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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산을 본 사람
얼마 전에 교토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신칸센의 창문에서 바라본 후지산은 실로 선명하고도 아름다웠다. 덕분에 통로 건너편에 나란히 앉아 있던 중년 회사원 두 명에게서 흥미로운 광경을 보았다. 두 사람은 서로 거래 중인 회사 관계자인 모양이었다. 나고야에서 신칸센을 타자마자 주변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저희들끼리 큰 목소리로 업무를 상의하기 시작했다. 회사 일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나로선 업계 용어가 너무 많아서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비즈니스 이야기인 이상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다.

그때, 그들이 앉아 있는 차창 너머로 불현듯 후지산이 나타났다. 먼저 그것을 깨달은 것은 통로석에 앉은 남자였다. 후지산을 발견한 그는 이야기를 멈추고 ‘우와….’ 하고 탄성을 지르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창가에 앉아 있던 남자도 그 소리에 이끌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남자들은 그대로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들의 대화가 끊기자 열차 안은 조용해졌고, 정적 속의 후지산은 한층 더 신비로워 보였다. 창가의 남자는 창밖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후지산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눈을 차 안으로 돌리며 기나긴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잠시 후 “…뭐, 그렇다는 거죠.” 그 한 마디를 끝으로, 어째서인지 그들의 대화는 끊겼다. 슬쩍 보니 두 사람은 지친 듯한 얼굴로 눈을 감은 채 각자 생각에 빠진 듯했다.

…후지산은 역시 신비한 산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자니, 문득 후지산에 얽힌 어떤 이야기가 떠올랐다.


후지산 기슭의 평야에는 광대한 나무숲이 펼쳐져 있다. 자살의 명소로도 유명한 곳이다. 후지산의 드넓은 숲이 사람을 죽음으로 유혹한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지만, 언젠가 그것과는 백팔십 도 다른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 후지산을 찍은 사진집을 내기 위해 후지산 촬영여행을 갔을 때, 매년 가을 무렵이면 버섯을 따러 숲으로 들어오는 초로의 남자 K를 만났다. 그가 후지산 자살과 관련된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버섯 따기를 마치고 산을 내려가던 길이었지요. 해질 시간이 다 됐는데 나무 그루터기에 삼십 대 중반 정도의 여자가 짐도 없이 정신을 놓은 것처럼 멍하니 앉아 있는 거예요. 나이 들어 그런지 감이 딱 오더라구요. 그래서 길을 잃으셨다면 마을까지 안내해 드릴까요, 했죠. 그랬더니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더니 안 할게요, 이젠 안 할게요 그러더라구요. 물어보니 이제 자살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던 모양입디다. 그래서 근처 마을까지 데리고 왔죠. 뭔가 따뜻한 게 필요하겠다 싶어서 커피를 줬는데, 그 여자가 커피를 마시면서 조그만 목소리로 후지산이 하느님이었군요, 하더라구요.”

K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여자가 자살하려고 숲에 갔던 것은 그날 오후 2시 전후였다. 하늘에는 잔뜩 구름이 끼어 있었다. 그녀는 망설이듯이 그 자리에서 두 시간 정도를 보냈다. 그러다 마침내 뜻을 정하고서 비장하게 일어났는데, 어느샌가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자신의 그림자가 지면에 길게 늘어졌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았더니 거대한 산이 눈앞에 우뚝 서 있었다. 불현듯 새하얀 그 산의 모습이 자신을 포옹하는 커다란 거인의 마음인 것처럼 느꼈단다. 여자는 울면서 무너졌다. 눈물이 마른 후 다시 하늘을 바라보니, 후지산은 저녁놀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걸 보고 갑자기 웃어 버렸대요. 산이 자기한테 미소 짓는 것 같았다나요. 이런 식의 이야기가 한둘이 아닙니다. 이것도 운일까요? 눈앞을 가렸던 안개나 구름이 불시에 걷히면서 산이 보일 때, 그 감동은 정말 특별하지요. 그런 풍경과 마주치는가 안 마주치는가가 사람의 명을 좌우하는 경우도 있더라구요. 저 산이 몇천 년 동안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했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면 머리가 아찔해집니다.”


신칸센이 도쿄역의 플랫폼에 도착하자 두 명의 회사원이 내 앞을 지나쳐 갔다. 그 너머로 거대한 도쿄 시가지가 보였다. 그들은 아까 마주쳤던 한순간의 유예를 남겨 둔 채 다시 전장 속으로 발을 들이려 하고 있었다.

눈부실 정도로 선명했던, 신성했던 오늘의 후지산을 우연히 보게 된 것이 이후 그들의 인생 속에서 뭔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계단을 내려갔다.

-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기도』 중에서
(후지와라 신야 지음 / 다반 / 240쪽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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