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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분석의 힘
『이건희』(홍하상 지음/한국경제신문) 중에서

한국에 무역상사제도의 도입을 권유한 사람은 일본인 세지마 류조다. 세지마 류조(1911∼)는 일본 도야마 현 출생으로 육사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군의 과달카날(남태평양 솔로몬의 주도) 철수작전 때 주임참모를 지냈다. 관동군 사령부에서도 주임참모로 근무했고, 대본영에서는 육·해군 참모를 겸임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하자 관동군 참모였던 그는 전범으로 소련군에 의해 체포되어 시베리아에 억류, 포로수용소에서 11년 간 강제노동을 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1956년, 11년 간의 포로 생활 끝에 석방된 그는 귀국한 후 1958년 군소 섬유업체였던 이토추에 입사했다. 그는 업무부장을 시작으로 부사장과 부회장을 거쳐 1978년에는 회장에까지 취임한 인물이다.

세지마는 바로 그 대본영 참모본부 작전과장과 관동군 참모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이토추상사에 참모조직이라는 것을 도입했다. 그리고 그 자신이 전무, 부사장 시절에 참모조직의 책임자로서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활용함으로써 회사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세지마는 1967년 5월, 시리아가 요르단 강 상류를 막자 그 물로 먹고 살던 이스라엘의 급습으로 시작된 중동전쟁이 6일만에 끝날 것이라고 예측했고 그의 예측은 정확히 맞았다.

이스라엘은 물사정이 좋지 않아 전쟁에서 6일 이상 버티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시 이스라엘은 서쪽으로는 이집트, 북쪽으로는 시리아, 동쪽으로는 요르단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말하자면 아랍권에 포위된 섬과 같은 국가였다.

물의 공급이 지연되면 지연될수록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전국민이 고사(枯死)당할 판이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과 전쟁을 치르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속전속결이었다. 속전속결로 전쟁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장기화되면 물사정 때문에 스스로 백기를 들어야 할 판이었다. 결국 이스라엘은 단 6일 만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만 한다는 절체절명의 지상목표를 세워야만 했다. 아랍권의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은 강력한 동맹을 맺어 지구상에서 유대인 국가를 멸망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전쟁이 시작되면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이 합동해서 전투기와 폭격기로 공습한 후 삼면에서 탱크 부대를 앞세워 자신들의 국경을 압박해올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6일 만에 전쟁을 끝내려면 선제공격을 통해 적의 주력인 비행기와 탱크를 무력화시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6월 5일 새벽, 이스라엘 공군기 300대는 상대의 레이더망에 잡히지 않도록 저공비행함으로써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의 비행장들을 급습했다. 6월 5일 하루 동안 맹포격이 실시되었다. 300대에 이르는 이집트의 공군기가 파괴되었고, 요르단과 시리아도 각각 100대의 전투기를 잃었다. 이 날의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겨우 17대의 전투기를 잃었다. 아랍의 공군은 궤멸됐다.

개전 24시간이 지난 6월 6일 새벽, 제공권은 완전히 이스라엘로 넘어갔다. 6월 7일과 8일에는 아랍의 탱크를 투입했고, 아랍은 1,000여 대의 탱크를 내세웠다. 쌍방의 1,800대에 이르는 탱크는 사정 거리내에서 포격을 교환했다. 이틀 간의 탱크전 끝에 아랍군이 사용하던 수백 대의 소련제 탱크가 궤멸됐다. 제공권을 장악한 이스라엘은 전투기로 아랍의 탱크를 맹포격했다. 이 날의 전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사막 탱크전이었다.

6월 5일 시작된 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은 6월 9일까지 닷새 동안 선제 공격을 퍼부었다. 결국 6일째 되던 6월 10일, 아랍동맹국은 손을 들었고 휴전이 선언되었다. 단 6일 만에 이스라엘은 아랍의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3개국을 맞아 압승했다. 세지마의 예측은 그 후로도 줄곧 적중되었다.

1970년대 초에는 중국이 베트남을 침공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3개월 후에 그의 예측대로 중국은 베트남을 침공했다. 이는 오랫동안 정보 분야에서 일해온 그가 다양한 국제적인 첩보를 바탕으로 내린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이러한 그의 예측은 이토추의 영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 결과 일개 섬유업체에 불과했던 이토추는 일본 랭킹 1위의 무역상사로까지 발전했다. 그 또한 회장으로 승진했다.

세지마가 이토추의 참모총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된 데에는 이 같은 배경이 있었다. 그는 각종 첩보를 수집해 정보를 생산해내는 뛰어난 능력이 있었다. 또 그 정보를 토대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뛰어난 판단력을 가지고 있었다.

무역상사에서 정보의 유무는 이익과 직결되어 있다. 기업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기로에서 정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어느 해인가, 일본의 한 무역상사의 원목 담당자는 러시아의 농산물 작황이 나쁠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했다. 비록 간단한 첩보였지만 그는 이 정보가 자신의 무역상사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분석했다.

"농산물 작황이 나쁘다 - 그렇다면 외국에서 곡물을 수입해야 한다 - 하지만 러시아에는 달러가 없다 - 정부가 가지고 있는 금을 매각할 것이다 - 러시아의 금 매각으로 국제 금시장의 공급과잉이 초래될 것이다 - 이에 따라 국제 금가격이 하락한다 - 소련 정보는 싼값에 금을 팔아야 하므로 금 매각을 통한 자금조달 방안의 재검토에 들어간다 - 대체방법으로 원목 매각에 나선다 - 이번에는 국제 원목값이 하락한다 - 따라서 일본 무역상사가 보유하고 있는 원목은 국제 원목값이 하락하기 전에 조기 매각해야 한다."

이것이 그의 추리였다.

그는 이 같은 체계적인 추리를 통해 러시아가 원목을 대량을 내다 팔기 전에 자사 보유의 원목을 국제시장에 미리 매각함으로써 제값을 받을 수 있었다.

이것이 정보의 힘이다. 단순한 첩보가 분석과 추리를 통해 정보가 된다. 정보의 힘은 한 기업을 살렸다 죽였다 하는 것이다. 무역은 총칼 없는 전쟁이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정보가 필요한 것이다.

『이건희』(홍하상 지음/한국경제신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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