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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작아서 아름다운 아이
정이는 아이가 아니다. 벌써 서른하고도 한 살을 더 먹었으니 시집가서 자식을 낳았으면 엄마가 되었을 노처녀다. 항상 붙어 다니는 '다운증후군'이라는 꼬리표의 무게 때문일까. 손도, 발도, 가슴도, 키도 다 작다. 사람들이 지나가며 흘깃 본다. 이미 지나쳤는데 가던 길 멈추고 다시 돌아서서 작은 소리로 수군수군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온 날들은 오히려 희망을 싹 틔우고 사랑을 키워 가는 시간들이었다. 원망도, 슬픔도, 미움도 다 부질없는 것들임을 조금씩 깨우쳐준 것은 그 아이의 작은 몸에서 뿜어나는 세상을 향한 몸짓이었다. 작은 옹달샘의 물이 마르지 않듯이 끊임없이 도전하는 집념과 크고 깊은 생각은 부끄러움을 당당함으로 일어서게 했고 다소 늦을지언정 불가능은 없었다. 정이는 우리에게 천천히, 아주 느리게 사는 법을 일깨워주었다.

지금도 느닷없이 가슴이 답답해오고 숨이 막혀 터질 것 같은 심장부정맥이 나타나면 혼자 앰블런스를 타고 응급실로 가야 하는 우리 딸, 그 아이가 얼마나 더 우리 곁에서 지금처럼 해맑은 웃음을 웃어줄지 그건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토요일이면 야구장에 가서 다른 젊은이들 속에서 함께 소리 지르고 열광하며 힘껏 응원하는 모습은 아름답기만 하다. 독립해 혼자 살면서 자신이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독립은 어쩌면 그 아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인 우리가 그 아이로부터 떨어져나가는 연습을 하는 것이리라. 그 애는 언젠가 엄마 아빠가 먼저 죽으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감곡의 '숲 속 정이네 집' 마당 한 귀퉁이에 제비꽃이 피는 예쁜 무덤을 만들어 주겠노라고 했다. 살았을 때처럼 가까이 느끼며 살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어느 때는 우리보다 더 어른스러워 얼굴을 붉히게 한다.

어제 정이에게서 메일이 왔다. 통장 번호를 정확하게 적어 보내달라는 주문과 그 이유도 설명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부모님께 생활비를 드려야겠다는 것이다. 하긴 부모가 퇴직하고 시골에서 별 소득이 없으니 서른이 넘은 자식이 부모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겠지만 요즘처럼 멀쩡한 사람들도 취업하기 어려운 세상에... 얼마 되지 않은 월급에서 가장 높은 비율로 떼어놓던 후원금이 이제는 우리를 위한 생활비에 밀려나게 된 셈이다. 어떻게 번 돈인데. 차마 쓰지 못하고 소중하게 차곡차곡 모아두리라.

스물 여섯, 스물 아홉에 만나 33년을 넘게 살아 온 남편이 회갑을 맞았다. 이렇게 나이가 들도록 남편과 오랜 시간 함께 산다는 것은 은총이요,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수십 년을 똑같은 남편, 똑같은 아내와 산다는 것이 어쩌면 인내를 시험하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처럼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편안한 동지, 영원한 길동무를 이 세상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불가능한 일이다. 자기 자리를 지키고 배우자에게 헌신하기로 한 결혼 초의 약속을 평생 지키려고 애쓰며 사는 일은 때로 많은 희생을 필요로 한다. 우리처럼 장애아를 키우는 일에 남편과 마음이 안 맞아서 상처를 안고 힘들어하는 사람도 주위에 많이 있다. 욕심 없는 남편 덕에 장애아 하나만을 키우며 사는 일에 자유로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정이를 참으로 사랑하고 인정해 주는 심성 덕분에 마음 고생하는 일은 없었다. 큰 어려움이 있을 때 함께 목놓아 울었고 말없이 등 두들겨 주는 믿음직한 손이 있어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모처럼 회갑을 핑계 삼아 제주도 여행을 함께 가자고 말했더니, 속 깊은 정이는 직장 때문에 자기 자리를 비울 수 없다면서 우리 비행기표를 장만해 주었다. 하나뿐인 자식이 부모님 회갑에 자식 노릇하겠다는 뜻이었다. 그 순간 삼십년 쌓인 힘든 세월의 한이 봄눈 녹듯 한줄기 눈물로 주르르 넘쳤다. 작은 가슴 어디에 저렇게 큰 생각을 담아두는 곳이 숨어 있을까.

오래 전 누가 이 아이에게 사회생활을 못할 것이라고 했던가? 어른이 된다 해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했던가? 나는 그 때 속으로 확신했다. 이 아이가 반드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리라고. 어디서 오는 확신인지 모르지만 하나씩 작은 변화가 보일 때마다 그 희망의 싹을 틔우고 살았다. 천천히 자라는 모습을 보며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 단 한 번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이렇게 기쁜 날이 오리라는 믿음이 있었나 보다.

3박 4일 동안 내내 우리는 그 어떤 여행보다 행복했고 참으로 편안한 기분으로 딸이 보내 준 회갑여행을 즐겼다. '내 딸아, 이 세상에 네가 있어서 이렇게 충만한 기쁨이 있구나!'

오랜만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글 한 구절이 생각났다.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사람한테서 하늘 냄새를 맡아 본 일이 있는가. 스스로 하늘 냄새를 지닌 사람만이 그런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우리는 그 아이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살고 싶다.

- 『너무 작아서 아름다운 아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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