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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 피면 그리운 작은아버지
능소화가 활짝 피었습니다. 예전에 비해 자주 볼 수 있는 꽃입니다. 독성이 있어 심지 않는 집도 많았지만, 양반집 마당에만 심는다고 하여 ‘양반꽃’으로도 불렸습니다. 금등화라는 다른 이름도 갖고 있지요. 요즘에는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넝쿨 식물에 속하는 것이라서 담을 타고 오르기도 하지만 죽은 나무 안고 감아 오르는 게 제격입니다. 그래서 이 꽃을 보면 죽은 나무를 화려하게 재생하는 미덕을 지녔구나 하고 느낍니다.

저는 능소화를 참 좋아합니다. 몇 해 전 돌아가신 제 작은아버지는 농사를 지으셨는데 꽃을 참 좋아하셨습니다. 당신 힘든 농사일 틈틈이 집 안팎을 아름답게 꾸미시는 일을 즐기셨지요. 작은아버지로 인해 우물가에 수국이 흐드러지게 피고, 고추밭 배밭 여기저기 배롱나무도 피었지요. 농사가 취미고 화훼가 본업 아니냐며 존경 반 농담 반 말씀 드리면 작은아버지는 너그럽게 허허 웃으시며, “늬들 보기 좋은 겨? 그럼 된 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푸근하고 넉넉한 인품을 지닌 작은아버지는 힘든 농사에도 어렵다는 말씀 안 하시고 갖은 꽃과 나무를 부지런히 가꾸셨습니다. 그런 당신께서는 유독 능소화를 즐기셨습니다. 그래서 작은집 들어서는 길 초입이 보이면 가장 먼저 반기는 게 능소화였습니다. 거기부터 집까지 이르는 길에 능소화를 심어두셔서 작은집 들어서는 길이 참 예뻤습니다.

“이 꽃을 여기 심은 건 이게 손 맞는 꽃이기 때문이여. 원래 중국 꽃이어서 꽃말도 여럿이고 전설도 많더만, 손님 맞는 꽃이라기에 길잡이 삼아 거따 심은 겨. 예전에는 마당에다 심었다는디 마당서 손님 맞는 것보던 동구 밖이 안 낫겄어?”

느릿한 충청도 말투만큼이나 늘 넉넉하고 여유로웠던 작은아버지는 화를 내거나 큰소리치는 법이 없었습니다. 동구 밖 초입에 능소화를 심으셨던 성품은 작은집 도처에 넉넉하게 핀 꽃처럼 따사로웠습니다. 제가 능소화를 유난히 좋아하고 탐낼 때마다 말씀하셨지요. “나중에 자네가 마당 있는 집 짓구 살믄 원허는 만큼 캐가. 수국도 실컷 갖고 가구 말여.”

조카가 마당 있는 집을 갖기도 전에 당신은 췌장암으로 몇 달 고생하시다가 홀연히 저희 곁을 떠나셨습니다. 성묘 갈 때마다 그때까지 아직 채 지지 않은 능소화를 보면 당신이 더욱더 그립습니다. 누구든 자신의 부재를 대신하는 자연물을, 그것도 나무나 꽃으로 남겨둘 수 있다는 건 행복하고 고마운 일입니다. 그건 남아서 그 부재를 안타까워하는 이에게도 똑같은 축복입니다. 그래서 작은아버지는 세상 떠나시면서도 행복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작은아버지를 기억하는 저도 더불어 행복합니다.

제가 세상을 떠나면 남은 이들이 무엇으로 기억할까요? 저는 자작나무로 남고 싶습니다. 신선한 아침 공기 보듬고 안개 아련한 숲에서 아침 햇살에 가볍게 흔들리는 한 그루 자작나무로 기억될 수만 있다면, 살아온 보람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겠다 싶습니다.

동구 밖 초입이나 마당에만 능소화 심을 게 아니라 마음에도 심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작은 아버지가 전해주신 꽃말 때문입니다. 살다 보면 누군가를 맞아들인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새삼 깨닫습니다. 내 문을 열지 않고 상대가 먼저 문 열기만 기다리기 때문이라는 걸 애써 외면하면서 말이지요. 골목 초입이나 동구 밖에 능소화 심은 건 미쁜 마음으로 다가올 수 있도록 하는, 넉넉한 마음의 배려일 것입니다. 내 마음의 앞자락에도 능소화를 심어볼 참입니다. 그리고 내 마음의 숲에는 자작나무를 심을 수 있다면 더 바람 없을 것 같습니다.

작은집 초입의 능소화는 여전히 활짝 피었습니다. 글쎄 그런 때가 올까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언젠가 마당이 제법 넉넉한 한옥을 짓게 되면 가장 먼저 능소화 한 그루 옮겨 심을 생각입니다. 그때 조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가장 먼저 작은아버지께서 오시겠지요. 데려온 죽은 나무에 능소화가 타고 오르게 할 겁니다. 죽은 나무야 어찌 다시 생명을 되살릴 수 있겠습니까만 그 꽃 업고 있는 것으로 충분히 부활한 셈이겠지요. 저는 작은아버지를 그렇게 제 집 마당에 모시고 싶습니다.

능소화가 마음껏 핀 한낮입니다.

- 『지금은 행복을 복습하는 시간』 중에서
(김경집 지음 / 지식의숲 / 336쪽 / 12,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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