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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가 손에 잡힐 듯했다
산속에서 기도하며 가는 사람을 본 적 있다. 남산에서만도 두 번이었다. 첫 번째 본 여자는 묵주를 들고 있었다. 두 번째 본 남자는 염주를 들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겠다는 목적지를 정해놓지 않았던 나는 계속 여자 뒤를 따라 걸었다. 나를 의식한 그녀는 딱 한 번 뒤돌아봤다. 화사한 빛깔의 묵주와는 달리 그녀의 얼굴은 검은 흙빛이었다. 옆모습의 어떤 분위기 때문에 나는 그녀가 울고 있었음을 알았다. 그녀가 묵주를 잡고 다시 기도를 시작할 때 나도 같이 기도를 시작했다. 혼자 하는 기도보다 힘을 받으리라 생각하면서. ‘저분의 기도를 꼭 들어주세요’ 하는 내 기도도 그녀의 기도에 속할 거라 믿었다.

염주를 돌리며 가던 남자는 사십 대로 보였다. 그는 불쑥 시야에 들어와 줄곧 나를 앞서 걸었다. 그는 느릿느릿 걸었다. 무릎이 시큰거리던 나도 거북이처럼 걸었다. 평일에 남산을 찾아 그처럼 느릿느릿 걷는 것으로 봐서 그는 직장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남자의 주머니 속에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받지는 않았으나 귀머거리는 아닌지 벨이 울리는 동안엔 들은 척도 않다가 전화가 끊어지면 매번 발신자를 확인하곤 했다.

가끔 사람들이 우리와 교차하며 성큼성큼 등 뒤로 사라졌다. 그들이 철저히 현실 속 사람으로 느껴지는 데 비해 그는 왠지 비현실적인 사람처럼 느껴졌다. 맞은편에서 오던 사람들도 그렇게 느꼈는지 모두 그를 한 번씩 돌아보며 멀어져갔다. 그는 산을 다 내려가 비포장도로가 끝날 때쯤 딱 한 번 걸음을 멈추고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벙어리라도 되는 양 전화를 귀에 대고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그가 그러고 있는 시간이 제법 되어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를 앞질러야만 했다. 그를 지나칠 때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내 귀에 들렸다.

“다 용서하고…….”

앞뒤 없이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말이었다. ‘내가 왜 이럴까’ 생각되는 찰나, 이상하게도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나의 감정을 스스로 다 납득해야 한다는 생각도 부질없다고 깨닫는 순간, 나는 뒤를 돌아봤다. 그는 곧 허물어질 것 같은 표정으로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가 용서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한 문장도 안 되는 말을 통해 내게까지 전해지던 어떤 느낌……. 뒤에서 따라 걸을 때는 몰랐는데 추월하고 보니 그는 많은 시간을 책상에 앉아 지내는 사람처럼 등이 굽었고, 얇은 바람막이 점퍼 안에 흰색과 검은색의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 셔츠 때문이었을까. 마치 흑백 논리만으로 살아가야 하는 세상의 질서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자의 아픔 같은 것이 느껴졌다.

다시 뒤돌아봤을 때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다 용서하고…….”라던 말이 내 머릿속에서 끝없이 메아리쳤다. 다 용서하고 현실로 돌아가야 할 남자는 끝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조금밖에 안 떨어진 그와 나의 현실 속 거리가 무척 멀게 느껴졌다. 그는 불쑥 내 시야에 나타났던 것처럼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걸핏하면 늪의 바윗돌처럼 자의식 속으로 가라앉곤 했던 과거의 나를 대하던 자들의 심정을 헤아리게 했던 사람. 그는 곧 제 발로 그 길을 걸어 나올 것이다……. 끈질기게 울리던 전화로 미루어 그는 돌아가야 할 곳이 있는 사람. 나 역시 그랬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인간의 선한 본성을 믿고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 자주 올려다봤을 바로 그 하늘이었다. 그때까지도 귓전에서 떠나지 않고 있던 “다 용서하고…….”라는 말이 그 순간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다 용서받고…….”

해탈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이 다스려야 할 감정은 분노라고 했다. 아니다. 해탈을 방해하는 가장 강한 감정 중 하나가 분노라고 했던가. 분노는 그처럼 강하고 끈질긴 감정이다. 나는 내가 어떤 일에 심하게 화를 내고 있다고 느껴질 때마다 그 같은 감정이 수많은 과거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곤 했다. 분노의 감정은 땅속에 있는 나무뿌리처럼 얽혀 볏단처럼 가지런히 묶어 다룰 수가 없었다. 나는 화를 낼 때마다 스스로 온갖 치부를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에 더 화가 치밀었다. 가끔 분노를 다 삭였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용서도 관용도 평화도 아닌 무관심을 보게 되는 것도 분노가 얼마나 다스리기 힘든 감정인지를 말해준다.

그렇다면 부처는 분노의 감정을 통해 해탈했던 것일까? 인간의 한계점을 훌쩍 넘어서던 그의 그 의식, 그 깨달음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나는 뼈아픈 자기반성 뒤 얼마 가지 않아 삶이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버리는 허탈감을 수없이 맛보았다. 그 때문에 뭔가를 깨닫기 전보다 깨달아서 더 절망적일 때가 많았다. 어쩌면 해탈이란 깨달음의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을 뜻하진 않을까? 묵직한 염주알처럼 뭔가가 손에 잡힐 듯했다.

- 『마음이여, 걸어라』 중에서
(조은 지음 / 푸른숲 / 232쪽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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