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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입장이 된다는 것
최근 한 TV 드라마에서 건설업체 대표가 물리력을 동원하여 재개발지역을 강제철거하면서 “우리나라 인구가 500만, 다시 말해 일반 서민들은 모두 없어지고 상위 10%만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섬뜩한 장면을 본 적이 있다(물론 드라마니까 그랬겠지만). 다수의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사람들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정상인과 장애인, 외국인과 내국인, 피부색 등 다양한 기준들에 의해 서로를 구분 짓고, 상대를 차별하고 무시한다. 그리고 서로가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이해관계가 충돌하다보면 크고 작은 다툼과 갈등, 그로 인한 분열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는 몇 명 되지 않는 조직이나 가정 내에서조차도 다툼과 갈등은 다반사다.

아마도 이러한 분열과 갈등은 그 저변에 너와 나, 그리고 자신과 다른 존재, 즉 타자(他者)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선현들은 부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도록 역지사지(易地思之), Put yourself in other’s shoes 등을 당부해왔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너와 나가 아니라 하나로 결합된 ‘우리’를 생각할 때 우리는 분열과 갈등을 극복하고 화합과 평화의 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상대방의 입장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아무리 선하고 성스러운 인물이라 할지라도 진실로 타자가 되어 그가 처한 입장이 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실행에 옮김으로써 철저한 타자가 되어 너와 나가 아니라 모두가 ‘우리’임을 온몸으로 체험한 인물이 있다. 『블랙 라이크 미』의 주인공이자 저자인 존 하워드 그리핀이다.

그는 흑인이 되었다. 피부과전문의의 협조를 받아, 색소 변화를 일으키는 약을 먹고 강한 자외선에 온몸을 쪼였다. 이 과정에서 심한 고통을 겪었지만 그는 마침내 ‘해냈다.’ 마지막 마무리로 머리를 삭발하자 정말 중년의 중후한 흑인이 되었다. 그러나 막상 거울을 들여다본 순간 그는 예상치 못했던 반감을 느꼈다. 그가 거울 속에서 본 것은 웬 낯선 남자의 얼굴이었다. 대머리에 인상이 사나운 시커먼 흑인이 거울 속에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랫동안 머리로 합리화시켜온 감정적 편견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랬다. 거울 속의 낯선 사람은 다름 아닌 ‘타자’였다. 이는 모든 문화가 자기와 다른 문화의 얼굴 위에 덧씌우는, 틀에 박힌 사고방식의 무서운 가면이었다.

“그 후 나는 극단적인 차별에 노출되었고, 때로는 인종차별의 노골적인 ‘증오의 시선’을 받아야 했다. 인종차별이 개인의 자질이나 특성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피부색을 근거로 한 것임이 입증된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분명한 진실이 있다. 깊은 본질에서 보았을 때 인간성은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본질적으로 다른 인간 종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우리의 반응 태도를 볼 수만 있다면 우리는 차별이 얼마나 불공평하고 모순덩어리인지, 모든 편견이 얼마나 비극적이고 비인간적인 행위인지 깨달을 것이다.

나는 흑인으로 살면서 과거의 묵은 상처가 치유되고 모든 감정적 편견이 깨끗이 씻겨나간 것을 깨닫고는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7주간 흑인 가정에 머무는 동안, 39년을 살아오면서 머리로만 알던 것을 난생 처음으로 감정적인 차원에서 경험했기 때문이다. 가족 안에서 모든 인간은 사랑하고, 아파하고, 자신과 자기 아이들을 위한 인간적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그저 존재하고, 필연적으로 죽는, 이 모든 동일한 근본 문제에 똑같이 부딪힌다. 오랫동안 내 안에 들어 있던 감정의 찌꺼기들, 편견, 부정, 수치심, 죄의식은 ‘타자’가 결코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모두 씻겨 나갔다.

실제로 우리와 그들, 나와 너라는 이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보편적인 ‘우리’만이 있을 뿐이다. 연민을 느끼고 모두를 위한 평등한 정의를 추구할 줄 아는 능력으로 한데 결합된 인간 가족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무고한 사람이 고생하는 것을 보고 어떻게 인권 옹호자가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처럼 검은’ 사람이란 바로 우리와 같은 인간을 의미한다. 문화의 감옥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는 오로지 이것뿐이다.”


용산 참사에 이어 최근 화물연대 파업과 민주노총의 죽창시위 논란, 외국인 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에 대한 차가운 시선 등 아직도 우리사회에는 갈등과 분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인종차별이 가장 극렬했던 1950~60년대 흑인이 된 백인 존 하워드 그리핀을 통해 우리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조금이라도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는 마음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 『블랙 라이크 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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