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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과 경계를 통한 이해
과학문명의 발달과 함께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세계화로 인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이와 함께 우리는 수많은 문제들에 직면하고 때로는 가치관에 혼란을 느끼며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부의 창출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평가되고 있는 자본주의는 인류에게 풍요를 안겨주었지만 한편으로 극심한 빈부 격차와 환경 파괴 등 수많은 문제들을 초래했다. 특히 탐욕에 눈이 멀어 위험천만한 금융상품을 개발하고 마치 폭탄 돌리기 게임을 하듯 이러한 상품들을 팔아넘김으로써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사건은 자본주의의 취약성과 비윤리적 행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로 인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윤리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또한 최근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유전자 공학에 힘입어 이제 인간은 그동안 자연이나 신의 영역으로 간주되어 왔던 유전자 구성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시도들을 하고 있다. 난자와 정자가 상품으로 거래되고, 아이가 보다 우수하고 경쟁력 있는 재능을 갖고 태어날 수 있도록 부모들은 아이를 유전적으로 디자인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행위들은 윤리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인가. 우리의 선택과 판단을 요하는 이 수많은 문제들에 대하여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까?

프랑스의 좌파적 자유주의자인 앙드레 콩트-스퐁빌은 그의 저서 『자본주의는 윤리적인가?』에서 차원과 경계의 개념을 통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올바르게 접근할 수 있는 사고의 틀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첫 번째 차원인 경제학-기술-과학적 차원은 실현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또는 진리일 수 있는 것과 진리일 수 없는 것의 대립으로 내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하지만 경제학-기술-과학적 차원이 스스로의 경계를 그을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생물학은 우리에게 ‘어떻게 복제를 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대답할 수 있지만 ‘복제를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대답할 수 없다. 따라서 두 번째 차원인 법-정치적 차원이 그 바깥에서 허용 여부에 대한 경계를 그어야 한다. 법-정치적 차원은 합법적인 것과 합법적이지 않은 것의 대립으로 구조화되어 있지만, 첫 번째 차원과 마찬가지로 스스로의 경계를 긋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법적으로 옳은 것(합법적인 것)이 반드시 윤리적으로 옳은 것(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철저하게 법을 지키면서도 거짓말을 하고, 심술궂으며, 이기적이고, 마음속에 증오와 경멸을 가득 담고 있는 냉혹하고 사악한 법률주의자들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세 번째 차원인 윤리의 차원이 그 바깥에서 경계를 그어야 한다.

윤리의 차원은 다시 네 번째 차원인 가치의 차원, 즉 사랑의 차원에 의해 보충되어야 한다. 윤리의 차원은 선과 악,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 사이의 대립으로 내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그런데 윤리의 차원은 경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지나치게 윤리적이라고 해도 그다지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윤리적으로 해야 할 일만 다하는 개인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바로 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이 그런 사람이다. 그가 악한이 아닌 것은 명백하지만 그에게는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나는 의무 때문에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킬 때 ‘윤리’라는 말을, 사랑 때문에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킬 때 ‘가치’라는 말을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거의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최고의 가치인 사랑은 윤리의 차원을 보완하여 더욱 높은 곳으로 이끈다.

우리는 서로 상대적이면서도 독자성을 갖고 있으며 동시에 상호작용하는 이 네 가지 차원을 동시에 필요로 한다. 어느 한 가지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이처럼 고유한 논리를 가지고 있는 각 차원을 혼동하는 것을 파스칼은 그의 저서 『팡세』에서 ‘우스꽝스러운 것이라고 표현했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가 윤리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경제학-기술-과학적 차원이 내재적으로 윤리의 차원에 종속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이런 주장은 과학이 윤리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전혀 타당하지 않다. 자본주의에 윤리를 요구하는 것은 차원을 구분하지 못하고 혼동에 빠진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마르크스는 경제를 윤리화하고자 했다. 그가 꿈꾸었던 유토피아가 성공하려면 개인들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심을 버리고 공동의 이익을 더 우선적으로 생각해야만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개인의 윤리를 통해서는 빠른 시간 내에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공산주의는 사상 주입 등 강압적인 방식으로 인간성을 변형시키고자 했고 결국 전체주의로 빠질 수밖에 없었다. 경제학에 윤리를 도입함으로써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게 하고자 했던 마르크스의 이상은 흉측한 모습으로 변했고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자본주의가 가장 효율적으로 기능하는 것은 모든 주체가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며 자본주의는 그 자체로는 윤리적이지도 비윤리적이지도 않다. 따라서 윤리적 자본주의를 꿈꾸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본주의에 법적인, 정치적인, 그리고 윤리적인 외부적 한계를 설정하여 단점을 보완하고, 개인으로서 우리들 자신이 윤리적이 되어야 한다.


최근 많은 논란이 일고 있는 유전공학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첫 번째 차원에 속하는 유전공학 자체가 윤리적이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히틀러는 정권을 장악하자마자 특정 인종의 출산을 제한하는 불임법을 공포하고 결국은 불임을 넘어 대량 학살과 인종 말살을 자행하는 야만을 저질렀다. 우리 사회가 이러한 야만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들 개개인이 윤리적이 되어야 하고, 아울러 법적-정치적, 윤리적 차원의 외부 한계를 설정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노력의 바탕에는 가장 높은 차원인 사랑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

- 최종옥, 북코스모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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