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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난향
아침에 창문을 여는데 어디서 은은한 향기가 번져 옵니다. 이 향기가 어디서 오는가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창가에 있는 난이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어린 여치의 엷은 연둣빛 같은 꽃송이 몇 개를 밀어 올리고 있습니다. 휘어진 이파리들로 무성한 난을 받아와 화분에 옮겨 심었을 때 꽃을 피우리라고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내가 그렇게 생각하건 말건 난은 왕성하게 살아 움직이고 햇빛을 받아들이고 바람과 이야기하고 안으로 꿈틀거렸을 겁니다.

향기는 꽃의 언어입니다. 난은 꽃을 피워 살아 있음을 안팎에 알리고, 향기로 다른 것들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난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요? 요란하게 살지 말고 은은하게 살라고 말하고 싶었을까요? 매혹적인 향기보다 깊은 향기가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을까요? 아니, 살아 있는 것들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눈여겨보아 주는 이 없어도 어제도 오늘도 평범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도 다 열심히 살고 있다는 걸 잊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난이 창가에서 꽃 몇 송이 피워 내느라 애를 쓰는 동안 방 안이 향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눈을 감고 있어도 눈부신 향기가 내가 있는 자리까지 다가와 내 몸을 감싸고 있는 게 느껴집니다. 이 향기로운 가을 아침, 나태주 시인의 <시>가 생각납니다.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마음속에서 시 하나 싹텄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밝아졌습니다

나는 지금 그대를 사랑합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더욱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졌습니다

그렇습니다. 꽃 한 송이 피면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내가 마당을 쓸면 우리 집 마당이 깨끗해진 게 아닙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시 하나 싹트면 지구 한 모퉁이가 밝아지는 것입니다. 내가 그대를 사랑하면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꽃 한 송이는 그냥 꽃 한 송이가 아닙니다. 지구 위의 꽃 한 송이인 것입니다. 나도 그냥 내가 아닙니다. 지구 위의 한 사람인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지듯이, 마찬가지로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면 지구 한 모퉁이가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욕하고 저주하면 그만큼 지구 한쪽이 부정적인 에너지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나이 들수록 향기롭게 살아야 합니다. 용서와 이해와 관용과 부드러움과 아량은 은은한 향기를 지닌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은은한 향기를 지니고 살아야 아름답게 나이 들어 갈 수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작고 하찮은 일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 일, 무의미한 일을 오늘도 되풀이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하루를 성실히 살면 그만큼의 좋은 에너지가 퍼져 나가는 겁니다. 보는 이 없어도 내가 선한 마음을 베풀면 그 베풂을 받은 이를 통해 선한 뜻이 많은 곳으로 번져 가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어려운 이웃을 위해 밥 한 끼를 나누면 세상이 그만큼 따뜻해지는 것입니다.

여름을 지나온 푸른 과일들이 나뭇가지 끝에서 곱게 익어 가고 있습니다. 그 과일들이 곱게 익어서 우리 마음이 얼마나 풍요롭습니까? 들국화 한 송이 노랗게 피어 있어서 우리 마음이 얼마나 여유로워집니까? 그대가 아름답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얼마나 기쁜지 당신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 『너 없이 어찌 내게 향기 있으랴』 중에서
(도종환 지음 / 문학의문학 / 295쪽 / 1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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