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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당신은 늘 괜찮다고 말하나요?
늦은 밤 버스 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베이지 색 바바리를 입은 남자는 꽤나 취해 있었다. 그는 버스 손잡이를 잡은 한쪽 팔에 몸을 지탱한 채 예의 바르게 바닥을 향해 수십 번 절을 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오체투지(온몸을 던져 부처께 올리는 절)라도 올릴 듯 심하게 출렁였다. 버스는 이미 만원이었고. 용케 자릴 잡고 앉아 있던 내가 보다 못해 몸을 일으키려는데, 한발 앞서 앞자리의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일어섰다.

“젊은이, 힘들어 보이는데 여기 앉아요. 어서.”

그때였다. 세상이 부끄러운 듯 혹은 스스로가 견딜 수 없는 듯 눈을 질끈 감고 있던 남자가 기적처럼 눈을 떴다. 경이로운 반전이었다. 남자는 짧은 순간, 온몸의 남은 힘을 끌어모아 몸을 바로잡더니 말했다.

“아닙니다, 어르신. 전 괜찮아요. 앉으세요.”

마치 멀쩡한 자신을 누군가 모함이라도 하는 것처럼 억울함이 묻어 있는 목소리였다. 자리를 양보하려던 아저씨는 결국 무르춤해져 다시 주저앉았다.

나이 많은 어른에게 자리를 양보받는 것이 미안했을까. 하지만 괜찮다는 호언에도 불구하고, 다시 눈을 감고 손잡이에 매달린 남자는 위태롭게 대롱거렸다. 급정거라도 하면 어느 모서리에든 찍혀 다칠 것 같았다. 이번에는 내가 일어섰다.

“저기요… 여기 앉으세요.”

남자를 배려해 주변의 주의를 끌지 않도록 작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이번에도 남자는 비상벨 소리를 들은 병사처럼 번쩍 눈을 뜨더니, 몸을 곧추세운 다음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전 괜찮아요. 정말 괜찮다니까요. 앉으세요.”

남자는 손까지 휘저어 가며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그 뒤에도 비슷한 풍경을 되풀이했고, 주위에 서 있는 다른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도 말이 없었다. 누구 하나 그를 부축하지도 않았다.

저 남자는 참 외롭게 살겠구나 싶었다. 외롭고 꼿꼿하게,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처럼 세상을 걸어가자면 힘들겠구나. 괜찮다, 괜찮다,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가 어느 순간 허물어질 수밖에 없을 때, 그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견뎌 낼까.

문득 오래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은행잎이 금화처럼 찬란하게 떨어지던 가을날이었다. 나는 한 남자와 길을 걷고 있었다. 한 사람의 존재가 마음속에서 폭발력을 발휘하며 각인되는 순간, 세상은 한없이 낯설면서 신비로워진다. 은행잎은 융단을 깔아 주듯 우리 앞으로 몸을 날리고 있었다. 그때 그가 자신을 위해선 수고롭지만 나를 위해 생각해 낸 게 분명한 무슨 일인가를 제안했다. 그런데 나는 반사적으로 이렇게 답하고 말았다.

“괜찮아요. 됐어요.”

그러자 그는 내 얼굴을 5초쯤 바라보더니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넌 ‘됐다’는 말을 자주 쓰더라. 상대의 호의를 잘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 봐. 잘 받는 사람이 잘 줄 수도 있는 거야.”

그제야 나의 거절이 그의 기쁨을 훼손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도 꽤 자주. 난 상대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했으나 실상은 자존심을 지키고 싶은 나 자신에 대한 배려가 더 우선은 아니었을까. 그것은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고질병 가운데 하나였다.

그날 이후로 누군가가 내게 호의를 베풀 때 반사적으로 그 호의를 물리치지 않는 연습을 했다. 물론 한 번에 나아질 리 없었다. 오랫동안 마음에 새겨진 일정한 패턴은 문신처럼 지우기 어려웠다.

독하게 아랫입술을 깨무는 개인, 개인들이 모여 인구 천만을 넘기는 이 거대 도시의 밤을 버스는 쾌속 질주했다. 그 밤 남자는 끝내 넘어지지 않고 버티다가 어느 정거장에선가 내렸다. 어쩌면 그 남자가 바로 지난날의 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문득 마음이 서늘해졌다.

-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 중에서
(정희재 지음 / 갤리온 / 256쪽 /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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