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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통해 인생은 지나간다 - 시인 천양희
없는 당신에게

창 모서리에 든 봄볕을 따다가 우표 한 장 붙였지요. 길을 가다가 우체통이 보이면 마음을 부치고 돌아서려고. 꽃 필 때 당신을 보내고도 나는 살아남아 은사시나무 잎사귀처럼 가늘게 떨면서 내 쓸쓸함이 당신의 쓸쓸함을 알아볼 때까지 이 편지를 씁니다.

이 시간, 나의 어디에도 없는 당신.
어디에서 낮은 비명처럼 살아 있나요?
오늘은 누가 내 속에서 찌륵찌륵 울고 있습니다.

늦은 것이 있음을 후회하면서 증오보다 사랑이 조금 더 아프다던 당신을 생각합니다. 사랑의 부재는 고통을 향하는 하나의 폭력이라면, 내 고통과 불행을 자양분 삼아 자라는 존재가 나인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인생을 절망해보지 않고는 진실한 삶을 모른다고 하던가요. 제단에 불을 켜는 것은 사제가 아니라 어둠이라 한 것은 당신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죽는다는 건 어렵지 않네 / 그보다 더 힘든 건 사는 것이라네’라는 시구를 기억하겠지요. 그렇다면 삶은 우리들이 쓴 쓰디쓴 고전(苦典)일까요. 세상이 가난하고 쓸쓸할 때 시인은 고요하게 빛나는 법이라고 하지만, 꼬부라진 뿔을 나뭇가지에 걸고 허공에 매달려 잠을 자는 영양처럼 나는 정처가 없습니다. 어느 땐 내가 온몸을 가시로 잔뜩 무장하고 있지만 속은 찝찔한 눈물 같은 여린 물로 가득한 선인장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는 점에서 고통은 위대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타인의 고통을 바라볼 때는 ‘우리’라는 말을 사용해선 안 된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어리석다 생각은 말아주세요. 적어도 나는 고통을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은 고통에 담긴 의미를 믿는 것뿐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통받는 것도 알고 보면 축복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때, 내가 돌아오지 않는 시간처럼 당신께 등을 돌렸을 때, 충격이라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당신은 알기나 했을까요? 나는 그때 자살하는 사람들은 죽음이 아니라 추락을 원한다는 비통한 사실과 모든 관계는 대체로 악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요. 어느 영화였던가요.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을 향해 손수건을 흔드는 가슴 시린 장면이 내게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거기서 나왔던 대사일 겁니다. ‘니는 사랑을 아나? 가슴을 여기까지 짝 갈라가 한 여자를 집어넣어 봐라. 식초를 부은 것보다 더 시리다. 평생 시리게 사는 것이 사랑이다.’

없는 당신이여,

당신을 생각하면 나는 웃는 울음을 울게 되고, 당신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고 떼를 썼던 지난날이 또 생각납니다. 당신은 한때 내 실재에 대한 배고픔이었고, 내 영혼의 창을 흔드는 바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사람을 헤아려주는 사람은 아니었고, 누군가와 소통하면 덜 외롭다는 사실에 무심한 사람이었지요. 아랫목이 따뜻한 집을 짓지 못했고 함께 산다고 같이 가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살아낼 수 없는 곳이 당신이었고, 내 안타까운 숨결들이 모여 붉은 기운을 북돋우는 곳이 당신이기도 했습니다. 그때 나에겐 마음밖에 아무 것도 없어 무엇을 구할 수나 있었겠어요. ‘이 세상에서 나에게 남은 유일한 진실은 내가 이따금 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나 사이에도 마음을 나누기에 말보다 침묵이 더 좋을 때도 있었습니다. 사랑은 설명이 필요 없는 것이기도 하겠지요. 세상일이란 그렇듯 알면서도 모른 척해야 하는 것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제는 없는 당신이여,

모든 일에는 추억이 깃들고 그 추억을 통해서 인생이 지나간다고 누군가 말했지요. 속절없이 눈 따갑게 눈물 나는 밤에 이 말은 가슴을 후벼 팝니다. 그러나 이제 삶의 구석마다 위험과 불행이 엎드려 있던 그때를 다시는 생각 않기로 합니다. 망각보다 더 심한 복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나는 소중하게 살고 싶어서 시의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제는 슬픔을 거쳐서 충만함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이제는 더욱 없는 당신이여, 세상을 얻고도 자신을 잃어버린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지요. 사라지기 때문에 여운이 남는 종소리처럼 첫, 사랑만은 그 여운만이라도 살아남기를, 그리고 다시 한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기를……. 아득한 당신에게, 가득한 마음으로 이만 총총.

- 『어쩌다 당신이 좋아서』 중에서
(천양희 외 지음 / 곰 / 320쪽 /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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