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1 경제포털
뉴스  ·  증권  ·  부동산  ·  금융  ·  자동차  ·  창업  ·  교육  ·  세무  ·  헬스  ·  BOOK  ·  블로그   
등록예정 2023년 5월 등록예정 도서요약
북다이제스트
        
아이디/패스워드 찾기
회원가입
INFO BOOK
기억 속,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여행
(홍경수 지음/샘터사/247쪽/9,500원)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나 늘 우리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던 아버지. 어려운 일을 겪고 어깨가 쳐져 있을 때 괜찮다며 툭툭 어깨를 두드려 주었던 아버지. 힘들고 지친 일상 속에서도 자식들 앞에서는 내색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셨던 우리 시대의 아버지. 박동규 교수가 기억하는 아버지 박목월 또한 우리네 아버지와 다르지 않다.

아버지는 청년 시절, 누구보다 간절히 대학에 가고 싶어 하셨다. 그러나 문학을 배우려 대학에 가겠다는 아버지를 할아버지께서는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반대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돈을 벌기 위해 은행에 취직했다. 그랬으니 은행 업무를 제대로 처리했을 리 만무했다.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반복되는 출, 퇴근 속에서 늘상 먼 산을 바라보며 시를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계산 착오로 손님에게 너무 많은 돈을 거슬러 줘버렸다. 그것은 아주 큰 사건이었고 아버지는 그 뒤 3년 간 월급의 3분의 2를 은행에 돌려줘야 했다.

떠나고 싶은 바람과 떠날 수 있다고 믿기에 견딜 수 있는 하루를 살았던 그날의 청년은 한 발 딛고 또 한 발 내딛어 향할 수밖에 없는 그 길 위에서 정처 없이 머무르며, 그 길 위에서 뜨고 지는 태양을 맞이하며 세월을 보냈다.

아버지께서 연필을 깎기 시작하면 그것은 곧 시를 쓴다는 신호였다. 아버지께서 시를 쓰기 시작하면, 한밤에 우리집은 비상이 걸린다. 산문은 만년필로 쓰셨지만, 유독 시를 쓰실 때만큼은 연필을 사용하셨다. 연필을 깎는 것을 마음의 심지를 깎는 일인 양 참 정성을 기울이셨다. 시를 쓰기 위해 연필을 깎는 소리가 들려 올 때면, 우린 조용히 입을 다물었고 아버지는 시를 쓰시며 웅얼웅얼거리셨다. 시를 완성하시면 주무시는 어머니를 깨워서라도 창작한 시를 나직한 목소리로 낭송해 들려주셨다. <가정>이라는 시도 그렇게 탄생했다.

"지상에는 / 아홉 켤레의 신발. / 아니 현관에는 /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 알 전등이 켜질 무렵을 / 문수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 ....내 신발은 / 십구문반 /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 그들 옆에 벗으면 / 육문삼의 코가 납작한 / 귀염둥아 귀염둥아 / 우리 막내둥아 / ....아랫목에 모인 /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 강아지 같은 것들아, /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 내가 왔다. / 아버지가 왔다. / 아니 십구문반의 신발이 왔다. / 아니 지상에는 /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 존재한다. / 미소하는 / 내 얼굴을 보아라."

지금도 그 시를 읽으면, 글자는 아니 보이고 눈물만 흐른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그로부터 20년 후, 어머니께서도 아버지의 뒤를 따르셨다. 살아생전 어머니께서 병상에 누워 계실 때, 나는 여쭌 적이 있다.

"어머니, 살아오면서 언제가 가장 기쁘셨어요?"

그러자 어머니는 아들이 대학 들어갔을 때도, 딸이 태어났을 때도 아닌, 예전 어머니가 대수술을 받았던 때였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갑상선이 나쁘셨던 어머니는 피할 수 없이 수술을 받으셔야 했다. 당시만 해도 목 수술을 한다는 것은 생명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수술이었다. 어머니께서는 미리 유서를 써 놓으셨고, 7시간이나 걸리는 큰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실로 들어가셨다.

아버지는 회복실 문 앞에서 꼬박 서 계셨다. 꽤 오랜 시간 동안의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중환자실로 옮겨진 어머니께서 마취에서 깨어나 처음으로 본 광경은 회복실 유리창 너머로 초조하게 서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애태우며, 아내가 깨어나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남편 박목월이었다고 하셨다.

아내의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괴로웠으면 손에 들고 있던 장미 줄기가 부러지고, 그것도 모자라 손에서 가시와 함께 짓이겨졌을까. 그렇게 7시간을 꼬박 서 계셨던 아버지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고 어머니는 종종 회상했다. "너희 아버지, 장미 한 송이를 들고서 오로지 아내가 눈뜨기를 기다리더라"는 어머니의 얘기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어머니에게도 나를 비롯한 자식들에게도 항상 부족함이 없는 분이셨다. 내겐 어디를 가나 박동규보다는 박목월의 아들이란 수식어가 먼저 따라붙는다. 그럴 때마다 돌아가셨어도 아들의 뒤를 든든하게 지켜주고 계시는 아버지가 참 자랑스러워진다. 난 아버지의 넓은 우산 아래서 긍지를 가지고 오늘을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낭독의 발견』중에서
번호 | 제목 | 날짜
77 끊어지지 않는 가족 결속력을 위한 우리가족 프렌즈 2005년 05월 25일
76 큰아들 켑 이야기 2005년 05월 11일
75 말 한 마디가 상처를 씻는다 2005년 03월 23일
74 기억 속,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여행 2005년 02월 24일
73 여보! 나, 뱀에 물렸어! 2005년 02월 02일
72 겨울 나무, 나의 자세 2004년 12월 29일
71 나는 세상에서 ~가 제일 좋아 2004년 11월 29일
70 아버지, 제가 어떤 아이가 되기를 바라셨어요? 2005년 04월 17일
69 혹시 모르니까 2005년 04월 17일
68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가 2005년 04월 17일
단체회원가입안내
독서퀴즈이벤트
나도작가 신청안내
무료체험
1분독서영상
한국독서능력검정 신청
모바일 북다이제스트 이용안내

인재채용 | 광고안내 | 구독신청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용약관 | 서비스문의 이용문의:mkmaster@mk.co.kr
회원문의:usrmaster@mk.co.kr
매경닷컴은 회원의 허락없이 개인정보를 수집, 공개, 유출을 하지 않으며 회원정보의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