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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한동안 장관들의 인사청문회를 놓고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논문 대필, 음주운전, 투기 의혹 등 각종 비리들에 이어 비리를 은폐하기 위한 증언들이 명백한 증거에 의해 거짓으로 드러나며 후보자들의 도덕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국민들은 소위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이러한 비도덕적 행태에 대해 실망했고 한편에서는 고위 공직자의 도덕성이 우선이냐 능력이 우선이냐를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과연 지도자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장준하 선생의 견해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사상계》 권두언에 5·18 혁명을 인정하는 듯한 글을 보고 갓 입사한 박현도가 그 이유를 묻자 장준하는 차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왜놈들이 우리나라를 침략해서 식민지로 지배한 것을 놓고 왜 그런 짓을 했느냐고 비난해봐야 우리만 바보가 되는 것 아닌가? 그런 짓을 하지 못하도록 했어야 했지. 이번 군사반란도 똑같은 경우라고 생각하네. 군인들에게 왜 이런 짓을 했느냐고 욕해봐야 우리 입만 아프단 말이지. 애초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했어야 했던 거지. 하지만 박군, 과거에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살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단정하는 것은 옳지 않네. 역사적으로 보아도 과거에 많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나중에 훌륭한 인물로 변신한 예도 있으니까. 거미줄처럼 가늘고 희미하지만 희망을 가져보세.”

“하지만 선생님! 박정희는 민족 반역자이고 해방과 함께 반드시 처단되었어야 할 인물입니다.”

“그런 자가 이 땅에 어디 박정희 하나뿐인가? 그동안 이 나라를 좌지우지해왔던 자들이 친일파였다는 건 모두 다 아는 사실 아닌가? 다만 정도의 문제일 뿐이지. 내 자네에게 한 가지 물어봄세. 만일 대통령 후보로 다음 세 사람이 있다면 자넨 누굴 찍겠나? 첫 번째 후보는 점쟁이와 의논하는 걸 좋아하며 남몰래 숨겨놓은 애첩이 두 명이나 있는 데다가 줄담배까지 피워대고 하루에 마티니를 열 잔이나 마셔대는 사람이고, 두 번째 후보는 무능과 부패로 공직에서 두 번이나 쫓겨난 경력이 있고 대학 때는 마약을 하기도 한 데다가 낮 열두 시까지 늦잠을 자기 일쑤이고 매일 밤 위스키를 열 잔씩이나 마시는 사람이네. 세 번째 후보는 훈장을 받은 전쟁 영웅에 채식주의자로 담배는 전혀 하지 않고 술은 가끔 맥주 정도만 한 잔쯤 마시고 혼외정사에 대해선 상상도 못 하는 사람이네. 이들 중 누굴 뽑겠나?”

“그야 당연히 세 번째 후보죠.”

“놀라지 말게. 첫 번째 후보는 프랭클린 루즈벨트였네. 두 번째 후보는 윈스턴 처칠이었고. 그럼 세 번째 후보는 누구였을 것 같나? 바로 아돌프 히틀러였다네. 믿겨지나? 한 나라의 지도자를 뽑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겉만 보고 하는 우리의 판단이 얼마나 잘못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예라네.”

“무척 혼란스럽네요, 선생님. 그러면 지도자의 덕목에서 도덕성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건가요?”

“지도자를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은 ‘성과’라는 것이 역사적 현실이라네. 지도자가 물러난 후 그 사람으로 인해 국민의 삶이 더 나아졌느냐 아니면 나빠졌느냐를 따지지, 그 사람이 도덕적으로 훌륭했는가 하는 건 별로 문제 삼지 않아. 말할 수 없이 부도덕한 일을 저지른 사람들 중에서도 최고의 지도자로 추앙받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능력만 있으면 되고 도덕성은 필요 없다는 말씀입니까? 지도자에게는 일반 국민보다 더 엄격한 도덕적 자질이 필요하고, 그런 자질을 갖추었으니까 지도자가 된 것 아닌가요?”

“그건 산타할아버지를 믿고 싶은 어린애들의 순진한 믿음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 어느 분야에서건 지저분해지지 않고선 리더가 된다는 게 헛된 꿈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모였다는 임시정부나 광복군 조직에서도 권력 다툼은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었지. 내가 왜놈 학도병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해 천신만고 끝에 임시정부에 도착했을 때 그 감격이 얼마나 컸겠나? 그런데 그런 감격이 불과 며칠 만에 허탈과 분노로 바뀌더구만. 내 오죽 답답하고 속상했으면 임정 청사에 폭탄을 던지고 싶다고 했겠나. 지도자를 뽑을 때 도덕성 운운하는 것은 다 부질없는 짓이야. 있을 수 없는 일을 바라는 거지. 남을 먼저 배려하고 자신의 영달보다는 국가와 국민을 우선하는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올라선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 라이벌을 헐뜯을 줄도 알고, 거짓말도 잘하고, 자신의 신념과는 정반대의 일도 거리낌 없이 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 정치지도자의 자질이지. 이런 사실을 인정한다면 지도자를 고를 때 도덕성보다는 능력을 보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 될 가능성이 높을 거야.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법. 그저 박정희가 루즈벨트나 처칠 같은 사람이길 바랄 뿐이고 그렇지 않으면 박정희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비판하고, 도울 일이 있으면 도와주는 것이 옳은 일일 것 같네. 이제 지켜보세. 본인이 민족에게 저지른 죄를 사죄하는 뜻에서 국민을 섬기고 국가 발전을 위해 헌신한다면 우리도 지난 일은 다 잊고 도와주어야 할 것이네. 하지만 국민을 우습게 알고 제멋대로 하려 든다면 그땐 싸워야지.”

나는 장준하 선생의 말이 다분히 현실적이라고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제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을 해본다. 장준하 선생이 살던 40년 전과는 달리 이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도자가 권력이나 총칼로 국민들을 찍어 누를 수도 없고 조그만 거짓이나 비도덕적 행위도 금세 만천하에 드러나는 투명한 세상이 되었으며 국민들이 지도자들에게 기대하는 도덕적 수준도 높다. 그리고 오늘날 성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치이며 가치는 그 사람의 도덕성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부디 우리의 지도자들이 국민들의 이러한 기대에 부응해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최종옥, 북코스모스 대표

『사월의 바람』
(박종현 지음 / 미다스북스 / 432쪽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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