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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고백
날이 어스름히 밝아오고 있습니다. 나는 신선한 마음으로 당신께 바치는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조용히 잠들어 있는 당신의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지난날의 일들이 떠올라 잠시 손을 멈추고 회상에 잠겨봅니다.

당신은 크고 우람하지 않았지만 작거나 초라하지도 않았습니다. 큰 키에 사람 좋은 얼굴을 한 당신은 늘 깔끔하고 선비다웠습니다. 특히 때 묻지 않은 해맑은 미소가 좋았답니다. 헤픈 것 같으면서도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압도적인 것도 아닌데 나를 적당히 긴장시켰습니다. 그런 당신에게 꼼짝 못하고 빠져들어 지금까지 얽매여 산 지 어언 오십 년이 넘었습니다. 당신에 비해 못난 나를 당신은 끔찍이 아끼고 사랑해주었습니다.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그러한 당신이 몇 해 전 쓰러졌을 때는 벼랑 끝에 선 것처럼 깜깜하고 아득했습니다. 날이 환하게 밝아올 무렵, 당신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면서 높은 신열로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 즉시 병원으로 달려가니 폐암이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새벽마다 일어나서 당신의 기척을 살펴보며 기도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황혼에 낙조의 빛깔이 서글프기만 한데 날벼락 같은 현실에서, 당신은 마치 유언을 남기는 듯 이 일 저 일 당부할 적마다, 나는 다 산 기분이었습니다. 이 년 동안의 치료 후 더 이상 발전하지 않는 폐기종으로 남을 것이라는 진단을 받고 마음을 놓게 되었지만, 그때의 심정은 죽음 직전의 극한 상황이었습니다.

지금 당신은 무슨 꿈을 꾸고 있나요. 우리의 과거는 아름다웠습니다. 미래도 아름다울 겁니다. 나는 그것을 꼭 믿을 겁니다.

돌이켜 보면 어릴 적엔 부모님의 큰 사랑 덕으로 자랐고 어른이 되어선 당신을 만나 뜨거운 사랑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후 자식들에게 쏟아붓는 사랑으로 정신없이 지내다가 늙어서는 그 자식들의 사랑으로 살게 되었으며, 더구나 친구들 그리고 이웃들의 따스한 사랑까지, 실로 나의 평생은 사랑의 연속이었습니다. 특히 당신을 만나 열렬하게 사랑을 불태우고 지낸 뜨거웠던 시절은 내 인생의 절정이었고, 그 보배롭고 극적인 경험을 지니게 된 것은 나의 일생일대의 행운이었습니다.

우리도 이젠 많이 늙었습니다. 어느새 우리는 노쇠하여 심신의 아픔을 견디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전처럼 애틋한 사랑의 표현은 하지 못하고 다만 은근히 서로의 기미를 살펴보며 일일이 간섭하고 잔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 잔소리에는 서로에 대한 염려와 배려가 서려 있습니다. 그것이 노후의 사랑이고, 그 속 깊은 애정을 알기 때문에 나는 순한 양이 되어 수긍하며 오히려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그처럼 뜨거웠던 사랑이 이렇게 은근해진 것은 유전의 세월 탓이겠지만 날이 갈수록 구수해지는 것은 사랑으로 쌓아올린 나이 덕이 아닌가 싶습니다.

당신과 뜨거운 사랑을 맺고, 거친 바람에 맞서 험한 고개를 수없이 넘어왔습니다. 그동안 세상살이 힘들어도 당신은 화합과 끈기와 체념을 적당히 이어나가면서 고난을 극복해주었고 우리 가정을 정성껏 가꾸어준 덕분에 이렇게 대가족을 이루어 잘 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나의 미숙으로 당신을 괴롭히고, 나의 무능으로 당신을 답답하게 하고 놀라게 한 그 모든 일들을 이제 깊이 뉘우칩니다. 그러한 나의 허물을 당신의 큰마음은 늘 따뜻하게 감싸주었고, 그런 당신을 의지하여 오늘까지 염치없이 잘 산 것 같아 송구스럽고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래도 당신과 나는 하늘이 내린 인연으로 살아온 천생연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 나이에 아직도 당신이 내민 손을 덥석 잡지 못하고 진달래 낯빛이 되어 수줍어하니 내 마음속에는 아직도 그 옛날의 풋사랑이 그대로 남아 있나봅니다. 사랑하는 당신과 반세기가 넘도록 동반한 세월은 햇빛이 넘치는 계절이었습니다. 내 생애에 푸르름을 가득 안겨준 당신께 그저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제 든든한 버팀목인 당신에게 기대어 아무런 미련 없이 편안히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마웠습니다, 당신!

서태석 님께
아내 오정옥 올림

- 『달콤한 덫』 중에서
(조광현 외 106인 지음 / 에세이스트사 / 500쪽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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