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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실패는 성공보다 더 밝게 빛나느니




메달에서 해방되다
- 유안진



출발신호에 총알처럼 튀어나간 10개국 선수들 중에,
갑자기 하나가 쓰러지며 다리를 움켜잡고 비명을
지른다. 비명을 듣고 달리면서도 뒤돌아본 한 선수
가 되돌아 달려와서는 몸부림치는 선수의 다리를
주물렀다. 다른 선수들도 하나씩 두셋씩 돌아와서
함께 부축했으나

이 지경에서도 혼자 달리는 선수가 있었다.

관중석의 야유와 박수갈채 속에 9개국 선수들은
어깨동무하고 천천히 완주했고, 메달수여식에는
은메달 선수 9명뿐 금메달 선수는 나오지 않았다.
아니 나올 수가 없었을 게다.


밤늦게까지 ‘런던올림픽’ 경기를 시청하다가 이런 시가 써졌다. 내가 보고 싶었던 경기 장면은 저렇게 죽기 살기 식의 경쟁 모습은 아니었다 싶어서, 괜히 화가 났고 끝내 잠도 안 왔다. 낮에 슈퍼 가는 길에 들은, 금메달 열 개는 따내야 한다고 외치던 어느 아나운서의 멘트도 생각났다. 나는 그이들보다 내 나라를 덜 사랑하는가? 오히려 나는 장미란 선수가 예뻤다. 그만큼 했으니 됐다고, 이젠 그만해도 충분하다고, 이제 기록과 메달에서 해방되어 그동안 참고 참았던 것들 맘 놓고 누리라고, 그녀의 실패는 신기록보다 위대하다고, 진심을 담아서 말해주고 싶었다.

성공, 성공 하지 말자. 위대한 실패는 성공보다 빛난다. 열정, 열정 하지 말자. 우리 시대에 필요한 건 메달을 향한 열정보다도 메달을 포기할 줄도 알고, 어떤 때 어떤 일에 그래야 하는지를 가릴 줄 아는 분별력과 자유로운 정신과 진정한 용기가 아닐까? 진정한 용기일수록 어리석다. 세상에 바보가 될 줄 아는 용기야말로 참된 열정이며, 위대한 실패가 성공보다 더 밝게 빛나느니.

“열정, 오직 위대한 열정만이 영혼을 위대한 일로 고양시킬 수 있다.”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 형제가 했던 말이라던가? 열정에 대한 이 말은 기막히게 힘 있고 감동적이어서 쉽게 잊히지 않는다. 이 열정은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에서 더 감동적이다. “영감이 끊기고 / 정신이 냉소의 눈에 덮이고 / 비탄의 얼음에 갇힐 때 / 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가 되네. / 그러나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 그대는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이네.”

열정을 잃지 않으면 일흔 나이도 청춘이지만, 열정을 잃으면 열일곱에도 노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열정이 아니다. 위대한 열정, 아무 일에나 들끓는 열정이 아니라, 필생을 걸 만한 일에만 쏟아붓는, 부어도 부어도 다함이 없고 저절로 끓어넘치는 ‘위대한 열정’이다. 그런 위대한 열정을 위해서 파우스트는 제 영혼을 팔았으며, 그것이 괴테의 갈망이었고, 나 같은 이들의 목마름이기도 할 게다.

나이 들수록 동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아이 같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예수가 말한 나이가 삼십 세 직후의 청년 때였다니 신의 아들일 수밖에 없지. 작고한 김기창 화백의 <바보 산수화>도 있었지. 노장 피카소의 전시회를 본 한 기자가 “애들 낙서 같다”고 남긴 촌평에, “그렇다. 아이가 되는 데 80년이 걸렸다”고 했다는 그의 재치가 떠올라 종일 동요를 웅얼거리는 날도 있다.

우리 삶에는 피 흘리는 경쟁만큼이나, 바보스러울 만큼 용기 있는 포기와 해방과 자유와의 균형도 필요하다. 대낮과 같은 냉혹한 경쟁도 때로는 있어야 하지만, 그 어떤 실수나 실패, 부족함도 포용해주는 잊음과 용서의 밤 같은 면도 갖춰야 하리라. 잘라내고 제거해버리는 외과적 수술 같은 무한 경쟁 시대일수록, 내과적 치유 같은 예술과 시 문학이 더 필요한 것도 불필요한 낭비 같은 예술이 우리 삶을 더 위무해주기 때문이다. 지는 것으로써 이기는 것이 삶의 예술이니까.

나는 지금도 밤이 좋다. 검은 어둠은 밝음으로 핏발 선 눈을 편안하게 해준다. 모든 색깔을 다 받아주어 검정이다. 모든 때와 얼룩을 다 받아주어 저 스스로 검정으로 바뀔지언정, 비난이나 비판, 비웃고 탓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뱉어내거나 배척하지 않는 어둠, 그래서 밤의 검은색은 모성이자 신성 같다.

- 『상처를 꽃으로』 중에서
(유안진 지음 / 문예중앙 / 253쪽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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