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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란 무엇인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빠르게 하락하면서 취임 후 최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미흡한 대처, 소통 부족, 원활치 않은 국정 운영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이 제기되었다. 그동안 지지율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여 왔던 박 대통령으로서는 이러한 지지율 하락이 여간 고통스럽지 않을 것이다. 크고 작은 조직을 막론하고 리더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주어진 상황에서 서로 이해가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입장을 고려하여 최적의 해답을 찾아야만 하기 때문에 리더의 길은 참으로 험난하기만 하다. 하물며 한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 그 어려움을 보통 사람들이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만 명의 사람이 있으면 만 개의 세상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최근 김진명의 대하역사소설 『고구려』를 읽으면서 한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그야말로 지난(至難)한 일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 책은 고구려의 역사상 가장 극적인 시대 중 하나로 꼽히는 미천왕과 고국원왕 시대를 다루고 있다. 우리들 대다수는 국사 교육을 통해 미천왕은 4백 년간 지속되어온 한사군을 몰아낸 탁월한 군주로, 반면에 고국원왕은 백제와의 전투에서 전사한 나약한 군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 과연 어떤 군주가 진정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현명한 군주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고구려 15대 태왕인 미천왕 을불은 숙부인 봉상왕의 핍박을 받아 갖은 고생을 하다 신하들의 도움을 얻어 마침내 왕위에 오른다. 미천왕은 한사군을 몰아내는 것을 필생의 과업으로 선포하고 국력을 키워, 즉위한 지 15년 만에 한사군을 축출한다. 그에게는 두 왕자가 있었는데, 첫째인 사유는 나약하고 의지도 굳지 못한 반면 둘째인 무는 을불을 닮아 총명하고 용맹하여 대소 신료와 왕후 그리고 백성들도 모두 무 왕자가 다음 왕위를 잇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을불은 뜻밖에도 사유를 태자로 세운다. 을불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며 반발하는 사람들에게 을불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처음에는 나 역시 여러분과 같이 무를 태자로 세우리라 생각했었소. 그런데 언젠가 왕자들을 데리고 변방의 좌물촌에 간 적이 있소. 좌물촌 고을의 장정들은 모두 용맹하여 전장에서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었소. 그러다 보니 온 마을이 장애인들로 가득했소. 그 마을에서 무는 젊은이들을 모아 놓고 끝없이 전쟁 이야기를 하고 있었소. 그런데 사유는 자식 잃은 노파를 어머니라 부르고 팔다리 떨어져 나간 불구자들을 눈물로 위로해 주었소. 백성이란 무엇이오? 군주란 또 무엇이오? 전쟁에 이기면 왕실과 조정은 부유해지지만 싸우면 싸울수록 백성은 목숨을 잃고 불구가 되지 않소? 나는 그때 확신하게 되었소. 항상 전쟁에 이기고 그리하여 모든 백성들을 싸움터로 몰아내는 용맹한 군주에 비해, 백성을 전쟁에 끌어들이지 않기 위해 애쓰는 옹졸한 군주가 결코 못하지 않다는 걸 말이오. 무가 내 뒤를 잇는다면 고구려의 장정들은 끊임없이 전쟁터로 나가 목숨을 잃고 팔다리를 잃을 거요. 군주는 백성의 희생을 바탕으로 자신의 영광을 이루는 자가 되어서는 아니 되오.”

왕후와 대소 신료들 모두 태왕의 깊은 뜻에 감읍한다. 그 후 선비족인 모용부의 대군이 고구려를 침공하자 을불은 전장에서 직접 태왕의 깃발을 들고 병사들을 격려하여 승리를 거둔 것을 확인한 뒤 두 아들의 품에서 눈을 감는다. 을불의 뒤를 이어 고구려의 16대 태왕이 된 고국원왕 사유는 아버지와는 달리 어떻게든 전쟁을 피함으로써 천하를 행복하게 하려고 한다. 사유는 선비족의 모용황이 고구려의 곡창지대를 불태워도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하고, 어머니인 태후가 계책을 써서 화공(火攻)으로 모용부를 거의 궤멸 직전까지 몰아붙인 상황에서도 오히려 모용황에게 사죄하고 화친을 청해 그를 돌려보낸다. 수년 후 모용황이 다시 고구려를 침공하자 사유는 모든 장수들에게 일체 맞서 싸우지 말고 물러서라는 명을 내린다. 그러나 국상(고구려 최고 관직)이 사유의 명을 도저히 받들 수 없다며 사유를 유폐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러자 고구려의 중신과 장수들은 군사를 모아 나라의 존망을 건 결전을 준비한다. 그런데 갑자기 사유가 나타나 모용황에게 항복을 청하고 태후와 왕후, 그리고 선왕인 을불의 유체마저 모용부에 인도하는 굴욕을 감내한다.

이후 한동안 평화가 유지되었으나 이번에는 백제가 백제에서 망명한 마굿간지기를 내놓으라며 고구려를 침공한다. 조정대신들은 모두 마굿간지기를 백제로 보내야 한다고 주청하지만 사유는 끝내 윤허하지 않는다. 신하들은 과거 모용부에 태후와 왕후, 그리고 선왕의 유체마저 주저하지 않고 인도했던 태왕이 하찮은 백성 한 명을 지키기 위해 국가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며 사유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사유는 태후와 왕후, 그리고 선왕의 유체를 보낸 것은 백성을 지키기 위함이었는데 이제 백성을 내어준다면 그것은 무엇을 위함이냐며 끝까지 허락하지 않는다. 신하들은 결국 태왕 몰래 마굿간지기를 백제로 압송한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안 사유는 그 백성을 되찾기 위해 백제와 전쟁을 선포하고 홀로 말을 타고 백제 진영을 향해 돌진하다 화살을 맞고 전사한다. 태왕이 백성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던지는 것을 본 고구려군사들은 죽기를 각오한다. 백제왕 부여구는 결코 이기기 쉽지 않은 싸움이고 이겨도 얻을 것이 없는 싸움이라며 철군을 결심한다. 부여구는 회군하는 길에 고구려 땅에 살고 있는 백제유민들을 백제로 데려가려 했으나 백성들은 부여구에게 돌팔매질을 하며 사유만이 진정한 자신들의 왕이라며 울부짖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군왕과 위정자들이 백성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전쟁을 일으키고 대 역사(役事)를 벌여왔다. 그러나 대개는 백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 유지를 위한 것이었다. 오늘날도 위정자들은 입만 열면 국민을 위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다면 고국원왕처럼 목숨을 바칠 각오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이익과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오만을 버릴 마음은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야 한다.

- 최종옥, 북코스모스 대표
(김진명 지음 / 새움 / 334쪽 / 12,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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