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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힐끔 쳐다보는 것만으로
최근에 이사를 했다고 고향에서 부모님과 형님네가 새집 구경을 왔다. 덕분에 세 식구가 살기에는 좀 크다 싶었던 집이 복작거려서 좋았다. 같은 동네에 사는 누나까지 오니 어릴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만 해도 형제가 셋이니까 아침에 밥을 먹을라치면 꽤 요란했다. 그러나 아이가 하나뿐인 우리 집은 그런 야단법석의 아침을 경험하기란 힘들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사촌들과 노느라 종일 정신이 없었다. 하루 정도가 지나자 그 북적거림이 좀 피곤해지기 시작한 나와는 달리, 아이는 사촌들이 떠나는 순간까지 손을 놓지 않았고 차에 오르는 사촌들에게 집에 가서 더 놀자고 간청했다. 그런 아이에게 우리는 이제 인사를 하라고 권했다. 아이는 끝내 인사를 하지 않았고, 자동차가 떠나자마자 엉엉 울어 버렸다.

엉엉엉. 내 경험에 따르면 그럴 때 흘리는 눈물보다 가슴 아픈 눈물은 없었다. 그건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아서 흘리는 눈물, 함께 있으면 너무나 좋을 사람들과 헤어지게 되어 흘리는 눈물이다. 왜 이 삶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영원할 수 없을까? 나는 아이를 달랬다.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려면 어떤 시간도 영원하지 않으며, 또한 행복한 날이 하루라면 외로운 날도 하루라는, 그런 식으로 이 우주는 공정하다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한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무슨 수로 그걸 설명할 수 있을까? 나조차도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데.

살아오면서 나도 이 인생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여러 번 상처를 받았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을 한 번만 경험한다. 그래서 이 삶에서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지금 이 순간에 경험하는 일을 배워야만 한다. 내 인생이 저마다 다른 나날들로 이뤄진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날마다 익혀야만 한다. 그럴 때, 내게 학교가 되는 건 숲이다. 숲에서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

맑은 날씨가 사나흘 이어진다. 산벚나무 가지 어디선가 새가 지저귄다. 그날 하루는 맑으리라. 그러니 그 새소리에 내 마음은 평화롭다. 하지만 화창하던 하늘로 구름들이 몰려오면 모든 게 달라진다. 바람은 당장이라도 부러뜨릴 듯 나무를 뒤흔든다. 새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노랫소리도 없다. 그런 날에 나무들은 그 험한 바람을 어떻게 견딜까? 새들과 그 지저귐은 어디에서 그 비를 피하고 있는 것일까? 나무와 새들도 희망을 생각할까? 마치 우리처럼.

날씨는 매일매일 달라진다. 햇살이 눈부시다가 또 흐리다가, 매서운 추위가 계속되다가 다시 훈풍이 불어오고 어느새 계절이 바뀐다. 아침마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거기 변하지 않는 하늘이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나무와 새들에게는 어떤 희망도 없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희망은 달콤하지만, 영원한 세계를 원하는 자들을 늘 배신했다. 나무와 새들은, 영원히 맑은 날은 찾아오지 않는다는 자연적인 사실이 있어서 세찬 바람과 축축한 둥지를 견딜 수 있었으리라. 모든 것은 변화하고, 모든 일은 지나간다는 그 자명한 사실 덕분에 나무와 새들은 그 사실로 이뤄진 나날을 그저 겪을 뿐이다. 맑은 날에는 맑은 날을, 흐린 날에는 흐린 날을 겪는다.

몰아치는 바람 앞에서도 아무 일이 없다는 듯이 꼿꼿하게 서 있다면, 그건 마음이 병든 나무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매 순간 달라지는 세계에서는 우리 역시 변할 때 가장 건강하다. 단단할 때가 아니라 여릴 때. 나는 아침에 일어나 하늘을 볼 때마다 내가 여린 사람이라는 걸 인정한다. 여리다는 건 과거나 미래의 날씨 속에서 살지 않겠다는 말이다. 나는 매 순간 변하는 날씨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살고 싶다. 그래서 날마다 그날의 날씨를 최대한 즐기는, 일관성이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장 건강한 마음이란 쉽게 상처 받는 마음이다. 세상의 기쁨과 고통에 민감할 때, 우리는 가장 건강하다. 때로 즐거운 마음으로 조간신문을 펼쳤다가도 우리는 슬픔을 느낀다. 물론 마음이 약해졌을 때다. 하지만 그 약한 마음을 통해 우리는 서로 하나가 된다. 마찬가지로 가장 건강한 몸은 금방 지치는 몸이다. 자신은 지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약한 것들은 서로의 처지를 너무나 잘 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여리고, 쉽게 상처 받고, 금방 지치는 사람이다. 다행히도 원래 우리는 모두 그렇게 태어났다.

엉엉엉 울던 아이는 시간이 조금 지나자 울음을 그치고 뭘 하면서 놀까 궁리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집 근처 공원에 가서 오리를 구경하기로 했다. 호수에 사는 오리는 볼 수 있는 날도 있고, 볼 수 없는 날도 있었다. 과연 오리를 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우리는 오리를 보러 공원까지 갈 수는 있었다. 오리는 한참 지나서야 물풀 사이에서 뭍으로 걸어 나왔다. 밤이 되면 오리는 다시 어딘가로 숨어들어 잠들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집에서 잠들 것이다. 그리고 아침에 깨어난다면 새로운 날이 시작됐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하늘을 힐끔 쳐다보는 것만으로.

- 『지지 않는다는 말』 중에서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80쪽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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