌이킬 수 없는 지독한 잘못을 저질렀다는 절망이 당신의 뇌를 후려치고 지나갔다. 당신의 심장박동 소리가 그 순간 당신 귀에 들릴 만큼 커졌다. 당신은 뒤를 돌아보기가 두려웠다. 아내를 서울역에 두고 당신 혼자서만 지하철을 타고 한 정거장을 지나왔다는 것을 확인해야 하는 그 순간, 당신이 옆사람의 어깨를 쳐가며 뒤돌아본 그 순간, 당신은 당신의 일생이 심하게 손상되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열일곱의 아내와 결혼한 이후로 오십년 동안 젊어서는 젊은 아내보다 늙어서는 늙은 아내보다 앞서 걸었던 당신이 그 빠른 걸음 때문에 일생이 어딘가로 굴러가 처박혀버렸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일분도 걸리지 않았다. 지하철을 타고 나서라도 바로 뒤를 돌아 확인했더라면 이리되지 않았을까. 젊은날부터 아내가 당신에게 했던 말들. 어딘가 함께 갈 때면 항상 걸음이 늦어 뒤처지곤 하던 아내는 늘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힌 채 당신을 뒤따르며 좀 천천히 가먼 좋겄네, 함께 가먼 좋겄네…… 무슨 급한 일 있소? 뒤에서 구시렁대었다. 마지못해 당신이 기다려주면 아내는 민망한지 웃으며 내 걸음이 너무 늦지라오? 했다. “손잡고 가자고는 안할 것잉게 좀 천천히 가요. 그러다가 나 잃어버리믄 어짤라 그러시우.”

당신은 아내가 마치 이리될 것을 알고나 한 소리처럼 여겨졌다. 스무살에 만나 오십년이 흘러 이 나이가 되는 동안 평생을 아내로부터 천천히 좀 가자는 말을 들으면서도 어째 그리 천천히 가주지 않았을까. 저 앞에 먼저 가서 기다려주는 일은 있었어도 아내가 원한 것, 서로 얘기를 나누며 나란히 걷는 것을 당신은 아내와 함께해본 적이 없었다.

당신은 아내를 잃고 나서 자신의 빠른 걸음걸이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터질 듯했다. 어느 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모퉁이를 돌기도 했다. 뒤처져서 아내가 당신을 부르면 당신은 왜 그리 걸음이 늦느냐고 타박했다. 그러는 사이 오십년이 흘렀다. 또 그렇게 남은 생을 살아갈 줄 알았다. 그런데 한 걸음이나 두 걸음쯤 앞섰을 뿐인 그 서울역에서 당신이 먼저 탄 지하철이 출발해버린 뒤로 아내는 여태 당신 곁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수술 후 무릎을 접고 앉는 일이 불가능해진 왼쪽 다리. “찜질 좀 해줘요?” 귓전에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당신이 대답하지 않아도 대야에 물을 받아 가스레인지에 올린 뒤 수건을 뜨거워진 물에 적셔 짜서 당신의 무릎 위에 얹어놓던 그 검버섯 핀 손. 무릎에 얹힌 수건을 꾹꾹 눌러주는 그 투박한 손을 볼 적마다 당신은 아내가 당신보다 하루라도 오래 살기를 바랐다. 당신이 죽은 뒤에 아내의 손이 마지막으로 당신의 눈을 쓸어주고, 자식들 앞에서 당신의 식어가는 몸을 닦아주고 그 손으로 수의를 입혀주기를.

그러나 당신은 아내가 당신보다 더 오래 살기를 바라던 마음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나를 이제야 깨닫는다. 그 마음이 아내가 깊은 병에 걸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도. 밭일을 보고 돌아오면 죽은 듯이 잠들어 있던 아내가 사실은 눈을 뜨기조차 힘들 만큼 머리가 아파 눈을 감고 있는 거란 걸 당신은 알고 있었다. 내색하지 않았을 뿐이다. 언제부턴가 아내가 개밥을 주러 간다면서 개집이 있는 곳으로 가지 않고 우물가로 향한다는 것을, 어딘가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가는 대문간에서 우두커니 서있다 도로 방으로 돌아오기 일쑤라는 것을 당신은 알았다. 당신은 아내가 기진맥진한 듯 방으로 기다시피 들어와 겨우 베개를 찾아 베고 이마를 찡그린 채 드러눕는 것을 보기만 했다. 언제나 아픈 사람은 당신이었고 그런 당신을 보살피는 사람이 아내였다. 어쩌다가 아내가 배가 아프다고 하면 당신은 나는 허리가 아프다고 한 사람이었다. 당신이 아프면 아내는 이마를 짚어보고 배를 쓸어보고 약국에서 약을 사오고 녹두죽을 끓이고 하였으나 당신은 약 지어다 먹으라고 하곤 그만이었다.

당신은 이제야 아내가 장에 탈이 나 며칠씩 입에 곡기를 끊을 때조차 따뜻한 물 한 대접 아내 앞에 가져다줘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일을 지내러 서울 아들네 가던 그날도 아내는 장탈로 고생을 한 뒤였다. 아내를 잃어버린 당신은, 혼자 남은 당신은, 빈집의 마루에 다리를 뻗은 채 소리를 꺼억 내질렀다. 아내가 사라진 뒤부터 늘 목에까지 차오르던 울음 대신이었다. 그러자 아들 앞에서 딸 앞에서 며느리 앞에서 소리를 지를 수도 울 수도 없던 분노인지 모를 치받침으로 인해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

- 『엄마를 부탁해』 중에서
(신경숙 지음 / 창비 / 299쪽 /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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