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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기업문화
최근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을 두고 사건의 당사자인 조현아 부사장과 대한항공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다. 물론 이 사건의 발단인 조현아 부사장의 행동은 어떤 설명으로도 이해하기 어렵고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 사건을 단순히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냉철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사건에 등장하는 인물은 3명이다. 땅콩을 봉지째 서비스한 승무원을 지적하고 기장에게 회항하라고 지시한 조현아 부사장, 상사인 부사장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한 기장, 그리고 리턴한 비행기에서 내린 사무장. 언론과 대다수 사람들은 이 세 명 중 가장 비난을 받아야 할 사람으로 조현아 부사장을 지목하고 ‘갑질’, ‘재벌 3세의 무분별한 횡포’ 등을 운운하며 강하게 질타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가장 비난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기장이 아닐까 싶다. 더 나아가 이러한 사태는 근본적으로 대한항공을 비롯한 소위 대기업의 경직된 기업문화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 운항기술 기준’ 및 항공법에 따르면 기장은 비행기 문이 닫힌 시점부터 탑승 중인 모든 승무원, 승객 또는 화물의 안전에 대한 책임을 갖는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기장은 부사장이 아니라 세상 그 누가 어떤 명령을 하더라도 자신의 판단에 따라 최대한 승객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행동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장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부사장의 지시에 따라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향하던 항공기를 되돌려 램프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그렇다면 기장은 왜 조부사장의 지시에 대해 강력하게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상명하복이 철칙처럼 여겨지고 있는 대기업의 기업문화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말콤 글래드웰은 그의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1997년 탑승객 288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한항공 801편의 괌 추락 사건의 원인이 ‘경직된 커뮤니케이션 문화’와 ‘상사의 기분을 해치지 않으려는 완곡어법과 태도’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권력 간격 지수’는 특정 문화가 위계질서와 권위를 얼마나 존중하는지 나타내는데 대한항공 801편의 사고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비행기 기체에 이상이 있음을 발견한 부기장이 이를 기장에게 제대로 알리지 못해 어이없게 사고가 났던 것이다. 부기장이 상사인 기장에게 명확하게 ‘노(No)’라고 말했어야 하는 상황에서 부기장은 권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를 기장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던 것이다.

기업문화가 이처럼 경직되게 된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을까. 물론 가장 큰 책임은 기업의 최고경영자에게 있다. 조직 전체에 자유로운 의견 개진과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최고경영자가 열린 마음을 갖고 그러한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기업의 구성원들 또한 자신이 맡은 분야에 대한 책임감과 정확한 업무 지식을 토대로 자신의 의견을 기탄없이 펼쳐야 한다. 설령 상사가 잘못된 판단을 내릴 경우 사표를 쓰는 한이 있더라도 잘못을 지적해야 한다. 물론 몇 번 이야기해봤지만 무시되거나 불만분자로 낙인이 찍혀 이런저런 불이익을 당한 경험이 있다 보니 자연스레 입을 닫고 상사의 말에 무조건 수긍하고, 지시에 복종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사들 중에는 자신의 결정에 대해 아랫사람이 무조건 ‘Yes’ 하기보다는 솔직하게 의견을 말해주기를 기대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 역시 15년 전 대한항공에 근무한 적이 있다. 당시 우리 부서에서 추진하고 있던 프로젝트에 대해 부서장과 담당 임원이 조양호 회장의 결재를 받기 위해 회장실에 올라갔다. 잠시 후 회장 비서실에서 나를 호출했다. 올라가 보니 담당 임원과 부장의 보고를 받은 회장이 역정을 내며 프로젝트 관련 상대 파트너가 제시한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당장 파트너를 교체하라고 소리쳤다. 회장의 역정에 담당 임원과 부장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묵묵부답이었다. 당시 차장이었던 나 또한, 회사생활 12년 만에 처음으로 회장 앞에서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니 속으로 무척 떨렸다. 하지만 차분하게 앞뒤 상황을 설명하고 지금 파트너를 바꾸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 지적했다. 회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그러면 원래대로 진행하라고 말하며 담당 임원에게 그런 사정을 왜 사전에 이야기하지 않았냐고 질책했다.

사실 직장생활에서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상사 또는 오너 일가의 지시에 대해 입바른 소리를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예로부터 기개 있는 선비들은 목숨을 걸고 왕에게 충언과 직언을 아끼지 않았고, 그들의 이름은 오랫동안 우리의 사표(師表)로 기억되고 있다. 가정이지만 만일 조부사장의 회항 지시를 받은 기장이 이는 항공법을 위반하는 행위임을 조부사장에게 주지시키고 절대로 지시에 따를 수 없다고 했다면 결과가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항공기는 예정대로 이륙해 제시간에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것이고, 언론의 주목을 받을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로 인해 해당 기장은 부사장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하여 징계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기장은 적어도 기장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을 다했다는 긍지를 가질 수 있을 것이고, 진정한 기장으로서 동료들에게 기억되고 자녀들에게도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조부사장은 당시 기장이 기장으로서 책임을 다해 자신을 말려주지 않은 것을 못내 아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의 지시를 거역한 기장에 대해 조부사장은 그 자리에서는 화를 냈겠지만 한국에 돌아와서는 기장에게 징계 대신 오히려 고마워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부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 기업들이 이제부터라도 열린 기업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이를 위해 최고경영자는 열린 마음으로 직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직원들 또한 자신의 업무에 긍지와 책임감을 가지고 상사에게 할 말은 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 최종옥, 북코스모스 대표

『아웃라이어』
(말콤 글래드웰 지음 / 김영사 / 352쪽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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