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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들리는 목소리
몇 달 전 나는 남반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자연을 자랑하는 곳, 그래서 이민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선호도가 상당히 높은 뉴질랜드를 여행했다. 과연 말 그대로 인구가 적은 이 나라 곳곳에 한국인이 없는 곳이 없었다. 이민자 대부분은 소규모 사업에 종사하고 있었지만 현지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오래전 정착한 이민자 중에는 훌륭한 과학자나 교육자 그리고 고위직 공무원도 있는데 그중 몇몇은 나라 안팎에 널리 알려져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다고 했다.

남 섬과 북 섬이라는 쌍둥이 섬으로 이루어진 이 나라는 인구도 더 많고 기후도 좋은 북 섬이 형 노릇을 하지만 여행객에게는 흔히 볼 수 없는 신기한 풍경과 훼손되지 않은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남 섬이 단연 인기다. 겨우 천 년 전에 남태평양의 마오리족이 처음으로 이주해와 인간이 살기 시작했다는 섬. 이 마오리족들은 이제 온 나라에 부락을 이뤄 자기들 방식대로 살지만 이 땅의 주인 격으로 대접도 받고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는다고 한다.

두 섬을 비행기까지 타고 여행하며 신기하게 본 것들 중 특히 산나물로만 알아온 고사리가 둥치 큰 통나무로 자라 나라 곳곳에 퍼져 있는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 고사리나무는 비가 많이 오는 뉴질랜드의 광대한 숲에 제일 많다. 앞을 촘촘히 가로막는 밀림에 들어서면 고사리나무가 아닌 것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래서이겠지만 뉴질랜드에서만 볼 수 있다는 고사리나무는 이 나라의 국수(國樹)이고, 사람들은 이 나무를 특히 지붕용 목재로 많이 쓴다고 했다. 그리고 특히 고사리나무에 얽힌 오래된 전설이 내게 애잔하게 다가왔다. 마오리족의 전설은 대강 이런 것이었다.

고사리나무가 이 나라에만 지천으로 자라는 이유는 하느님의 눈물인 장대비와 자식이 그리워 한밤중에 몰래 우는 아버지의 눈물인 이슬이 풍족하기 때문이다. 고사리나무는 이 두 가지의 물을 밤낮으로 쉼 없이 마시며 쑥쑥 자라는 것이다. 하느님은 가끔 너무 바빠서 장대비를 뿌리지 않는 날이 있지만 아버지는 단 하루도 예외 없이 밤마다 고사리나무를 찾아와 이슬 눈물을 흘린다. 자식이 그리워서 울고, 반가워서 울고, 기뻐서 울고, 자식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주고 싶어서 운다.

그 눈물을 먹고 번성한 고사리나무에는 특수한 독성이 있어 나무 주변에는 독충도 해충도 없고 뱀 한 마리조차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는 정 많은 아버지 때문에 뉴질랜드 땅에는 아직 단 한 마리의 독충도 단 한 마리의 뱀도 살지 않는다. 극진한 아버지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절대로 자식의 안전과 행복을 잊지 않는다.

그 전설을 재미있게 들은 다음 날, 나는 아침 산책에 나서서 근처 숲으로 향했다. 그리고 널려 있는 고사리나무 앞으로 가서 둥치를 유심히 보았다. 힘겹게 살아서 그런지 나무의 특징인지 나뭇결은 울퉁불퉁했지만 간밤에 내린 아버지의 눈물인 이슬의 흔적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혹시나 하고 나보다 키가 두 배쯤 큰 나무의 우듬지 잎을 올려다본 순간, 내가 나무를 친 탓인지 기다렸다는 듯 후드득하며 잎사귀에 머물던 이슬이 한꺼번에 내 얼굴과 어깨로 떨어졌다. 그리고 방향도 없이 어디선가 돌아가신 내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잘 지내고 있지? 서로 보지는 못하지만 널 자주 생각하며 지낸단다. 내가 너를 늘 보호해줄 것이다. 행복하게 잘 지내거라.”

‘그렇구나, 돌아가신 아버지는 여기까지 오셔서 나를 지켜봐주셨구나. 생전에도 그러시더니 돌아가신 뒤에도 눈물이 아직 많으신 모양이네. 모든 아버지는 죽어서나 살아서나 자식들을 생각하며 지내시는구나. 나는 돌아가신 분들에게까지 사랑받는 존재였구나. 나도 그렇게 자식을, 또 이웃을 아끼고 사랑해야겠다.’

흐뭇한 마음으로 숲을 빠져나와 일행이 머물고 있는 호텔로 천천히 발길을 돌렸다. 내 가슴이 아침 햇살처럼 천천히 따뜻해져왔다.

- 『우리 얼마나 함께』 중에서
(마종기 지음 / 달 / 284쪽 / 1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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