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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지 않는 아이
- 펄 벅

나의 딸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쓰겠다는 결심을 하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늘 아침 겨울 숲 속을 한 시간 남짓 걸어 다닌 끝에 마침내 이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결심을 하게 된 데에는 지난 몇 해 동안 나와 같은 정신지체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보내 준 여러 통의 편지가 있었다. 이런 아이를 갖게 된 슬픔을 어떻게 견뎌야 하겠냐는 내용의 편지였다.

슬픔을 인내하는 법은 혼자서 배워나갈 수밖에 없다. 참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억눌린 슬픔은 쓴뿌리처럼 삶에 박혀 사람을 병들고 우울하게 하는 열매를 맺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의 삶까지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는 것은 시작일 뿐, 슬픔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 슬픔을 받아들이면 그에 따르는 보상이 있다. 슬픔에는 어떤 마력이 있다. 슬픔은 지혜로 모양을 바꿀 수 있고, 지혜는 기쁨은 몰라도 행복은 줄 수 있다.

내 아이는 어린 시절 어느 시점부터 정신적으로 성장하지 않았고, 그래서 지금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수 있을 만큼 자랐지만 여전히 영원한 아이다. 내 아이가 영원히 어린 아이로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내 마음에서 터져 나온 말은 피할 수 없는 슬픔이 닥쳤을 때 사람들이 내지르는 해묵은 원망의 소리였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그러나 이 질문에는 아무런 해답이 있을 수 없었다. 마침내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무의미한 것에서 의미를 찾아내어, 나 스스로 만들어 낸 해답일지라도 해답을 얻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아이의 삶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면, 우리 힘으로 막아볼 수도, 치료할 수도 없는 장애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조금은 덜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 아이에게 배운 것이 정말 많다. 무엇보다도 인내를 배웠다. 예로부터 우리 집안 분위기는 어리석거나 느린 것을 참지 못하는 분위기였고, 나 또한 둔한 사람을 참지 못하는 성마른 기질을 받았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아이가 떨어진 것이다. 이 아이가 없었더라면 나는 나보다 못한 사람을 무시하는 오만한 태도를 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는 또 지능이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가르쳐 주었다. 아이는 놀라울 정도로 진실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거짓을 간파할 줄 알고 거짓은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아이는 정말로 순수하다. 어떤 아이가 울면 아이는 얼른 달려가서 왜 그런지 살핀다. 다른 아이를 괴롭히는 아이를 밀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지능이 낮은 아이들은 다른 좋은 성품과 함께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 부족한 부분을 벌충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내 아이에게서 보기 드문 음악적 재능을 발견했다. 비록 이 재능을 실현할 방법이 없다고 하더라도 헛되이 낭비하게 두지는 않겠다고 나는 결심했다. 충분히 발휘될 수 없을 지도 모르지만 아이의 조건 그 자체, 있는 그대로의 아이의 존재가 인류에 무언가 쓸모가 있어야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아니었다. 조금씩 생각이 자라난 것이지만 이 생각에 도달한 후 한 번도 그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차가운 세간의 관심을 피해 가며 조용히 이 결심을 위해 살아 왔다. 오늘, 이제, 내가 알게 모르게 두려워했던 사람들의 존재를 잊어버리려고 한다. 대신 여러 친절한 사람들을 생각할 것이다. 이들은 이 이야기를 글로 쓰겠다는 나의 결심을 이해해 주고 돕고자 할 것이다. 남의 사생활을 캐거나 험담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슬픔을 고소해 하는 사람은 아주 드문 반면 인정 많고 따뜻한 사람이 너무나 많다. 선한 마음은 타락한 세상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고 결국에는 악을 이겨낸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인간의 선한 마음만이 세상의 희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요즘 나는 정신지체아 부모 모임에서 부모들을 자주 만난다. 이 부모들은 위로와 의지가 절실히 필요해 이렇게들 모인다. 대부분은 젊은 부모들인데 이들을 만날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르겠다. 골고다 언덕을 향해 가는 그 길 한 걸음 한 걸음이 얼마나 힘겨운지 나는 잘 알고 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슬픔이 있다. 달랠 수 있는 슬픔과 달래지지 않는 슬픔이다. 달랠 수 있는 슬픔은 살면서 마음 속에 묻을 수 있는 슬픔이지만, 달랠 수 없는 슬픔은 삶을 바꾸어 놓으며 슬픔 그 자체가 삶이 되기도 한다. 사라지는 슬픔은 달랠 수 있지만 안고 살아가야 하는 슬픔은 영원히 달래지지 않는다.

내게도 슬픔을 감당하는 법을 익히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 방법을 깨달은 지금은 되돌아보면 내가 밟아 온 단계가 보인다. 삶의 기쁨은 모두 사라지고, 차라리 아이가 죽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얼마나 자주 울었던가! 모르는 사람은 이 말을 들으면 충격을 받겠지만 아는 사람은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 절망감에 더해 공포와 염려가 마음속을 떠나지 않는다. "내가 죽고 나면 누가 이 아이를 돌볼까?" 그러나 생명에는 인간이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깊이가 있었다.

언제부터 내가 변했는지,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끝나지 않는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면 얼굴만 보고 목소리만 들어도 구분해 낼 수가 있었다. 그렇다고 나와 같은 짐을 진 사람이 많다는 것 때문에 위안이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슬픔을 지고 살아가는 법을 배운 사람들을 보고 나도 그럴 수 있으리란 걸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그것이 변화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후로도 몇 번이고 다시 무너지고 수렁에 빠졌지만 결국 적응 과정이 시작되었다. 어느 순간 내 자신에게 말했다. "이것이 내 삶이니 어떻게든 살아야 해."

삶을 살아야 하므로, 삶에서 무엇이든 즐거움을 찾으려고 애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은 여전히 고통스럽게 느껴졌지만 다른 것들이 있었다. 가장 먼저 위안을 주었던 것은 책이었다. 그 다음은 꽃이었던 것 같다. 마침내 장미를 틈틈이 돌볼 여유가 생겼다. 그러면서 예전과 다름없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결국 변했던 것은 나일 뿐 주변의 것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 <자라지 않는 아이>(펄 벅, 양철북) 중에서

* 펄벅은 중국에서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딸 캐롤을 낳았고, 그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글쓰기에 열중하면서 마침내 소설 <대지>를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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