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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업(惡業)의 종말
북한은 지난 9월 27일 김정일의 3남 김정은을 인민군 대장 칭호와 함께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으로 임명함으로써 근현대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3대째 권력세습을 기정사실화했다. 28세에 불과한 김정은의 후계 승계에 대해 시간이 흐를수록 북한 내부의 불만과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며 반(反)김정은 세력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포스트 김정일은 김정은이 아닌 김정남이다”, “중국도 내심 김정남을 지지한다”는 이야기마저 나오고 있다. 김정일로서는 과연 권력 승계가 순조롭게 이루어질지 노심초사하는 한편 어쩌면 자신의 사후에 김정은의 목숨마저 위태로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을 것이다. 김정일의 이러한 노심초사와 불안이 얼마나 처절한 것인지 그리고 그 결말이 어떠할지를 우리는 400여 년 전의 역사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1590년 오다와라 정벌을 끝으로 사실상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 후 엄격한 통일정책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자는 가차 없이 처단했다. 그리고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히데요시는 중국까지도 자신의 영토로 복속시킬 야망을 품고 조선을 침략함으로써 일본과 조선 양국에 엄청난 인명피해를 낳았다. 그러나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히데요시에게도 커다란 고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가 53세에 이르기까지 후계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1589년 처음으로 쓰루마쓰라는 아들을 낳았지만 3세 때 죽었기 때문에 히데요시는 후계자 문제로 고심하였다. 그리하여 히데요시는 천하를 통일한 1590년에 할 수 없이 조카인 히데쓰구를 후계자로 정했다.

그러나 1593년 히데요시에게 아들 히데요리가 태어났다. 히데요리의 출생으로 인해 후계자로서 자신의 위치에 불안을 느끼게 된 히데쓰구는 공연히 죄 없는 사람을 괴롭히거나 죽이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히데쓰구가 모반을 꾀하고 있다는 소문이 일기 시작하였다. 1595년 히데요시는 히데쓰구를 절에 유폐시켰다가 자결하게 했다.

히데요시는 어린 히데요리를 금지옥엽처럼 귀여워했다. 그리고 대명(大名)들에게도 히데요리를 잘 섬기도록 부탁하고 대명들로부터 앞으로 히데요리를 힘껏 보필하겠다는 충성서약서를 받았다. 그리고 1596년에도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였다. 자신이 죽은 후 히데요리의 앞날이 얼마나 염려스러웠으면 이 같은 일을 되풀이했을까? 그는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보며 인과응보의 이치를 깨닫고 히데요리의 앞날을 예견했을지도 모른다.

1598년 3월 히데요시는 가족들과 함께 꽃놀이를 마친 후 병석에 눕게 되었다. 7월 들어 히데요시는 다시 그의 심복들과 중신들에게 히데요리를 돕겠다는 서약을 받았고, 8월에는 5명의 대로(막부의 최고 집정관)들에게 혈판(血判, 손가락을 베어 그 피로써 도장을 찍음)서약서를 쓰도록 하였다. 그런 후에도 안심이 안 되었는지 숨을 거두기 얼마 전에 친히 5대로에게 히데요리의 장래를 부디 잘 부탁한다는 편지를 남겼다. “부디 히데요리의 일을 잘 부탁하오. 5대로 여러분, 정말 잘 부탁하오…. 히데요리가 훌륭히 해낼 수 있도록 다섯 분에게 부탁하오. 그 일밖에는 아무 일도 걱정되는 일이 없소.”

1598년 8월 18일 히데요시는 “이슬처럼 떨어졌다 이슬처럼 사라지는 게 인생이련가! 세상만사 모두가 일장춘몽이로세!”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 히데요시의 나이 62세였고 이 때 히데요리는 겨우 여섯 살이었다. 히데요시가 죽고나자 과연 그의 염려는 현실로 대두되었다. 나이 어린 히데요리를 끝까지 보필하겠다고 맹세했던 5대로 중 한 명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히데요시가 죽자마자 천하경영의 야심을 드러내며 빠른 속도로 자신의 세력을 확대해나갔다. 그리고 1600년 9월 15일, 마침내 히데요리를 보필하는 이시다 미쓰나리가 이끄는 서군(西軍)과 이에야스의 동군(東軍)이 천하의 주도권을 놓고 세키가하라에서 건곤일척의 대결전을 벌였다. 결과는 동군의 대승으로 끝났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이에야스는 그 후 에도(동경)에 막부를 설치하고 전국을 지배했다. 그리고 눈엣가시와도 같은 히데요리를 제거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히데요리는 히데요시가 일찍이 구축해놓은 오사카성에 머무르고 있었다. 따라서 이에야스가 히데요리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오사카성을 함락시켜야만 했다. 그러나 오사카성은 이중 해자(垓子)로 둘러싸인 난공불락의 금성탕지였다. 1614년 8월 이에야스는 터무니없는 트집을 잡아 히데요리를 압박하고 마침내 20만 대군을 직접 지휘하여 오사카성 공략에 나섰다. 그러나 수차례 공격에도 불구하고 오사카성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에야스측은 강화를 제안했고 강화의 조건에 오사카성의 바깥쪽 해자를 메워야한다는 것을 포함시켰다. 히데요리측이 이를 받아들이자 이에야스측은 순식간에 안쪽 해자까지 메워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1615년 이에야스의 공격에 오사카성은 힘없이 함락되었고 히데요리는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도요토미씨는 멸망하고 말았다.


이처럼 악업을 쌓은 자는 자신이 아니면 후대에라도 되갚음을 받고야 만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수없이 보아왔다.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비극적 종말은 그동안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피의 살육을 자행하고 수많은 북한 인민들을 죽음과 고통으로 내몰았던 김일성, 김정일의 광기를 이어가고 있는 김정은의 미래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김정은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벌이고, 최측근들이 연이어 충성 서약을 하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은 히데요시 생전에 히데요리에 대한 가신들의 맹세만큼이나 부질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오늘날 김정일이 28세의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세운 것은 히데요시가 여섯 살짜리 아들을 후계자로 앉힌 것과 마찬가지로 순리를 거스르는 것이기에 그 끝이 결코 무탈하지는 않을 것이다.

- 최종옥, 북코스모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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