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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방정식 - 함성호(시인이자 건축가)
사이푸와 말리시 부부가 감독한 <칭기즈칸>이란 영화는 광대한 몽골의 자연을 배경으로 한 영웅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영웅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는 만큼, 얼핏 굉장한 드라마가 있을 것 같지만 영화는 사뭇 심심하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삶의 드라마가 아닌 삶의 방식이 있다.

감독은 내몽골 출신답게 초원에서의 삶의 방식을 짙은 애정으로 잡아내고 있다. 단지 신기하게만 보일 수 있는 색다른 삶의 방식들이 나 같은 이방인들에게도 울림을 주는 것은 거기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동아시아 문명권이라는 지역적인 테두리가 아니라 지금의 문명이 잃어버린 풋풋한 원시성을 이 영화는 떠올리게 한다. 그중에서도 칭기즈칸과 그의 약혼녀가 처음 만나는 장면은 아마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이다.

약혼녀는 주저하고 있는 테무진에게 이것이 자신이 받아들인 운명임을 수줍게, 그러나 분명하게 말하고 과감히 초원에 누워 남자를 받아들인다. 말하자면 야합 野合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장면과 동시에 ‘야합’이라는 단어가 그 원시성을 회복했다고 말하고 싶다. 여자와 대지가 합일을 이루며 누웠다는 단순한 일치가 아니라, 여자는 대지와 자신의 운명과 남자를 한꺼번에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 순간 삶의 방식과 그 삶을 이루는 터전인 초원과 ‘너’라는 타자는 모두 복합적으로 한 여자의 운명 속에서 ‘있게’ 된다. 그 복잡함이 하나의 운명으로 ‘야합’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것이 단순해지는 것은 아니다. 세계의 복잡함은 여전히 있다. 단지 그 복잡함이 운명이 되었을 뿐이다.

내가 웹진의 일을 하고 있을 때, 소설가 서영은 선생은 가끔 광화문 근처에서 원고를 건네주곤 했다. 그때마다 자연히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갔는데 주로 내가 떠들고 선생은 조용히 듣는 편이었다. 늘 그렇듯이 선생은 귀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선생의 목소리는 늘 낮았다. 주변이 시끄러울 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할 정도였다. 나는 그럴 때마다 선생의 듣는 눈을 부러워했다. 눈으로 들으려면 보는 수줍음이 없어야 한다. 적어도 나는 아직 보는 데에 홀려 있고, 그런 만큼 보는 수줍음을 잘 이기지 못한다.

그런 어느 날 선생은 그렇게 듣는 눈으로 나를 보더니 “그 복잡함을 견디세요.” 했다. 그동안 무엇이든 해결하려고만 했던 나에게 그 말은 일종의 벌이었고, 문제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문제를 보는 태도에 대한 지적이었다. 나는 그 후로도 한동안 선생의 견딤의 문제를 생각하며 정신적 공황 상태를 겪어야 했다. 왜냐하면 복잡함을 이루는 근본을 찾는 것은 과학이지만 복잡함을 견디는 문제는 나를 바꿔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면 저 몽골의 여인처럼 끝끝내 야합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인가?

영화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칭기즈칸의 아내는 남편이 집을 비우고 떠나 있을 때 아이를 가졌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남편의 적에게 납치된 그녀는 적의 천막에서 같이 지내게 된다. 그 사실을 알고 아내를 구하러 간 칭기즈칸은 아내가 적의 아이를 가지고 있는 줄 알고 여자를 버리고 돌아온다. 그러나 결국 어머니의 설득으로 마지못해 아내를 데려온 칭기즈칸은 집을 나가 초원을 달린다.

칭기즈칸이 끊임없이 초원을 달렸던 이유 중에 하나는 혹 집에 대한 괴로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실제로 칭기즈칸의 장남인 주치는 사람들로부터 평생 적의 자식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받았다. 아마도 칭기즈칸도 평생 그런 번민에 휩싸였을지도 모른다. 초원에 누워 자신을 받아들였던 여자에 대한 버릴 수 없는 사랑이 그를 초원의 끝으로 나가게 했던 것은 아닐까? 그는 초원의 끝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나는 아직도 세계의 복잡성을 견디어 내기보다는 복잡성을 이루는 근원을 찾아 헤매고 있다. 신은 어떤 공식을 써서 이 세계를 창조하시는 걸까? 나도 그 아름다운 방정식을 엿볼 수는 없을까?

나는 초원의 끝까지 가야 한다.

- 『당신을 위해 지은 집』 중에서
(함성호 지음 / 마음의숲 / 284쪽 / 12,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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