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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아빠가 필요한 100가지 이유
우리 아버지는 서른 살 전에 이미 자식을 다섯이나 두었고 나는 그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러니 집안이 잠시도 잠잠한 날이 없었다. 아이들로 북적대던 집은 아이들이 자라면서 점점 비좁아져 터져나갈 것 같았다. 아버지는 가족을 부양하느라 열심히 일하는 와중에도 짬짬이 시간을 내어 우리들과 함께 놀아주었다. 우리들을 전부 데리고 놀 때도 있었고 한 명씩 따로 놀아주기도 했다. 우리가 나무 위에 집을 지어놓으면 튼튼하고 안전하게 지어졌는지 살펴봐 주었다. 비누곽 경주 놀이를 하면 누구 비누곽이 먼저 결승점을 통과했는지 심판을 봐주기도 했다. 우리가 운전대 너머로 밖을 내다볼 수 있을 만큼 자라면 우리를 무릎 위에 앉히고 동네를 한 바퀴 돌며 구경시켜주었다.

소년 시절 아버지와 함께 했던 일들은 내게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앞마당에서 커브 볼을 던지는 법을 가르쳐주던 아버지, 보이스카우트에서 내준 과제를 도와줘서 누구나 탐내는 공로배지를 받게 해주었던 아버지, 일요일 오후면 자동차를 고치거나 집안 여기저기 손을 보면서 나를 옆에 세워두고 연장 심부름을 시키던 아버지... 낚시를 좋아했던 아버지는 토요일 아침 동트기 전에 나를 흔들어 깨웠다. 그러고는 동생들이 깰세라 나직이 속삭이며 우리 둘이서만 조용히 빠져 나와 낚시를 하러 갔던 적도 있었다. 우리는 물가에 서서 얘기를 하기도 하고 아침이 열리는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이는 것으로 만족할 때도 있었다. 이렇게 어린 시절을 보낸 내게 아버지는 영웅이었다.

청소년기로 접어들면서 우리 관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도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부모의 몰이해와 지나친 통제에 불만을 느꼈다. 나는 또래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옷을 입었고 책임과 의무는 뒷전으로 한 채 친구들과 늦게까지 밖으로 돌아다녔다. 이런 나의 반항적인 행동들은 손톱에 박힌 가시처럼 아버지의 신경을 건드렸다. 아버지나 나나 둘 다 강한 성격을 지닌 터라 충돌이 잦았다. 질풍노도 나의 사춘기 시절은 우리 부자 모두에게 어려운 시기였다. 둘 사이의 불화가 너무 심해서 때로는 서로에 대한 애정이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내게 낚시를 가르쳐주던 자상했던 분이 어떻게 저렇게 되었는지 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 집을 떠나 독립할 때, 나는 아버지가 되어서는 물론이고 어른이 되어서도 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대학원에 들어갈 무렵 아버지와 나는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었다. 서로 다르긴 해도 사이는 좋은 편이었고 대화를 많이 나누진 않았어도 언쟁을 벌이진 않았다. 부자간에 따뜻한 정은 느꼈지만 서로 포옹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나도 모르는 새에 주머니에 넣어두시는 용돈이나 어머니가 차려주는 푸근한 밥상이 그리워 가끔 집에 들르면 반갑게 맞아주시던 아버지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은 늘 자리잡고 있었다. 예전 같지는 않았지만 난 다시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속으로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다.

이제 나이가 들고 많은 경험을 하고 나니 아버지를 전혀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제 막 10대로 접어든 아이의 아버지가 된 지금, 나는 어렸을 때 내가 아버지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도전과 부담감을 체험하고 있다. 한때 아버지와 내가 벌였던 논쟁과 타협을 내 딸과 똑같이 되풀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씁쓸히 미소를 짓게 된다.

예전보다 지혜로워진 지금, 나는 아버지가 나를 이해 못하고 사사건건 간섭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 당시 나는 내게 어떤 위험이 닥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만큼 경험이 없었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상처가 생길 일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판단력도 부족했으며 내게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 와서야 아버지가 내 눈에 보이지 않던 것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려 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단지 자기 자식을 품에서 떠나보내야 하는 두려움을 떨쳐버리려는 가슴 아픈 노력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아버지는 가족을 부양할 책임이 있다. 때로는 가족들로부터 아무런 감사나 인정도 받지 못할지라도. 내 자신이 그런 책임, 그것도 하나밖에 없는 자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지금, 나는 아버지가 우리를 위해 했던 일들을 떠올리면 놀라울 뿐이다.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두 개의 직장을 마다하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 더 나은 직업을 얻기 위해 필요하다면 자신의 교육 수준을 능가하는 기술에도 도전했다. 또 자신을 위해 뭘 사기보다는 자식들을 먼저 챙겼다. 우리는 잘 먹었고 따뜻하게 입었으며 선물도 받고 휴가도 갔다. 아버지는 요즘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성인이 된 자식들까지 계속 도와준다. 한번은 내가 한밤중에 전화를 했더니 주저 없이 달려와 주었다.

우리 집 벽난로 위에는 어머니의 고등학교 때 사진과 내 딸아이의 사진이 많이 놓여있다. 그 사진들 틈에 아버지가 나를 무릎 위에 앉히고 양팔로 안고 있는 사진이 한 장 있다. 나는 가끔 내게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 때면 벽난로 앞에 서서 그 사진들을 바라본다. 이렇게 사랑이 많은 부모님과 이렇게 괜찮은 자식을 둔 나는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인가. 반항적이었던 젊은 날을 떠올리면 부모님께 특히 아버지께 용서를 구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분들은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바보 같은 짓 하지 말라고 할 것이다. 나는 늘 두 분께 무엇을 해드리면 좋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딸아이를 차에 태우고 아버지 집으로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어서 가서 어머니에게 입을 맞추고 현관 베란다에 앉아서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

나는 이제 한 아들로서 거쳐야 할 것을 다 거쳤다. 아버지를 숭배했던 시절도 있었고 못마땅하게 여겼던 적도 있었지만 다시 그분을 마음 깊이 존경한다. 최선을 다해 부모 노릇을 하고 있지만 난 항상 아버지로서의 능력에 회의를 느낀다. 10대가 된 딸아이가 나를 존경어린 눈으로 봐줄 날이 또다시 찾아올까? 아버지라는 역할은 한 남자가 겪을 수 있는 엄청난 도전이며 최고의 보상인 것 같다.

가끔씩 회의에 빠지다가도 아버지와 나의 관계를 돌아보면 내 딸과 나도 사랑이 가득한 멋진 관계를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된다. 나와 아버지도 그랬으니까. 나도 결국 아버지로서 내가 했던 일에 만족하게 될 것이다. 아버지가 그 방법을 가르쳐주었으니까. 그리고 언제나 좋은 아들이었다고 자신한다. 아버지가 그렇다고 말해주었으니까.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아들임이 자랑스럽습니다.

- <아들에게 아빠가 필요한 100가지 이유>(그레고리 E. 랭글 지음, 재닛 랭포드 모란 사진, 나무생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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